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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잘 모르고 있는 소금 이야기

짠맛이란 무엇인가?

  대기업 연구원 시절 유명한 글로벌 곡물메이저 Cargill사 제품과 포트폴리오에 대해 조사해본 적이 있다. 그 회사는 밀 ․ 콩 ․ 옥수수 ․ 쌀 등 다양한 곡물, 설탕 및 당알코올 ․ 대체감미료 ․ 전분 ․ 단백질 등 많은 종류의 소재를 생산하고 있다. 그 중에서 눈길을 끈 것은 소금이 중요한 파트라는 점이다. 소금은 생각보다 종류와 용도가 다양했고, 가공식품소재 부문에서 감미료 ․ 단백질․ 전분 등과 동일한 수준의 주요 품목군으로 취급하고 있다.  

    

소금 용도는 식품산업 발달수준에 비례

Cargill이 취급하는 소금은 총 9개 품목군에 44종이다. 정제염만 해도 종류가 정제도, 흐름성에 따라 9가지나 된다. 그 외에도 특성에 따라 천일염, 고흐름성, 저칼륨 또는 저마그네슘, 저나트륨, 미쇄분쇄염, 후레이크소금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들 소금은 각각의 특성에 맞춰 드레싱, 시즈닝, 유제품, 육가공품, 베이커리, 절임음식, 스낵, 제과 등 여러 품목군에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종류가 다양하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매우 편해진다.

필자가 팝콘제품을 개발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 사용되는 소금은 특별했다. 일반 정제염을 사용할 경우 소금이 묻어있는 부위와 그렇지 않은 부위의 맛이 너무 차이가 나서 소비자 클레임이 우려되었다. 이것을 해결하고자 국산 정제염 중 가장 곱고 가는 제품을 찾아 사용해 봤으나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심지어는 정제염을 곱게 갈아 미분으로 만들었는데, 품질은 개선되었지만 분쇄 후 하루 만에 굳어버려 다시 분쇄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아는 분의 소개로 외국산 팝콘용 소금 샘플을 받았는데, 이것은 혁명에 가까웠다. 입자는 가늘고 부드러웠으며, 흐름성도 매우 좋았다. 무엇보다도 흡습을 거의 하지 않아 그냥 두어도 좀처럼 굳지 않는다는 점이 놀라웠다. 가격 때문에 적용하지는 못했지만, 그 소금의 놀라운 기능은 그간의 소금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각 식품 품목군마다 사용되는 소금은 입도, 수분, 흐름성, 물성, 맛 등에 따라 구분된다. 예를 들어 프레첼 ․ 비스킷 ․ 빵 등의 토핑용으로는 입도가 굵은 소금, 조미료 및 시즈닝류에는 입도가 가는 소금이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정도로 구분해서 사용하지만, 외국에서는 이런 구분이 40여 가지가 넘으니 그만큼 다양한 용도가 개발된 것이다.     


소금의 정체는 혼합된 맛의 복합조미료

우리는 소금 맛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을 정리하면, 정제염은 99% 이상이 염화나트륨(NaCl)으로 짠맛만 있으나, 천일염의 경우 염화나트륨이 80~85%로 칼슘, 마그네슘, 칼륨 등을 함유하고 있어 좀 다른 맛을 낸다고 한다. 소금의 맛을 좀 더 깊이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약하지만 약간의 단맛이 존재한다고 한다. 낮은 농도의 소금용액의 맛 안에는 약간의 단맛이 존재하는데, 농도가 높아짐에 따라 짠맛 때문에 단맛을 점점 느낄 수 없게 된다. 소금의 대체재로서 사용되고 있는 염화칼륨(KCl)은 낮은 농도에서 단맛, 쓴맛, 짠맛이 함께 느껴지다가 농도가 높아짐에 따라 짠맛이 상승한다고 한다.

농도에 따른 소금과 염화칼륨의 짠맛 속성 비교 (출처 : R.S.Shallenberger 저, "Taste Chemistry", 1993)



이와 같이 우리가 짜다고만 알고 있는 소금의 맛은 짠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맛이며, 소금을 소량 사용할 경우 이것만으로도 복합조미료로서 기능을 충분히 살려낼 수 있다.     


소금 과잉섭취, 성인병을 유발한다고 속단하기 어려워

소금이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섭취량을 줄이자는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소금 섭취량 줄이기는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등에서도 볼 수 있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단계별로 소금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소금이 정말 고혈압을 비롯한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는 주범이냐 하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제안하는 나트륨 일일섭취량은 2.0g으로 소금으로 환산할 경우 약 5g정도이다. 그러나 작년 11월 장류국제포럼에서 전북대 의대 채수완 교수는 세계 각국의 임상 실험결과를 인용, 소금섭취량이 5.0g을 넘어도 건강에는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소금의 섭취가 적을 경우 심혈관계 질환의 발병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의 나트륨 섭취 가이드라인은 단기간의 임상시험 결과에 의한 것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어 현재 시점에서는 소금의 유해성 여부를 쉽게 결론내릴 수는 없으며, 각종 질병 유발에 대한 내용은 좀 더 과학적으로 계속 연구해봐야 할 문제다.

    

소금 섭취를 줄이기 위해선 식생활 개선이 필요

소금 섭취량을 줄이기 이전에 현재 우리나라 식품에 왜 소금이 그렇게 많이 사용되는 지부터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소금을 그렇게 많이 사용하는 것은 우리나라 식품의 맛이 단순해졌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TV 맛집 프로그램에서 맛이 끝내준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손님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되었다. 이 현상의 근본적인 이유는 식당 어딜 가든 맛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음식 맛은 매우 단순해졌다. 매운 것 아니면 짠맛, 단맛, 신맛, 아니면 구수한 맛 정도랄까? 맛집 프로그램을 보면 절반 이상이 매운 맛에 대한 소개인데, 매운 맛은 혀에서 맛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통증으로 인식하는, 엄밀히 말하면 맛이라고 할 수 없는 맛이다. 통증인 매운 맛이 강해지니, 자연스레 이를 맛있게 만들기 위해 몸에서 선호하는 중독성 있는 맛들, 즉 단맛, 짠맛을 높일 수밖에 없고 결국 현재의 우리나라 식단은 이 세 가지 맛이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간이 세지 않으면서도 정갈한 전통의 맛은 사라진지 오래고 맵거나 짜거나 달지 않으면 맛이 없다고 소비자의 외면을 받은 지 오래이다.

소금은 맛없는 음식에 약간 첨가하면 좋은 조미료처럼 끌리는 맛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식생활이 너무나 강한 것들만 좋아하고 단순화되고, 식품첨가물이나 유해식품 등에만 관심을 갖다보니 식품 고유의 속성인 맛을 어떻게 잘 내는 것이냐 하는 문제는 한발 뒤져 있게 되었다. 낮은 농도의 소금은 여태껏 미처 알지 못했던 소금 고유의 맛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마치 환한 도시를 벗어나 가로등 하나 구경하기 힘든 깜깜한 시골에 가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많은 별들이 하늘에 보이는 것처럼 저염식품에 대한 연구는 건강이슈 말고도 새로운 맛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여태껏 맛이 너무 센 식품에 길들여왔다. 그러나 반대로 간을 줄여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소박하지만 아기자기한 맛을 느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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