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를 자꾸 싸우게 하는가?

Open your eyes

by 사랑의 등대

왜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고 할퀴고 상처 주고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가?


피곤하고 지치지 않는가?

싸움을 멈추고 싶지 않은가?


우린 언제나 지금을 선택할 수 있다.


태풍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말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고요한 태풍의 눈 속에서 상황들을 관찰해 보라.


누가 우리를 자꾸 싸우게 하는지,

누가 자꾸 싸움을 부추기고 있는지,

대체 이런 에너지소모가 왜 필요한 건지,



싸움에 염증이 나 한 사람, 두 사람이 뒤로 물러나 고요한 눈으로

이 상황들을 지켜본다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싸움이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국의 역사는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외세의 침략이 잦았는데 왕들이 국민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정치적, 전략적인 행동이었다지만, 혼자 몸을 피하기 일쑤였다.

백성들에게 심리적, 상징적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이런 반복된 경험으로 국가 지도자를 믿지 못하고 불신하게 된다.

부모에게서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한 자식들처럼

비뚤어지게 된다. 한 국가의 지도자란, 국민들의 마음을 지켜

주는 든든한 부모 같은 존재이다.



형제끼리라도 똘똘 뭉쳐 잘 지내면 되는데..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상처가 서로에게 거울처럼 반사된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치유해 주고 안아주고

서로의 등을 도닥거려 주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서로를 다시 일으키고 서로를 믿고

그 아픔까지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형제들끼리 서로의 거울에 비친 상처를 보며

분노를 터뜨리고 비난하고 싸움을 멈추지 못한다.



중재해 줄 부모는 어디에도 없다.

따뜻한 안식처가 없다.





왜 유독 한국만 그런 건가 생각해 봤다.


가까운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은 옆나라에게는 잔혹했지만, 자국민들을 지키고 전쟁을 해도

타국에서 진행하여 일본국민들은 전쟁을 겪지 않고 지냈다.

비록 재난재해가 많고, 미국을 공습해서 원자폭탄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그 후로 일본이 전쟁을 포기하면서 일본국민들의 인식은

'국가가 국민을 지켜준다'라는 신뢰가 자라났다.

부모에게 버림받지 않았다.



미국은 어떠한가?

미국은 좋은 부모가 많았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 시기, 국민들에게 직접 라디오 메시지를

전달하며 불안을 달래주었다.

링컨대통령은 남북전쟁 때, '노예제 폐지'의 결단을 내리며

흑인들을 국민으로 끌어안았다.

지도자가 국민과 함께 위기에 맞서는 행동을 반복했기에

국민들은 지도자를 신뢰하고 국가를 믿게 된다.



지금의 미국은 여러 말들이 많지만, 좋은 지도자가 많고

풍부한 자원과 아름다운 자연환경 등 하나님에게 축복받은

나라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못 사는 나라들에 해외원조를 하며

세계인들의 부모 역할을 하니 최강대국으로 성장했다.

내가 주는 것을 받는다.



다른 국가들은 지도자들이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자 한 뜻을 모았는데,

한국이 아직까지도 싸우고 분열되는 이유는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아우성일까?






부모에게 따뜻하고 안정된 사랑을 받지 못한 형제들은

고된 식민지를 벗어나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또 형제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남북전쟁을 하며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었다.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 독기만이 남는다.

나를 지키려면 내 안에 야수를 꺼내야 한다.

전쟁이 길게 지속된다.


결국 강대국에 의해 휴전선이 그어졌다.

그들은 온전한 부모가 아닌,

조건을 제시하고 눈치를 봐야 하는 대상이다.


지켜줄 부모가 없다. 기댈 부모가 없다.

부모에게 거부됐기에 자신을 거부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한다.

그러니 형제들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한다.

자신의 약점까지 포용하지 못한다.

그러니 형제들의 약점도 포용하지 못한다.



민주주의를 수립하며 경제발전의 가속도를 달린다.

지금의 경제발전을 이루게 한 초석이기도 했지만,

미국 링컨대통령이 흑인들을 끌어안았듯이..

자비와 온정의 따뜻한 손길을 내밀지 못한다.

그런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에..


또 한 번 자기 형제들에게 총칼을 겨눈다.

그들을 믿어주지 못하고 받아들여주지 못하고

의심하고 제거해야 될 대상으로 본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형제들에게 또 큰 상처를 입은 이들은 울부짖는다.

복수의 칼날을 간다. 증오가 불타오른다.

