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歲寒)의 고백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품으며

by 안명심

겨울이라는 투명한 거울 앞에 서서
​나의 계절이 영하로 곤두박질칠 때마다, 세상은 비로소 정직한 소묘로 남는다. 화려하게 잎을 흔들던 다정(多情)의 문장들이 찬 바람에 깎여나가고 나면, 우리 삶의 캔버스 위에는 오직 뼈대만 남은 진실만이 고드름처럼 투명하게 맺히는 법이다.
​우리는 대개 따스한 햇볕 아래서 삶을 노래한다. 꽃이 피고 바람이 온순할 때는 주변의 모든 것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인생에는 반드시 예고 없이 시베리아의 칼바람이 불어오는 시기가 있다.

시를 쓰고 수필을 쓰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그 혹독한 ‘세한(歲寒)’의 시간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의 척박한 유배지에서 그려낸 『세한도』는 사실 차가운 그림이 아니라, 지독하게 뜨거운 그리움의 기록이다.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던 그 고립의 시간. 추사는 아마도 매일 아침 창밖을 보며 자신의 삶이 속절없이 저물어간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등불처럼 다가온 한 사람의 진심이 있었다. 제자 이상적이 보내온 책 보따리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스승님, 당신은 여전히 나의 푸른 숲입니다”라는 눈물겨운 고백이었다.


푸르름은 색깔이 아니라 '지키려는 마음'이다
​여름날의 무성한 잎들은 사실 햇빛이라는 조건이 만들어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겨울 소나무의 푸르름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이다.
​세한의 푸르름은 주체적인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주변이 온통 하얗게 얼어붙고 생명의 기운이 소멸해갈 때, 홀로 청청한 빛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그것은 남들처럼 시들지 못해 안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켜야 할 본질을 위해 끝까지 추위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용기다.
이 소나무의 푸르름은 생기 넘치는 초록이 아니라 독한 인내의 멍자국일지도 모른다. 추위를 견디느라 온몸에 피멍이 든 채로, 그 멍이 지워지지 않아 푸르게 보일 만큼 처절한 생존의 흔적 말이다. 인생의 겨울을 지날 때 느끼는 그 서늘한 통증이, 사실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그리고 소중한 것을 지키고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고귀한 훈장인 것이다.


​고독의 틈새로 스며드는 온기
​많은 이들이 고독을 무섭고 피해야 할 괴물로 여긴다. 하지만 세한의 철학 안에서 고독은 오히려 관계의 불순물을 걸러주는 고마운 필터가 된다. 화려한 사교의 장에서 나누던 수만 마디의 말보다, 찬 바람 부는 유배지에서 나눈 짧은 편지 한 통이 더 깊은 울림을 주는 법이다.
​추사는 이상적에게 그림을 그려주며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는 공자의 말을 인용했다. 이 말은 단순히 나무의 생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세상이 나를 버렸을 때, 당신만은 나를 버리지 않았군요”라는,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경의의 표시다.
​나는 이것이 우리 삶의 가장 큰 반전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추운 곳에서 가장 따뜻한 인연이 발견되고, 가장 외로운 곳에서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세한도는 슬픈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고난이라는 가혹한 체에 걸러지고 남은, 단 하나의 순수한 진심을 발견한 기쁨의 기록이다.


​ 『세한도』 속의 집 한 채를 유심히 보라. 그 집은 화려하지 않다. 겨우 몸만 뉘일 수 있는 소박한 집이다. 우리의 마음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거창한 성공이나 명예가 아니라, 진심 어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면, 그 인생은 이미 충분히 따뜻한 봄이다.
​공감이라는 것은 상대의 추위를 나의 추위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다시, 푸른 봄을 기다리는 법
​다시 한번 『세한도』의 여백을 떠올려본다. 그림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는 그 여백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라, 앞으로 채워질 희망의 자리다. 겨울은 영원할 것 같지만, 소나무의 푸르름 속에는 이미 다가올 봄의 설계도가 그려져 있다.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세상의 온도가 영하로 떨어져도 절대로 얼어붙지 않는 다정한 소나무 한 그루씩을 키워냈으면 좋겠다.


​그 푸른빛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이 시린 생의 계절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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