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짐 읽기
행간을 읽을 필요 없는 사람이 되자
D.S.
한껏 꾸민 속뜻을 의심받지 않도록.
혼자 있어도 미소 짓는 사람이 되자
{
누구라도 웃으며 다가올 수 있도록.
식사 후엔 꼭 양치하는 사람이 되자
{
슬퍼하는 이를 다독여줄 수 있도록.
깨끗한 손수건을 가진 사람이 되자
{
연인의 눈물을 닦아내줄 수 있도록.
손톱을 깨끗이 다듬는 사람이 되자
{
소녀 같은 마음이 달아나지 않도록.
밤길을 쉬어 가며 걷는 사람이 되자
{
누구라도, 마음이 서늘하지 않도록. Fine
행간을 읽을 필요 없는 사람이 되자 D.C.
*
행간을 읽다. 나는 그 표현을 좋아합니다. 그 말뜻을 곧대로 받아들이길, (ritardando, 점점 느리게) 문장과 문장 사이, 단락과 단락 사이, 줄과 줄 사이... 눈이 담아내는 곳곳의 여백을 꼭꼭 씹어가며 읽었습니다. (Moderato, 보통 빠르기로) 그 말뜻은 느린 숨결로 음절 사이의 박자와 운율을 찾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Andante, 느리게) 열리고 닫히는 입술, 조여지고 풀리는 목구멍, (Adagio, 아주 느리게) 가늘었다 두꺼워지는 혀의 움직임까지, (Largo, 더 느리게) 글을 읽는 내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로, 작가를 지휘자로 세우고, (Grave, 정말 매우 느리게) 써내려간 펜촉의, 휘적임을 좇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Moderato, 보통 빠르기로) 그렇게, 나의 '행간 읽기'는 단숨에 읽히는 서사시보다도 깊은 여운과 감동, 재미를 찾아내는 일이었습니다. (con brio, 생기 넘치게) 특히 시를 읽는 즐거움이 그랬습니다.
(Moderato, 보통 빠르기로)
행간을 읽다. 사실 그 말뜻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작가의 의도와 생각을 읽어냄을 의미하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일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선뜻 부정하고 음흉한 짓이라 여기기도 했지만, 말과 말 사이 길고 짧은 침묵에 숨겨진 의미를, 행동과 행동 사이 찰나의 눈빛에 담긴 생각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일은 '행간 읽기'와 비견할만큼 강렬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앎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결코 대강대강 편하게만은 할 수 없는-부끄러움을 이겨내는 치밀함을 요구하는-작업이었고, 때때로 글의 행간을 읽는 일은 뒷전이기도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한때 내가 했던 말이나 행동들 속에도 간혹 어떤 음흉한 속내가 들어차 있었습니다. 칭찬인 듯 칭찬이 아니었고, 호의인 듯 호의가 아니었고, 배려인 듯 배려가 아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불순한 마음을 품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누군가를 조종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분명, 누군가는 반드시 나의 행간을 읽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지난날 어리석었던 나를 떠올리며 애먼 이불보를 걷어차게 됩니다.
(Fine)
그래서 나는 행간을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내 안의 모든 심정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도록 잘 표현하는, 그래서 누구에게도 앞뒤 다르다 생각되지 않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내 안의 모든 욕심을 아무도 손해보지 않도록 잘 표현하는, 그래서 욕심껏 얻어내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내 안의 모든 마음을 아무도 상처줄 수 없도록 잘 간직하는, 그래서 언젠가 사랑을 마주쳤을 때 온전히 내어주는, 행간을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