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에 관하여

C 에게

by 앤드류

C 에게


화라는 감정의 뿌리가 '나'라는 존재에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당신은 그리 명석한 사람이 아닌 것 같기에 알아듣기 쉽고 명료하게 말하겠습니다.

화라는 건,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에게 받는 평가 사이의 부조리함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당신이 스스로 멋지다 생각하는 당신 자신에게, 다른 사람이 나타나 너 멋없어, 라며 비난하거나 비판하거나, 혹은 은연중에 그런 태도가 묻어나는 걸 보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화가 난다는 겁니다.

잘 생각해 보시길. 당신이 나에게 화를 낸 이유는, 당신이 정신을 차린 후에야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말한 것처럼, 일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그런 이유였다면, 제가 그리도 상처받고 빗물로 첨벙거리는 길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허탈과 배신감, 당신을 위한 연민과 동정심으로 한참을 있었을까요.

그러니 당신 자신과 나를 위해서 그런 변명은 하지 마시길.


당신은 내게 화가 났던 겁니다.

그런데 당신이 생각하기에도 이상한 일이죠.

나는 줄곧 말해왔습니다. 인간적인 당신을 좋아한다. 그리고 또 보여줘 왔습니다. 내 가식 없는 호의와 친절, 진심 어린 공감과 웃음이 넘치는 인사를.

사실 당신뿐만 아니라, 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저마다에게 필요한 적절한 것들을 나누면서, 내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일. 나는 그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몇 번의 술자리에서 당신이 내게 보여준 그 모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고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웃으며 답했습니다. 당신이 날 미워해도 나는 괜찮다. 날 미워하게 해서 내가 미안하다.

그런 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우스운 사람으로 보였는지, 당신은 결국 나를 대놓고 바보취급 하더군요.

나는 그래서 화가 났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당신이 나를 하찮게 여기며 나대지 말라 했던 말 사이의 괴리에 답답함이 치밀었습니다.

그날 그 시각을 고스란히 찍은 카메라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날 내가 한사람한사람 사과하고 술값을 계산한 모습을 본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는 내가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이 세상 누구에게도 나는 당신에게 상처주지 읺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감보다, 당신을 향한 서운함을 토로하느라 나는 목청껏 소리쳤습니다.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고 이 사람아! 그런데 당신이 오늘도 이렇게까지 나오는 걸 보면 그냥 당신은 나를 좆같은 놈이라고 여기는 걸로밖에 안 보여. 내가 맨날 웃고 다니니까 만만해?

어쨌든 나도 취기에 올라 했던 말들이라 그땐 느끼지 못했지만 이렇게 글로 써놓으니 부끄러움이 느껴집니다. 다소간의 거친 욕설도 섞여 있었음을 분명히 기억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가요? 당신의 사과의 말들에 어떤 후회와 자책감이 느껴지긴 합니다만, 그조차 나는 믿을 수 없습니다. 듣기로는, 당신은 그날을 전혀 다른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었기에.

사실 어떤 말이든, 당신을 믿지 않는 편이 나에겐 이롭습니다.


내게 술이란, 타인의 민낯을 조금 엿볼 수 있는 기회이고, 나의 민낯을 조금 더 열어 타인에게 보일 수 있게 하는, 고맙고 유용한 도구입니다.

술 덕분에 당신의 맨 밑바닥을 봐버린 나로선, 당신이란 캐릭터에 이제 별 볼일이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당신에겐 한 가지 의문만 남게 됩니다.

과연 당신이 내게 화가 났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는 그 답을 알기에, 당신에게 어리석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까 합니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을 무한한 취미로 여기는 사람이기에, 세상에 이름 지어진 모든 것들을 생각에 구멍이 날 정도로 깊이 파고드는 습성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중에서도 그 '어리석음'이란 이름에 관해선, 숱하게 많은 날 골몰해 봤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그런 내 고생 끝에 얻은 해답을 듣는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이 없지요.

하여간 잘 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화를 내지 않고는 못 버티는 사람인 이유를.

어리석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는 너무나 권위적이고 폭력적이었다.
그래서 그의 아내와 자식은 그를 두려워했다.
어느 날, 그는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 생각해 온 집안을 뒤집었다.
그날 아내는 무릎을 꿇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녀는 짓지도 않은 죄를 두고 용서를 구했다.
그는 아내 앞에서 깨진 소주병 조각을 집어 들고 자신의 이마를 그었다.
자식은 벌벌 떨면서 방문틈으로 그 모든 장면을 눈에 새기고 있었다.
다음날 그는 베란다에 담배를 물고 쭈그려 앉아 집에 걸린 모든 액자들을 깨부수고 사진첩을 찢어 태웠다.
그 이튿날 아내는 자식을 두고 집을 나갔다.
그 뒤로 1년, 그는 자식을 데리고 친가를 전전했다.
자식이 열두 살이었던 그해 가을, 그는 처가에 자식을 버려두고 떠났다.
그 사이 죽음을 계획하고 있던 아내는 자식 소식에 고향집으로 달려갔다.
아내는 엄마였다.
엄마는 끝내 자식을 키워냈다.
자식은 성인이 되었고, 오랫동안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거라 여겼던 아비를, 어쩌면 용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식은 아비를 찾아갔다.
그날, 늙은 아비는 자식에게 말했다.
느이 엄마가 아빠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아냐. 무시하고, 천대하고, 능력 없다고 홀대하고, 맨날 일 핑계로 바깥으로 나돌고, 여자가 말이야.

자식은 알고 있었다.

아비가 그간 호의호식 하며 살 수 있었던 이유를.

그가 가진 모든 재산이, 어미가 남자에게 청구하지 않았던 그녀 스스로 일궈낸 세 사람 몫의 삶이었음을.

자식은 기억하고 있었다.

한 남자와 그의 자식을 위해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던 어미의 헌신을.

자식은 종종 떠올렸다.

아비가 집으로 돌아오는 발소리가 들리면, 어미와 함께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는 척을 했던 추억을.

그러나 아비는 그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당한 자신의 몫이라 여겼다.

그럼에도, 아무도 묻지 않았음에도, 아비는 변명같은 말들을 쏟아내곤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아빠는 떳떳해!

자식은 아비의 그 말을 듣고 다시금 떠올렸다.

어리석음을 모르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어리석음을 벗어날 수 없다.

자식은 그를, 그 아비라는 이름을 영원히 지우기로 했다.

그날 아비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더 이상 아비가 아니게 되었다.


*



당신이 내 기억에 어떤 사람으로 남을지는, 나의 용서여부조차도 당신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으로의 당신에겐, 당신이 어떤 인격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만 중요할 뿐입니다.

그 안에는, 당신이 마주칠 인연들에게 사랑을 받고, 또 당신의 진실된 마음을 보여주는 일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 스스로를 위해 사랑을 베풀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의 용서가 지금의 당신에게 더 중요한 것이라면,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외팔이에게 외팔이라고 욕하지 맙시다 했던 그날의 대화처럼,

당신의 어리석음을 너무 질책하지 마시길, 다만 자세히 들여다보시길, 그래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용서를 담아,

A로부터.







아직 그날의 사건이 마음속에서 잠잠해지지 않았습니다. 어른이고 싶다는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나는 어른스럽지 못했습니다. 익명을 가장한, 일만분의 일이라도 그가 상처를 받을 지도 모르는 이 비겁한 편지를 두고서, 훗날의 내가 나의 어리석음을 들여다 볼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