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사랑하다

사랑의 자유성과 단순성에 대한 고찰

by 앤드류

순간적인 광채가 낮의 길이를 더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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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바그네르는 진정한 자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단순한 삶을 통한 내면의 성장이 진정한 자유를 얻게 한다고.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자유롭지 못하다. 더 많이 가지려 애쓰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충족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그 허우적거림은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


때때로 떠올려두었던 생각들은 수백의 원고들이 되어 쌓여 있다. 이미 십수번의 수정을 반복해 두었지만, 여전히 말끔히 정리되어 있지 않다.

관계는 어떤가. 종종 생각 틈을 비집고 드는 어느 이름들을 두고, 하나의 단상이 아닌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감정의 뭉텅이를 손에 쥐면, 터질듯한 비눗방울이 가슴팍 위로 폭 솟아오른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더 많이 가지려 애쓰는 버릇 때문이리라. 한 번 쓰여진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버릇, 헤어짐 뒤로 기꺼이 잊혀지겠다는 다짐을 쉽게 잊는 버릇... 그러고 보니 나는 단순한 삶을 표방하면서도, 내면의 성장은커녕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는 마음을 그저 들여다보는 일로 만족하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몇 가지 변명을 덧붙이자면, 그런 나의 버릇은 설령 내 삶을 헤치는 일이더라도 결코 누구도 상처 주지 않고, 그 무엇도 훔치는 일이 없다. 그리고 나의 그 오랜 버릇들은 심지어 나에게 어떤 행복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것들을 주워 모으며 어느 원고에 수두룩하게 기록해 둔다. 그리고 그것들을 종종 들여다보며 위안을 얻는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지.


허무주의로 자유를 역설한 니체는 이렇게 따졌다. 모든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그 삶을 긍정할 수 있겠느냐고. 하지만 나는 회귀하지 않는 순간들을 부정하며 위안을 얻는다. 과거의 사건들의 실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지게 된다. 그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사건에 대한 감정적 해석도 사라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나는 잊혀진 사건들에게조차 끊임없는 해석을 내어 놓으며 회귀를 요구한다. 사라지지 말지어다, 명령한다.

그러나 이 역시도 몇 가지 변명을 해보자면 이렇다. 나는 일전의 사건들을 인식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객관성 범위 내에서 기록한다. 그 십수년의 기록을 세상 밖으로 내어놓지 않는 이유는, 그 자기혐오에 가까운 고해성사의 매끈한 민낯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나의 양심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솔직한 해석을 달아두는 조건으로 일전의 기록을 내놓는다. 잉크가 되어 번진 민낯의 흔적을 읽어내며 위안을 얻는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지.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이 보기에 나는 자유롭지 못한가?



*



<고찰>
사랑은 전체 문화적 산물을 통틀어 가장 많은 해석과 의미가 덧붙여진 개념이다. 사학, 예술, 문학, 철학, 과학 등 인간문명의 지붕을 떠받치는 대들보나 다름없다. 그중 철학자들은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사랑은 욕망이다.

사랑은 실천으로 발현되는 의지다.

사랑은 인간성의 한계를 초월하는 매개체다.

사랑은...

그러나 그 수많은 정의 속에서도 한 가지 본질은 절대적인 명제로 남는다.

사랑은 자유롭다.


사랑의 자유성은 그것이 어떤 목적의 수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보장된다. 가령,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우리는 우리의 사랑으로부터 어떤 등가적 교환을 요구하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 우리에게 물물교환을 하듯 사랑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도구로 삼아 우리로부터 욕망의 충족이라는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종종 반성해야 하기도 한다. 때때로 욕심과 필요를 사랑이라는 구실로 삼아 마구 채우려 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협력이나 상생, 공생이지 사랑의 본질은 아니다. 비즈니스 파트너나 다름없다. 이렇게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의 자유성은 살아감의 원칙-인간은 혼자 생존할 수 없다는 진리-보다도 좁은 공간에 있어 보인다. 그러나 쉽게 생각해 보면 이렇다. 당신은 당신의 깊은 사랑을 비즈니스로 비유할 수 있는가? 그런 방식으로 사랑을 고백했다간 당장에 차여버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업을 시작했고, 평생 파산해도 좋습니다... 설령 비유한다 해도 참으로 비루한 고백이 아닌지.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자유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일까. 우리의 사랑에 그 어떠한 목적도 없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해답은 사랑의 단순성으로 귀결한다.

사랑의 단순성은 그것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그 자유성으로부터 비롯된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어야 한다. 나는 왜 당신을 사랑하느냐. 만약 당신이 그 질문에 어떤 실체가 있는 답을 찾았다면, 그것은 사랑과 등가하는 것일 테고, 등가적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므로, 그 자유성이 침해된다. 그러므로 단순성도 배제된다.

단순한 사랑. 그것은 왜 사랑하는지에 대한 답을 영원히 모르는 사랑이다. 이 세상 무엇으로도 치환되지 않는 사랑. 결국 "있음"으로서만 충족되는 감정의 만족감-평온, 아픔, 이별, 고통을 아우르는 행복감-이어야만 한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으나, 이유를 요구하지 않는 것. 그것이 사랑의 단순성이 가진 정수다.

그러니 우리는 종종 반성해야 한다. 우리는 사랑을 소유하고자 하고, 증명하고자-때론 증명받고자- 하며, 확고한 자유와 미래를 보장받고자 한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사랑을 결핍과 충만의 중간상태라 정의했다.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의 사랑은 끊임없이 불안과 욕망에 휘둘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충족을 요구하지 않고, 결핍으로부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사랑은 단순성과 자유성을 동시에 보장받는다.

사랑의 단순성은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로 비춰진다. 인간존엄을 역설한 칸트는 우리의 존엄성이 사랑을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랑이 그 단순성을 잃는다면 우리는 상대를 도구로 전락시킨다. 가령, 한때 사랑해서 결혼한 커플이 삶이라는 비즈니스의 파트너로 서로를 전락시키고, 종국에는 이혼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가. 이렇듯 사랑의 단순성은 그저 우리의 감정과 욕망을 절제하는 일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의 전환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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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이들, 우리는 사랑으로부터 우리의 단순성과 자유성을 시험받는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느긋한 자세로 우리의 마음을 지켜보자. 그리고 언젠가 선물을 주는 마음으로 내어주자.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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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의지와 선택, 그리고 책임의 행위이다."

Love is an act of will, namely, both an intention and an action.

- 에리히 프롬 Erich Fromm






어느날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그렇게 인정해야만 했을 때 나는 부끄러움을 이겨내려 했다. 너에 대해 전혀 떠올리지 못하는 것들을 두고 구태여 이유를 찾으려 했기 때문이지. 하지만 내가 찾아낸 이유는 고작 이런 것이었어.

너가 거기 있기 때문에.

산이 있기에 오른다는, 그 이상한 말을 아주아주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그렇게 그 의미를 알아버렸지.

네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나는 사랑한다고.

그러니 순전히 네 탓인 것이지.

순간의 광채가 낮의 길이를 더하지 못하는 것처럼,

순간의 어둠이 밤의 길이를 더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너는 낮과 밤에 뜨는 달.

여름에 길어지는 낮도, 겨울에 깊어지는 밤도

순전히 네 탓인 것이지.


파란 밤,

A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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