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낙하

by 앤드류

「우리는 구름이야. 모르겠어? 몰려들어서 겨우 형체를 갖췄다가, 어느새 흩어져버려. 누군가는 원치도 않는 상황에 휩쓸려 가운데 자리를 벗어나지 못해. 어느 한쪽 누군가는 가장 끄트머리에 매달려서 안간힘을 쓰고 있지. 바람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어느 쪽이든 구름이 된다는 건 버텨내야 하는 일이야. 충돌과 응집, 증발과 결빙, 그리고 낙하의 유혹을...」


구름은 스스로의 형태를 선택할 수 없지만, 어느 순간 함께 모여 하나의 덩어리가 되기도 하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구름처럼 살아갑니다. 학교, 회사, 가족, 세대... 이름 붙여진 수많은 집단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됩니다. 하지만 그 '우리'는 언제나 잠정적으로만 성립될 뿐이지요. 조금만 바람이 바뀌면 형태는 쉽게 무너지고, 흩어지고, 어느새 자국 없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안에 머물고 있다는 겁니다.


당신이, 구름은 홀로 구름이 될 수 없다는 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가정할게요.

결국 응집이 있어야 형체가 생깁니다. 우리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요. 홀로 존재할 수는 있어도, 혼자된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내거나 또 발견해 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치 않는 상황에 휩쓸려서라도 중심에 남고자 해요. 중심은 안전해 보이거든요. 하지만 그 중심이란 공간은 때때로 가장 벗어나기 힘든 자리이기도 합니다. 중심에 있다는 것은 종종, 보호받는 곳이 아닌 움직일 수 없다는 걸 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가장자리에 있게 되기도 하지요. 언제든 떨어질 수 있는 자리에서, 바람의 방향을 읽으며 버티는 거예요. 가장 불안한 곳이지만, 한편으론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곳입니다. 조금만 힘을 풀면, 그리고 다른 구름의 일부조차 더 이상 붙잡아주지 않는다면 응집에서 이탈해 자유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중심이든 가장자리든, 구름의 일부라는 사실 자체는 이미 '우리'가 견뎌내야 하는 삶의 조건 같은 것인 듯합니다.


'낙하의 유혹'에 대해 처음 떠올렸던 것은, 꾀나 오래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리 달갑고 반가운 이야기는 아니지요. 혹, 당신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요? "떨어져 보고 싶어. 한 순간만이라도 자유롭고 싶어. 그래서." 들리는 대로만 상상하면 자못 등골에 소름이 돋습니다.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어조는 '삶의 포기'를 담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나에게는 자유를 향한 항복으로 들려왔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항상 구름이고 싶은 그런 관성적 갈망을 잠시 제쳐둔다면, 한 번쯤 떨어져 보는 일도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한번 요청하건대, 구름은 홀로 구름이 될 수 없다는 걸 인정해 주세요.) 낙하의 유혹은 중력에 대한 항복선언이 되겠지요. 그리고 그 뒤에는 분명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아요. 분명히. 왜냐고요? 그렇게 물으신다 해도 딱히 설득력 있는 대답은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냥 느낌이 그래요,라고 답하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는 분명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고, 언젠가부터는 반대로 '혼자 있는 게 좋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마주치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하나같이 인정하더라고요. "우리가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그 '낙하의 유혹'에 기꺼이 몸을 내던질 수 있는 의지는 어떤 능력이나 '특권'이라고 하기에 충분하겠다는 말이지요.


'안정된 자리'라는 단어가 '타협'이나 '포기', '무기력' 따위의 말들로 교환되는 시대가 있었지요. 하지만 그것은 곧 공공연한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지금은 '환상'이나 '드라마 속 이야기'에 어울리게 되어버렸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구름 속 어디에도 안정은 존재하지 않아요. 충돌과 응집, 증발과 결빙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아니니까요. 관계는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결집에 대한 신뢰는 단단했다가도 느슨해지고, 때론 녹아내립니다. 어떤 날에 우리는 너무 무거워진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너무 가벼워져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우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면 쪽빛 자유가 아닌 칠흑 공포를 느끼곤 합니다. 낙하의 유혹은 달콤하지만, 떨어져 내린 세계가 반드시 자유를 보장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에요. 구름에서 떨어져 나와 눈이나 비가 되는 순간, 우리는 이전의 형태로 돌아가기까지 길고 험한 여정을 다시 반복해야 해요. 그건 흘러내리고, 증발해서, 떠다니다가, 시간 속에 기다리면서. 그렇게 다시 구름의 일부가 되기 위한 여정이죠. 그렇게 다시 구름의 일부가 되는 순간에는 한동안 안도하기도, 매달리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때때로 다시 낙하의 유혹을 꿈꾸기도 합니다. 그렇게 버티는 거죠. 조금씩 충돌하고, 기꺼이 응집하고, 증발을 참아내면서요.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거였어요. 내 옆에 나를 꼭 붙들고 있던 당신의 손에 힘이 축 빠져있는 걸 보고서는. 당신이 낙하의 유혹을 견뎌낼 수 있기를 바랬어요.


구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길 부탁합니다. 이러나저러나 괴로운 일이지만, 또 떨어져 내린다고 해서 삶이 영영 끝나는 것도 아니지만. 한번 흩어졌다가 다시 만나기까지는 영겁에 가까운 세월이 필요하게 될 거라는 걸, 나는 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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