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밸류의 창업동기

"석유산업의 꽃은 정제시설, 식량산업의 꽃은 소재가공산업"


한국은 원유를 한 방울도 생산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정제시설을 갖춘 덕분에, 가솔린·나프타·등유·경유 등 각종 석유제품을 부족함 없이 생산하고 심지어 수출한다. 2025년 이란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됐을 때도 한국 정유사들은 다변화된 원유 공급망과 압도적 정제 기술력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있다.


미국 서부 항공기에 사용되는 항공유의 90%가 한국산이라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원유가 아무리 풍부해도 정밀정제시설이 없다면 그 나라의 석유값은 비싸진다. 석유산업의 꽃은 원유 생산이 아니라 정제시설이다.


식량산업도 정확히 같은 구조다.


곡물을 재배·생산하는 것은 원유를 채굴하는 것과 같다.


진짜 가치는 그 곡물을 단백질·전분·식이섬유·당류 등으로 정제해 고부가가치 소재로 전환하는 소재가공산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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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인터내셔널이 인도네시아 서울 2.5배 넓이의 농지에서 팜유를 생산하지만 성공가능성은 아직 의문이고..

2019년 우크라이나에 곡물 엘리베이터를 확보하고 있지만 전쟁이라는 악조건 말고도 소재산업과의 연결고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게 안정적 수익이 될지는 두고 봐야하는 상황이다.


한편, 2011년 aT가 식량안보를 위해 해외 곡물 엘리베이터를 매입했다가 연 2% 미만의 수익률로 이자비용도 감당 못하고 되판 사례도 있는데. 이렇듯 곡물 엘리베이터는 소재산업까지 수직통합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라이스밸류가 설계하는 것이 바로 그 구조다. 국산 쌀이라는 원료를 정제해, 단백질·전분·올리고당·식이섬유 소재로 전환하는 — 식량산업의 정제시설을 짓는 것이다.


◦ 창업 동기 — 단순 소재에서 가치사슬 재설계로


"우리는 쌀의 잠재력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농업지식채널 짓다에 출연해 내가 꺼낸 이 한마디는 라이스밸류 창업의 핵심 문제의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쌀 생산국이지만, 쌀의 가공 수준은 세계 비교에서 현저히 뒤처져 있다. 밥쌀·막걸리·떡 중심의 저부가가치 소비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 쌀 산업의 현실이다.


◦ 필요성 — 국내 쌀산업 가치사슬의 구조적 단절


국내 쌀산업의 근본 문제는 낮은 가치사슬 관여도다. 국산 쌀 가격이 국제시세(태국산 684원/kg) 대비 3~4배(2,500원/kg)인 구조에서 단순 밥쌀 소비 위주로는 경쟁력이 없다.


◦ K푸드 제조 경쟁력의 위상 —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한국 식품제조업


한국 식품제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수치로 증명된다.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은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수출되며 K-라면의 대명사가 됐다.

CJ제일제당 비비고 만두는 북미 냉동만두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현지 소비자의 냉동식품 식탁을 바꿨다.

OKF(경북 안동)는 코스트코·코카콜라·펩시의 OEM을 수행하며 전 세계 알로에 음료 시장의 절반 이상을 공급한다.

풀무원은 미국 두부 시장에서 67% 이상의 점유율로 11년 연속 1위를 지키고 있으며, 롯데웰푸드는 인도 초코파이 시장의 90%를 점유한다.

대상(종가)은 전 세계 80여 개국에 김치를 수출하며 국내 김치 수출액의 절반 이상을 담당한다.

최근에는 올곧의 냉동김밥이 북미 코스트코와 트레이더 조를 휩쓸며 또 하나의 K-푸드 신화를 쓰고 있다.


이 경쟁력의 근간에는 HACCP 기반의 세계 최고 수준 식품위생시설과, 일부 선진국에서 허가된 첨가물조차 미허가 처리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엄격한 안전 기준이 있다.

한국 식품제조업은 단순히 맛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급속냉동 기술·발효 조절 기술·원료 성분 치환 기술 등 고도화된 제조 공정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 불편한 진실 — K푸드 제조 경쟁력과 국내 농업의 단절


문제는, 이 뛰어난 제조 경쟁력이 국내 농업 발전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K푸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잘 팔릴수록 소비되는 원료는 수입농산물이다.

쌀조차 예외가 아니다. 햇반·냉동밥 같은 즉석밥류는 국산쌀을 쓰지만, 떡·주류·과자·쌀국수 등 형태를 변환하는 쌀가공식품에서는 수입쌀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쌀가공식품 수출 호조 = 국산쌀 소비 증가"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정부 통계가 이 불편한 진실을 적극적으로 공개하지 않을수록, 구조적 문제는 더 깊어진다.


"글로벌 제조 경쟁력이 있는 식품산업이 국내 농업과 연결되려면, 제조업이 사용하는 원료 소재의 국산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라이스밸류가 뛰어든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가공식품 제조 자체의 경쟁력은 이미 확보되어 있다.

남은 과제는 그 제조업이 소비하는 원료를 국산화하는 것 — 수입산 밀·옥수수·대두 단백질을 국산 쌀 유래 소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것이 K푸드 제조 경쟁력과 한국 농업을 처음으로 연결하는 고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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