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패스트푸드 햄버거가 썩지 않는 이유

수분조절의 마술

  몇 년전의 일이다. 모 방송프로그램에서 패스트푸드 햄버거와 수제 햄버거를 48시간동안 같이 보관하면서 세균수가 얼마나 늘었는지 실험한 적이 있었다. 실험결과는 흥미로왔는데 수제 햄버거는 세균수가 늘면서 부패한 반면, 패스트푸드 햄버거는 세균수가 0로 검출되었다는 것이다. 세균수 0는 완전 무균상태. 해당 방송에선 패스트푸드 햄버거에 뭔가를 넣었거나 처리했으니 그러지 않았겠나라며 은근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식품화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그정도 답은 할 수 있다. 패스트푸드 햄버거가 수분을 서서히 잃어가면서 말라버리는 바람에 세균증식에 필요한 물 마저도 없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환경이든 잘만 자랄 것 같은 세균두 사람처럼 물 없이는 못산다.     


제법 다양하게 존재하는 썩지않는 식품들

  흔히 일반 소비자들은 음식이 썩지 않았다고 하면 혹시 뭐 이상한거 넣은거 아니야?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러나, 의외로 썩지 않은 식품들은 많다. 과자, 스낵, 사탕, 초콜릿, 껌 같은 완제품을 비롯하여, 설탕, 밀가루, 분유, 소금 같은 식품원료까지 종류가 다양하게 있지만, 이들 식품의 공통점은 수분이 굉장히 적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이용하여 전통적으로 말리기는 식품을 오래 보관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어 왔다. 명태를 말린 북어, 마른 오징어, 육포, 곶감이나 건포도처럼 말린 과일, 무말랭이, 김, 고추 등처럼 오랜 시간동안 자연 건조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볶은 땅콩이나 깨소금, 미수가루처럼 인위적으로 열을 가해 건조하는 식품도 있다. 이들 농수산 건조품에 대해서는 “안 썩으니 이상한데?”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식품의 가공이란 전통적인 식품 보존 방법을 좀더 세련되게 만들고 설비를 사용하여 보존할 식품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만드는 공정이라고도 얘기할 수 있다.

  한편, 수분을 다량 함유한 식품들은 당연히 쉽게 썩을 수 있다. 대부분의 식품원료들, 즉 농수산 1차산물들은 수분함량이 80~90% 선이다. 이렇게 수분이 많은데, 단백질과 탄수화물등 세균과 곰팡이들의 먹이감이 될 수 있는 영양소 조차 많으니 당연히 썩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수분 함량이 70% 이하만 되어도 사막지대에서 발견되는 일부 건조기후에 강한 균 빼고는 대부분의 세균이 죽는다. 곰팡이는 좀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데, 곰팡이는 세균보다 좀더 진화한 생물이므로 살기엔 혹독한 환경을 견디기 위해 포자라는 것을 만들어 곰처럼 동면상태로 지낸다. 그러다가 다시 수분이 많아지고 살기에 적당한 환경이 되면 발아하여 활발히 증식하게 되는 것이다. 포자는 바실러스 세레우스 같은 일부 세균도 만들 수 있다.      


미생물 증식은 자유수 함량이 결정

  수분을 60% 이하로 증발시킨 식품은 원칙적으로 미생물이 증식되지 않아야 한다. 여기에 해당되는 식품들이 빵류, 면류, 밥류 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래 보관한 빵처럼 이같은 부류에 해당하는 식품에서 가끔 곰팡이가 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약간 다른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부드러운 빵의 수분함량은 얼마나 될까? 레시피와 제조방법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최대 20%를 넘지 않는다. 수분함량 60% 이하이면 미생물이 살수 없기에 당연히 곰팡이는 없어야하겠지만, 곰팡이는 종종 발견된다. 식품의 조직을 미세하게 살펴보면 조직을 구성하는 전분과 단백질 사이로 물이 채워져 있는데, 이 물은 증발이나 흡수등 자유롭게 이동가능하다고 하여 자유수라 한다. 반대로 전분사슬이나 단백질, 식이섬유 등에 흡수된 물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조직과 결합되어 있다고 하여 결합수라 부른다. 수분은 60%보다 훨씬 낮지만 세균이 증식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빵 안의 수분 중 상당수가 자유수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통 식품을 구성하는 원료들은 열을 가하면 수분을 비교적 쉽게 잃어버리는 반면, 한번 수분을 잃어버리고 난 후에는 수분을 공급해도 빨리 흡수하지 않고 서서히 흡수한다. 이는 전분질, 단백질 등의 식품을 구성하는 성분들의 속성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서 이들 성분과 결합된 수분이 결합수, 결합하지 않은 쪽은 자유수라고 말할 수 있다. 결합수는 식품내 구성성분들에 의해 흡수되어 있어 미생물이 이용하기가 어렵지만, 조직 사이에 분포되어 있는 자유수는 미생물이 쉽게 이용할 수가 있다.

