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지휘자 박정수 님

회귀하는 선율 그 합창 속으로.

by 안명심


기억의 유통 기한은 길지 않지만 선율에 실린 인연의 유효기간은 영원할지도 모른다​



13년 전

첫 화음의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선생님을 보내드려야 했던 그날,

노래는 마침표가 아닌 긴 늘임표(fermata)로 남았다.

여의치 않은 사정으로 그때 내가 속해있던

AS women's choir를 떠나시고,

그렇게 끝났는 줄 알았는데 서울청춘합창단

지휘자로 오시게 된 것이다


십수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선생님은

국내외 큰 무대를 휩쓸며 대통령상과 국제대회 대상이라는 화려한 명성을 쌓아 올려

'이제는 너무 높은 곳의 사람이 되었구나' 싶어

조용히 박수를 보낼 뿐이었다.


​지난해 12월, 겨울날이었다.

선생님의 연주회를 찾아가 조심스레 꽃바구니를 건넸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 서 있는 선생님에게

13년 전의 보잘것없는 기억을 들이미는 것이 혹여 실례는 아닐까 망설였는데,

포토존에서 셔터 소리와 함께 마주한 선생님의 눈빛은 기우를 단숨에 씻어주었다.

금방 나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어주던 그 찰나의 순간,

잊힌 줄 알았던 시간이 단숨에 복원되는 기적을 맛보았다.



​그 기적이 통로가 되었을까.

이제 선생님은 '서울청춘합창단'의 지휘자로 다시

내 앞에 서 계신다.

1월부터 짧은 수업 시간이지만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명성만 얻은 것이 아니라 소리를 다스리는 '신의 손'을 얻었음을.


단원들은 대부분 그의 부모님 뻘이다.

낡은 악기처럼 삐걱거리는 목소리를 예리하게 포착해 내고, 이내 마법처럼 가장 맑고 투명한 소리로 조율해 낸다

단원들의 거친 숨소리를 정교하게 다듬어 가장 찬란한 화음으로 승화시키는 손끝은 예전보다 훨씬 깊고 단단해져 있었다.

투박한 소리 속에 숨겨진 진심을 읽어낼 줄 아는 마음이 전해질 때마다 연습실은 세대를 초월한 거대한 공명통이 된다.

​13년 전의 선생님이 열정 넘치는 청년 장군 같았다면, 지금은 숲 전체를 품는 너른 대지 같다.



지난겨울 꽃바구니를 건네며 나누었던

환한 미소가,

그리고 지금 여기서 함께 맞춰가는 이 뜨거운 호흡이 다시 앞으로의 시간을 버티게 할 새로운 추억이 될 것이다


서울청춘합창단은
​박정수 지휘자님의 손끝에서,

가장 눈부신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가장 완벽한 화음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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