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뼈」에 붙인 편지

by 앤드류

모든 것은 영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진 적이 있는지.


뼈는 쉽게 다듬어낼 수 없고, 한 번 닳아 없어지면 돌이킬 수 없다. 그러니 삶과 닮아 있다 해도 괜찮겠지. 그러니 뼈의 고단함과 부조리함에 대한 나의 항변은 삶의 죽음과 소멸에 대한 것이었어. 한편으론, 사랑은 그 죽음과 소멸의 한계를 극복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듯 되찾고, 사라진 듯 되살아나고, 이별이 남긴 조각은 어느날의 다른 곳에서 맞춰졌지. 그래서 이렇게 다시 정리할 수 있겠지. 뼈가 삶의 형체를 붙들고 있다면, 사랑-그 모든 시작과 끝-은 그 형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근육과 같다고.


모든 치아가 바스라졌던 그 계시 같은 꿈은, 경고보다는 기억에 대한 위로에 가깝다고 해야 하겠지.

살아오며 잃어버린 유치, 깨지고 닳아 몇 번이나 치료를 받아야 했던 어금니. 그 기억들은 수치스러운 나약함이 아닌, 한때의 성장기록이 아닐까. 그것들이 닳아 없어졌기에, 더 단단하게 남은 이로 음식을 씹고, 더 단단한 마음으로 타인의 무게를 견디게 된 것이 아닐까.


사랑은 부스러진 조각이 되더라도,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해도 소멸하지는 않는 것이라 믿길 바래. 결코 소멸하지 않는 것이어야만 한다고 믿어. 그 크고 작은 파편들은 때때로 눈처럼 흩날리며 하나의 계절을 완성한다고 떠올려보길. 죽음과 소멸의 한계성을 허락하더라도, 비에 젖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듯 사랑을 마주하는 일이 더 아름답지 않겠어. 왕바보의 겁 없는 심장처럼 말이지.


뼈에 계절의 눈물이 스며들도록 하는 일은 우리 삶의 부조리함과 유한성을 견디는 과정을 받아들이는 것이겠지. 그 동시에, 기꺼이 사랑을 선택해야 함을 인정하는 것이겠지.

한편 뼈가 닳아 사라지듯, 애석하게도, 사랑도 소멸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 않겠어. 너도 알고 있겠지. 그래서 더욱 편견에 사로잡혀 소멸을 예단해선 안 되는 것 아니겠어? 순간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하루만큼의 행복이더라도 이름을 불러 붙잡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뼈-닳아 없어지는 삶-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다운 저항이 아니겠어?


비록 살아가는 일과 사랑하는 일이 뼈의 부조리함을 내포하고 있지만, 차라리 그 부조리함 덕분에 우리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다 믿자. 예정된 소멸은 우리의 순간을 더욱 뜨겁게 붙잡게 할 테니까.

그 허무를 넘어서게 할 용기가 필요하다면, 너와 나는 '우리'로부터 찾길 바래.


계절의 눈물이 쏟아지는 밤,

A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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