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이 건넨 브레이크

정지궤도에서 발견한 풍경

by 안명심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을 무장 해제시키는
안식의 각도가 있다.


내게는 잠자리에 들어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몸을 둥글게 말고,

한쪽 손을 뺨 아래 괴어 고개를 비스듬히 눕히는

그 순간이 바로 그랬다.

하루의 긴장을 내려놓고 가장 깊은 잠의 수면 아래로 침잠하는 나만의 은밀하고도 달콤한 습관.

하지만 그 달콤했던 '기울어짐'은 오늘 내게

턱관절 통증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괏값을 내놓았다


​치과 의자에 누워 차가운 냉각 소리가 들리고 미세한 고주파의 진동이 턱 끝을 울릴 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편안함'이라 믿었던 그 자세가

실은 내 몸의 정교한 균형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는 것을.

손바닥 하나만큼의 가벼운 압박이라 여겼으나,

수천 번의 밤을 지나면서

뼈와 근육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습관이란 이토록 무섭다.

처음에는 달콤한 휴식처럼 다가와 어느덧 내 몸의 일부가 되고, 결국은 예상치 못한 균열을 만들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그 서슬 퍼런 존재감을 드러낸다.





주차 공간이 협소한 병원 사정 때문에

차 대신 대중교통을 택했다.

운전대를 잡고 앞차의 뒷모습만 쫓으며 속도에 저당 잡혔던 평소와 달리, 버스 창밖으로 밀려드는 풍경은 생경할 만큼 선명했다.


​천천히 흐르는 시선 끝에 평소라면 결코 보지 못했을 것들이 걸려들었다.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 이름 모를 풀꽃의 강인한 생명력,

제각각의 보폭으로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리듬, 그리고 이제 막 연둣빛 기운을 수줍게 머금기 시작한 가로수의 끝자락까지. 늘 지나치던 길임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늦추고 시선을 옮기니

세상은 비로소 제 숨겨둔 속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주차의 불편함이 선물한 뜻밖의 '응시'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의 많은 오류는 '관성'이라는 이름의 편안함에서 시작된다.

몸을 편하게 하려다 건강의 축을 무너뜨리고,

마음을 편하게 하려다 관계의 결을 놓친다.

익숙한 생각의 틀에 갇혀 새로운 관점을 잃어버리는 것도 결국은 변화의 불편함을 회피하려는 습관 탓이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통증이 찾아왔을 때, 혹은 익숙한 이동 수단을 포기해야 하는 불편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멈춰 서서 스스로를 직시하게 된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제부터는 억지로라도 반듯하게 천장을 바라보며 눕는 연습을 하려 한다.

중력의 무게를 온몸으로 공평하게 나누어 받는 그 '불편한 정자세'야말로 내 몸을 다시 바로 세우는 가장 정직한 저항이 될 것이다.

또한 가끔은 익숙한 기계의 안락함을 내려놓고 대중교통의 느린 흐름에 몸을 실어볼 생각이다. 목적지에 닿는 속도보다, 가는 길목의 풍경을 찬찬히 쓰다듬는 안목이 내 삶의 새로운 습관이 되길 바라며.


​익숙한 기울어짐과의 결별은

당분간 고단한 싸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휴식은 내 몸을 비틀어 얻는 일시적인 안락함이 아니라,

중력의 무게를 온몸으로 정직하게 받아내는 '바른 멈춤'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이 정갈한 움직임이 내일의 나를 더 단단하게 흐르게 할 것이라 믿는다

턱관절이 건넨 오늘의 통증은,


삶의 궤적을 수정하라는 가장 다정하고도 절박한 '멈춤의 신호'였을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틈새 계절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