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 산업 투자와 쌀산업혁신에 대한 현장의견

https://www.youtube.com/watch?v=NDTU1fdYfv8

출처 : 농업지식채널 짓다(유튜브)

아래 글은 위 영상을 보고 생각난 것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열심히 생각하다 보면 문제점에 대한 정의와 대응 방안은 다들 비슷한 것 같다. 영상 중 쌀 부분과 관련된 몇 가지 내용에 대해 내 생각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1. VC들의 농업 분야 투자 기피 현상


농금원에서 농식품모태펀드를 크게 조성해 놓고 있지만, 정작 가져오는 모델은 VC들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이 거의 없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업에 성장 한계가 없어야 한다는 점인데, 농업 분야에서 이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농업 개혁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함부로 꺼내기 어려운 주제다.


성장 한계를 돌파한다는 것은 곧 농업 개혁을 의미한다. 그런데 투자받고자 하는 사람들 중 농업 개혁과 혁명을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나도 IR 대회에 나가서 남들이 발표하는 걸 보는데, 그때마다 농업 분야 혁명을 기대할 만한 사업 아이템이 없었다.


게다가 농식품 분야 고유의 수익 모델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미래 기대수익을 예측할 수가 없다. 나도 쌀로 투자받을 계획이라고 하니, 그나마 있는 현미유 시장으로 투자받으라는 조언을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생산량의 한계가 있어서 조금만 해도 성장 한계에 도달하더라. 총 시장 규모가 약 500억 원 정도밖에 안 된다. 이래 가지고 무슨 투자를 받겠냐 싶어서 포기했다.


농식품 분야 투자를 받겠다고 가져오는 IR Deck을 보면 성장 한계가 1,000억 원이 안 되는 수준에 대부분 머물러 있다. 이러면 VC로부터 투자받기가 힘들다. 그럼 1,000억 원을 넘기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렇게 대책 없이 매출 계획을 늘렸다가 2023년 칼바람을 맞고 무너진 피투자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대체육 분야가 그렇다.


한때 비건 식품이 뜬다면서 너도나도 VC들이 투자하던 분야였는데, 투자받은 회사들은 죄다 쫄딱 망했다. 일부 피봇팅해서 다른 영역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들이 있을 뿐이다. 이런 사례가 있어서 VC들로부터 투자받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VC들이 투자하는 쪽은 당장 매출이 올라가는 식음료, 즉 F&B 쪽이다. 여기도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게 아니라, 당장 매출이 쭉쭉 성장하는 걸 보여주는 회사라야 투자 유치가 가능하다. 그런데 F&B 투자는 성장 한계가 뚜렷한데도, 그냥 정부 돈 받아서 투자하는 거라 VC들이 기대를 많이 낮춘 상태다.



2. 쌀 가공식품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화 지연 쌀

우리 회사는 2023년부터 노화 지연 쌀과 노화 지연 기술을 연구해 오고 있다. 작년에 특허와 품목 제조 보고를 마쳤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사업화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 11월에 특허 보정을 제출했으니, 올 봄에 특허 등록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때 맞춰서 사업화를 시작할 계획이다.


노화 지연 기술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는 수출용 김밥 때문이다. 수출용 김밥이 잘 나간다고 하는데, 쌀이 냉동식품화되면 필연적으로 노화로 인해 딱딱해지는 문제를 겪게 된다. 백설기떡 남은 걸 냉동실에 넣어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냉동 기간이 길어지면 전분이 노화되면서 딱딱해진다. 이건 전자레인지로 돌려도 절대 부드러워지지 않게 된다. 전자레인지로 돌려도 생쌀 씹듯이 밥알이 딱딱하면 누가 다시 사겠는가.


이 문제는 노화 지연 쌀, 노화 지연 기술, 노화 지연 소재, 이 3종 복합 솔루션이 해결할 수 있다. 우리 회사는 이에 대한 연구 노하우를 갖고 있어서 올 봄에 셋 다 출시하겠다는 것이다. 전국에서 재배되는 쌀 중 노화에 강한 쌀 품종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어떻게 하면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는지 기술도 알고 있다. 그 기술을 바탕으로 노화를 지연시키는 소재도 만들었다. 게다가 이건 첨가물이 아니고 그냥 국산 농산물을 가공해서 만든 소재다.


