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담은 퇴고되지 않는다
나이는 숫자가 아니라 문장력이다
안국동의 작은 한식집,
밥물 끓는 냄새와 서른 명 남짓한 작가들의 숨결이 뒤섞인 신년인사회 자리에서 나는 비로소 그 사실을 실감했다.
'착각의 시학'이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달고 모였지만, 정작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것은 화려한 수식어가 아닌 테이블에 맞닿은 두께가 다른 무릎들이었다.
수십 년간 문장을 갈아온 원로부터 이제 막 첫발을 뗀 나 같은 새내기까지,
시간의 차가 제각각인 사람들이 한 상에 둘러앉았다. 벽에 걸린 빛바랜 액자처럼 작가들의 몸도 세월을 이기지 못해 삐걱거렸다.
누군가는 의자를 당기며 신음 섞인 허리를 펴고, 누군가는 시린 무릎을 가만히 움켜쥐었다.
글은 여전히 서슬 퍼런 날을 세우고 있을지언정,
몸은 정직하게 저물어가고 있다는 풍경이 애틋하게 다가왔다.
‘착각의 시학’ 서시가 낭독되며 자리가 열렸다.
착각의 시학을 위하여/ 하제 (착각의 시학 대표)
오늘 여기
서로 간의 인사와 만남은 없었지만
따뜻한 가슴과 지순한 사랑
마음 깊이 새겨진 풀 같은 시(詩) 내음 속에
떨림의 시간 기다림에 모습들
첫선 보듯 설레는 심정으로 오늘을 기다렸습니다.
문학의 열정과 향기 가슴에 흐르듯
우리네 고품격 고품질 만남이여!
그 고독과 고뇌와 사랑이
영혼을 울리는 뜨거운 심장으로 타들어 가라!
그리하여
우리들 가는 길에 빛이 없어
어둠이 유혹할지라도 세상의 바람으로 깨우며
풀꽃 같은 인연들 주렁주렁 엮어 갈 때
우리들의 모습은
먼 훗날 착각의 시학에 들렸다가
그 우물에 빠져 수없는 인연을 엮어
다시 영혼으로 함께하는 착각에 빠졌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는 착각을 노래했으나 현장의 공기는 선명했다.
덕담은 조심스러웠고 문장은 짧았다.
"건강하자", "끝까지 쓰자"라는 말들 사이로 무수한 고갯짓이 오갔다.
젊을 땐 문장의 힘을 믿었으나 이제는 몸의 신호를 믿게 되었다는 원로들의 고백은,
아직 문장의 전능함을 믿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을 조금 불안하게 흔들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마음속에 품어온 푸른빛을 꺼내 놓았다.
"새해에는 각자의 마음에 '세한도'의 소나무 한 그루씩을 키우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디게 자라도 좋으니 쓰러지지 않는 문장 하나를 품자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가 살아온 해수(年數)보다, 세상에 남긴 문장의 깊이가 우리의 진짜 나이일지도 모른다고
나이는 숫자가 아니라 문장력이라고!
낮게 번진 박수 소리는 내 말이 그 자리에 무사히 안착했음을 알려주었다.
식사가 시작되자 글 이야기는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병원과 무릎,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빈자리를 채웠다. 삶이 먼저 쓰이고 글은 그 뒤를 절뚝이며 따라온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미 몸이라는 원고지에 써 내려가고 있었다.
식당을 나서자 안국동의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나는 다시 소나무를 생각했다.
늘 푸르다고 해서 반드시 싱싱한 것은 아니며,
오래 버틴다고 해서 모두 견고한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느릿한 인고의 시간이 결국 '문장'이 된다는 것을 안다.
글이 나를 늙지 않게 해 준다는 달콤한 착각 속에 살고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착각이 있기에 오늘의 고통을 문장으로 치환하고,
내일의 몸을 기꺼이 돌보리라!
나는 이 근사한 착각을 새해에도 기꺼이 믿어보기로 했다.
마음에 심어둔 소나무 한 그루가 푸른 문장으로 돋아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