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가을 사이 가 생각나는 날
어제는 계절의 변덕에 호되게 당한 하루였다
날씨정보를 무시하고 나선게 화근이기도 했다.
해가 저물며 달려든 찬 공기는 속수무책으로 살갗을
파고들었고, 온몸은 속절없이 떨렸다
집에 오자마자 몸을 녹이고 온기를 채우니
긴장이 풀리며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한때는 겨울을 좋아했던 것 같다
매서운 칼바람에 깃을 세우고, 황량한 대지 위에 홀로 선 풍경이 어딘가 근사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겨울은 고독조차 멋으로 치장할 수 있는 청춘의 특권 같았기에.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몸과 마음 닿는 곳이 달라졌다. 이제 나는 살갗을 에이는 추위보다는,
활동의 제약이 없고 시야가 탁 트인 여름과 가을 사이의 짧고도 강렬한 틈새에 마음이 간다.
그 쾌적한 경계의 계절을 깊이 신뢰한다
그 시기의 매력은 무엇보다 '자유'에 있다.
두꺼운 외투에 몸을 가두지 않아도 되고,
폭염에 짓눌려 발걸음을 멈추지 않아도 되는 해방감이 그 계절의 본질이다.
뜨거웠던 열기가 가라앉고 서늘한 바람이 빈자리를 채울 때, 비로소 가장 가벼운 차림으로 세상을 마주한다
처서와 백로, 그 선명한 생동의 이정표
여름의 끝인 처서가 지나면 무더위의 기세는 꺾인다.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말처럼 사람을 지치게 하던 습기가 걷히고, 마른바람이 길을 닦는다.
이때부터는 걷는 행위 자체가 즐거움이 된다.
땀방울이 맺히기도 전에 바람이 닦아내니,
발걸음은 경쾌해지고 활동의 반경은 무한히 확장된다. 억지로 무언가를 견딜 필요가 없는, 온전한 균형의 상태다.
정직한 온도를 신뢰하는 삶
어제의 추위는 역설적으로 내가 왜 이 경계의 계절을 사랑하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사람의 기를 앗아가는 혹독함보다는,
적당한 온기 속에서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더 소중해진 것이다.
겨울이 정적인 침잠의 시간이라면,
여름과 가을 사이는 동적인 확장의 시간이다.
나는 이제 멋 부리는 고독보다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어디든 갈 수 있는 계절의
실용적인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대지가 뜨거웠던 숨을 고르고 결실을 향해 차분히 나아갈 때,
내 삶도 구속 없는 자유를 얻는 것이기에.
추위에 떨다 들어와 맞이한 따뜻한 잠결처럼,
계절도 결국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온도를 찾아가는
것이다.
불필요한 무게를 덜어내고 삶의 민낯을 가장 건강하게 마주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 되는
여름과 가을사이 그 틈새 계절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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