3. 정부 정책에서 자유로운 쌀 유통 시스템

현 양곡법 체제에서는 정부가 쌀 유통 시스템의 설계자이자 막강한 관리자여서, 정부가 설정해 놓은 대로 쌀 시장은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쌀이 남아도 정부 탓, 모자라도 정부 탓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작년에 정부가 태도를 바꿔서 정부 통제에서 벗어나는 쌀 수급 체계를 만드는 데 지원금을 주겠다고 했다. 그게 바로 수급 조절용 벼다. 그동안 정부는 쌀 가공식품 쪽도 구곡을 저렴하게 가공용 쌀로 공급하면서 통제해 왔다. 그러나 작년에 정부 공급 쌀을 줄이면서 이제 가공용 쌀은 민간이 알아서 하라고 정책을 아예 바꿔버렸다.


그 시기에 내가 쌀 산업으로 투자를 받았고, 올해는 정부 통제에서 벗어난 가공용 쌀을 시범 삼아 재배해서 가공해 볼 참이다. 그저께는 가공 설비 준비로 종일 회의를 했다. 처음이니까 많이는 못 하더라도 우리가 쌀 가공품을 이렇게 했다고 흔적을 남겨놓을 정도는 해야 하지 않느냐고 몰아붙였고, 어쨌든 현재의 생산 기반에서 설비를 보강하여 시장에 판매할 쌀 단백질과 연관된 쌀 가공식품을 만들기로 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양곡법 대폭 개편 내지는 완전 철폐를 주장해 오고 있다. 현재 양곡법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전시 식량 통제를 위해 만든 법령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어진 한국전쟁 때문에 일시적으로 생명이 연장되긴 했지만, 지금처럼 쌀이 풍족하게 남는 시기에는 절대적으로 맞지 않고 쌀 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대표적 악법이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이를 더 강화시켜 정부가 남는 쌀은 무조건 사들이도록 만들었다. 허, 참. 그러면 농민은 살겠지만, 쌀 유통과 쌀 가공식품 등 연관 산업은 성장하지 못한다. 농민을 위하는 마음은 좋은데, 쌀 산업 전체가 살아나고 규모가 커져야 국산 쌀 수요도 늘면서 농민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전체적인 그림을 못 보고 특정 생산 영역만 보고 그들만 보호해 주자는 법을 만드니, 나라가 발전을 못 하고 계속 이 모양이다.


정부는 정부고, 그래서 나는 정부 통제에서 벗어난 쌀 산업을 쭉 그려오고 있었고, 잘하면 올해 수급 조절용 벼 수매를 계기로 드디어 시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4. 한국 농업의 유일한 근대화·현대화 사례, 축산 분야

축산 분야는 그나마 한국 농업 중에서 현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이 투입되면 그만큼 벌어가는 모습이 되었는데, 핵심은 도축장, 도계장의 자동화와 시설 현대화에 있다. 한마디로 시설 현대화를 통해 부분육으로 용도에 맞게 나누어 팔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덕분에 축산 분야는 투자도 활발하고, 기대 수익도 어느 정도 예측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농산물 분야도 축산처럼 기계화, 현대화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착각하면 안 된다. 생산 분야는 이미 많이 진행되어 있다. 기계화, 현대화가 절실한 분야는 바로 유통과 가공 분야다.


국산 농산물이 비싸다는 이유로, 혹은 수입 농산물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이미 외국에서 중요한 1차 가공 및 유통망을 따라 손질된 원재료를 받아 식품으로 만든다. 국산 농산물이 일시적으로 싸지게 되면 국내 식품 회사에서 쓸 수 있는 거 아니냐, 혹은 식재료 유통망에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한번 외국 기준에 맞춰 세팅된 것은 바꿀 수가 없다. 국산 농산물 품질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이미 설정된 품질 관리 시스템과 호환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절대 가공에서는 쓸 수 없는 것이다. 식재료 유통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이 부분을 모르고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국산 농산물 표준화를 해서 가공으로 납품될 수 있게 한다고 하는데, 이게 절실하지 않다 보니 맨날 해 보다 말고, 생각나면 해 보다가, 관심 떨어지고 예산 떨어지면 안 하고, 하다 보니 맨날 제자리다.


쌀은 표준화가 어렵다고 볼 순 없지만, 워낙 생산량이 많은 탓에 그 많은 양을 감당할 표준화 시스템을 만들기는 꽤 어려운 상황이다. 난 쌀부터 하고, 다른 농산물에 대해서 시작할까 한다. 쌀, 무, 배추, 양파, 감자 등등.


어쨌거나 나는 문제 정의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직접 해결해 보려고 나선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부분은 좀 더 현실적인 부분을 건드려 얘기해 줄 수도 있을 듯하다. 솔직히 영상에서 RPC, 특히 농협 RPC에 대한 얘기를 좀 더 첨언해 주고 싶은데, 뭐 그건 나중에 기회되면 하기로 하고.


방송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소를 키울 것이냐가 훨씬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농업개혁, 민간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