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비지 그리고 나

하얀 콩알 속에 남겨진 내림 사랑

by 안명심


시간은 맷돌처럼 돌아가고

대형 솥 앞 자욱한 김 사이로 어머니의 작은 어깨가

떠오른다.

포슬포슬 엉겨 붙는 하얀 콩 입자들

지나온 세월의 갈피마다 스며들고 있다.



내게 있어서 비지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대를 이어 흐르는 내림 사랑의 확증이자,

자식에게 먹이고 싶어 했던 어머니의 지극한 마음이 담긴 유산이다.

​결혼 초, 서먹했던 시댁의 공기를 녹여준 것은

어머니의 비지였다.

방앗간에서 갓 갈아온 콩으로 끓여낸 비지는 유난히 달고 진했다.

아들(남편)이 그 맛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어머니는 우리가 발걸음을 할 때마다 비지를

한 솥 가득 끓여내셨다.

돌아오는 길엔 늘 묵직한 비지 봉지가 손에 들려 있었다.




​세월이 흘러 방앗간이 소소한 일거리를 거절하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직접 콩을 불려 맷돌을 돌리셨다. 그 무거운 돌판이 맞물리며 내는 ‘드르륵’ 소리는 아들을 향한 연가(戀歌)와도 같았다.

그러다 기력이 쇠해진 노년의 끝자락,

어머니는 맷돌 대신 '맷돌 믹서기' 한 대를 들이셨다. 문명의 이기를 빌려서라도 자식 입에 맛난 것을 넣어주고 싶으셨던 그 간절함이,

이제는 내 주방 한편에 유품으로 아 있다.


그 바통을 이어받아 하루 전날 밤,

노란 백태를 물에 담가두면 콩들은 밤새 제 몸을 불려 내일을 준비한다.

어머니의 손때 묻은 믹서기에 잘 불린 콩을 넣고 버튼을 누른다.

​비지를 만드는 과정은 은근한 인내의 시간이다.

김치를 우린 것과 함께 간 콩을 붓고 대형 솥에 가득 담긴 비지가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하려면 ‘술술’ 젓는 팔힘이 제법 필요하다.


2kg이나 되는 양을 젓다 보면 어깨가 뻐근해지고 손목 통증에 손가락까지, 이마엔 땀방울이 맺힌다.

하지만 그 수고로움이 비지의 밀도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기에 멈출 수 없다.

타지 않게, 눋지 않게 마음을 다해 젓는 행위는 마치 누군가의 인생을 정성껏 보살피는 일과도 닮아 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입맛도 유전이 되는지 우리 아이들도 그 비지 맛을

유독 좋아한다.

멀리 미네소타에 가 있는 딸아이는 어쩔 수 없지만, 곁에 있는 아들은 엄마의 비지 소식에 벌써부터 입맛을 다신다.


오늘도 종일 레인지 앞을 지키며 비지를 끓였다.

비지가 솥 안에서 몽글몽글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동안

화룡점정이 될 양념장을 준비한다.

​먼저 쪽파를 쫑쫑 썰어 넣고, 붉은 고춧가루를 넉넉히 풀어 색을 낸다.

여기에 어머니의 손맛을 닮은 진간장과 감칠맛을 더할 멸치액젓을 살짝 섞는다.

다진 마늘의 알싸함과 매콤한 청양고추가 어우러지면 양념장의 바탕이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들기름 한 큰 술과 깨소금을 듬뿍 뿌려 마무리한다.

​숟가락으로 양념장을 섞을 때마다 올라오는 고소하고 매콤한 향은 후각을 먼저 깨운다.

뽀얀 비지 위에 이 진한 양념 한 숟가락을 툭 얹으면, 투박했던 맛은 금세 화려한 풍미로 살아난다.


​다행히 손주 녀석도 이 고소한 맛을 알아준다고 한다. 어머니에게서 나로,

나에게서 아들로, 그리고 다시 손주에게로.

비지는 3대를 잇는 따뜻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25년 넘은 맷돌 믹서기


어머니의 시간은 비록 낡은 믹서기 앞에

멈춰 서 있지만, 내 손끝에서 윙~~~~소리와 함께

여전히 뜨겁게 흐르고 있다.

어제의 그리움이 오늘의 정성이 되고,

멈춘 듯 흐르고, 흐르는 듯 멈춰 서 있는

이 뭉근한 순환.


어머니의 작은 어깨가 생각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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