< 결합수와 자유수 분포도 > (출처 : Seehint.com)


같은 수분 함량이라도 달라지는 수분보유력의 마술

  식품소재별로 수분을 잡아 보유하는 능력은 각기 다른데, 단백질과 식이섬유, 다당체 검류 등은 수분보유력이 우수한 반면, 전분이나 단순당, 미네랄 등은 수분보유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그래서, 전분질로 많이 구성된 스낵은 질소충진같은 포장을 하지 않으면 쉽게 수분을 흡수하여 눅눅해지고, 스낵에 묻어있는 튀김유가 흡수한 수분과 반응하여 쉽게 산패가 일어나기 때문에 전체적인 품질이 쉽게 떨어진다. 또한, 구운 김 같은 경우에는 기름을 발라 구웠지만 표면에 묻어있는 소금이 수분을 쉽게 흡수하므로 전반적으로 눅눅해지기 쉽다. 반면, 소시지, 햄등의 육가공제품은 원료 고유의 단백질과 추가로 넣는 식이섬유가 수분을 잡아놓는 능력이 우수해서 비교적 높은 수분함량과 미생물이 좋아하는 풍부한 영양소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냉장보관시 일정기간 미생물 증식을 지연시킬 수 있는 것이다.

  

< 수분활성도와 수분함량간 상관관계 > (출처 : Seehint.com)

   

수분보유력의 효과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브라우니 제품의 예를 들 수 있다. 브라우니는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특징이므로, 설탕등 단순당 함량이 높아야하고, 수분도 비교적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단순당 함량이 높은 상태에서 수분도 높아져버리면 미생물 증식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상온 유통하는 조건에 유통기한을 비교적 길게 잡아야하므로 최종 제품의 수분함량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제작하거나, 항균소재를 첨가하는 방식으로 미생물 증식을 최대한 억제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제품내 수분이 전분질이나 단백질등을 이탈하지 않도록 억제하고 가급적 많은 양의 수분을 결합수로서 존재하게 한다면, 수분함량은 높아도 미생물 증식은 잘 되지 않는 부드럽고 촉촉한 브라우니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이러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들이 유화제 또는 검류, 유지류 인데, 요새 트랜스지방 이슈 때문에 유지류 사용에 제한이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사용가능한 소재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 한편, 결합수를 늘리는 수분조절은 단순히 원료 첨가에 의해서 조절할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적절한 방식으로의 가공이 함께 들어가야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있다.     

수분조절이 자유롭게 되면 놀라운 방식으로 변신하게 될 식품들이 많이 있다. 떡에 수분보유기술이 적용된다면 냉동실에 넣어도 딱딱해지지 않는 떡을 만들 수 있고, 요사이 편의점에서 많이 팔린다는 도시락류, 삼각김밥등의 유통기한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 특히 삼각김밥은 데우지 않아도 보슬보슬하게 갓 지은 밥의 식감을 유지할 수 있어 이를 찾는 소비자가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한 수분조절 기술 적용시 각 가정에서는 보온밥통에 넣지 않아도 아침에 한밥을 그냥 두고 저녁에 먹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다. 이렇듯 식품에서의 수분조절은 굉장히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좀 더 깊이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잘 모르고 있는 소금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