17. 낙엽의 시간

흙의 자궁으로 돌아가다.

by 안명심

낙엽의 시간



만개했던 혈기를 비우는
수직의 침묵
눈부시던 빛의 극점을 지나
존재의 무게를 가늠한 묵언의 이별
정점의 화려했던 시절을
미련 없이 떨궈내는 숭고한 해탈
​메마른 파동으로 변주되는 세상과의 마지막 공명

가장 낮아져야 비로소 가장 깊어지는 진리


땅에 닿는 순간 존재의 반전으로

스스로를 해체한다.







詩作 노트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개라 부르지만 나는 감히 가장 숭고한 순간을 소멸이라 칭하고 싶다.
​단풍진 잎이, 가지에서 떨어지는 그 수직의 침묵 속에는 한 생이 축적한 모든 색의 기록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낙엽의 시간은 결코 실패의 잔해가 아니며,
오히려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미련 없이 떨궈내는 숭고한 해탈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흙의 자궁으로 돌아가
봄의 서약을 숨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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