내 안의 분노가 형제들에게 향한다.

자기 자식들에게 그때의 상처를 잊지 말라고

계속 교육하는 그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보자.



부모에게 상처받고 어느 형제에게도 상처받았는데,

나머지 형제에게 마저 깊은 상처를 받았을 자들의 심정을..

계속 지역차별을 당하고 의심당하는 자들의 심정이

얼마나 비통하고 원통할지 말이다.



지구의 자연법칙이 있다.

내가 주는 것을 받는다.

상처를 줬으니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가 너무 깊어 영혼에까지 스민다.

분풀이를 해도 깊이 상처 난 가슴이 아물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지역차별의 트리거를 이용하여야

득표수가 많을 것을 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하여 국민들의 분노를 이용한다.

각 진영의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상처를 이용한다.


아직 휴전국이고 북한이 때때로 폭탄을 터뜨리고 협박하는 것을

이때다 싶어 이용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고 국민들은 늘 가슴을 졸이며 산다.



국민들이 각 진영으로 나뉘어 싸워야,

그 분노의 동력으로 정치인으로 당선된다.

국민이 계속 싸워야, 자신의 자리가 건재할 수 있으니

끊임없이 부추긴다. 언론과 미디어는 신난다고 북 치고

장구 친다. 자신들의 존재 이유이다.


매일 뉴스에서 언론에서 이 상황을 이용하여 헤드라인을 작성한다.

맨날 큰일이다. 좋았던 일들로 작성했던 적이 손에 꼽을 듯하다.



국민들은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두려움에 휩싸여

같이 태풍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이 소용돌이는 계속된다. 멈추고 싶어 하지 않는다.

국민들의 상처가 계속 덧나고, 몸과 맘이 상하고,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다.



이들 모두는 부모의 사랑이 필요했던 것인데,

이젠 형제들 싸움을 부추기는 부모이다.




우리는 싸움을 멈출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의 어둠, 그림자까지 사랑하고 그렇게 형제들의 그림자도

포용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부모의 사랑이 부족했지만,

형제들끼리 더 이상 내치지 않고 서로를 끌어안을 수 있다.



자신을 치유하고 서로를 치유할 수 있다.

자신에게 부모가 되어주고, 형제에게 부모가 되어줄 수 있다.

우린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뭐든 열심히 하고 열정적이고 감정도 풍부하다.

한쪽 지역의 사람들은 무뚝뚝하기는 한데, 추진력이 있고

인자하고 뚝심이 있다. 아빠 같은 느낌이다.

한쪽 지역의 사람들은 똑똑하고 재능이 많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넘치고 책임감이 있다.

엄마 같은 느낌이다.


그들이 화해하고 용서하고 서로를 끌어안아주고

그들이 하나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아름다울지 상상할 수 없을 지경이다.








우린 공통의 역사적 상처를 가진 같은 민족이지만,

또 각자의 삶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 다르다.

서로의 생각과 의견과 가치관과 신념, 사고방식 등이 다르다.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같은 민족, 같은 혈통이라고 해서 생각과 의견이 모두 같아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린 자유로운 생명에너지이다.



똑같이 제작되고, 똑같은 프로그램이 주입된 로봇이 아니지 않은가?

각자의 삶에서 경험한 게 다르고 슬픔과 상처가 다르다.

겉모습이 비슷하고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서 나와 복사된 동일한

인물들이 아니란 것이다.



각자가 자유로운 에너지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렇게 각기 다른 자유로운 에너지들이 추구하는 가치로

한데 모여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다.



우주의 균형을 상징하는 상반되는 성질이 있다.

빛과 어둠, 하늘과 땅, 음과 양, 남과 여..

이는 하나이기도 하면서 둘이다.

그리고 이 둘은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순환하고

하나가 될 때, 새로움을 창조한다.


서로 다른 두 요소가 만나야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 듯,

차이가 있어야 창조가 가능하다.



내가 나의 빛과 어둠을 끌어안아야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고 진정한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듯이,

외부의 빛과 어둠을 분리시키지 않고 통합해야

새로운 것이 창조된다.



하늘에서 비와 햇볕과 바람을 내려

땅에서 생명들이 자라날 수 있다.

하늘과 땅은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주고받음의 순환 속에서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음극(-)이 전자를 내보내고, 양극(+)이 전자를 받아들이

면서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전기에너지를 만든다.



인간의 내면에도 여성성과 남성성이 있다.

공감, 연민, 자비, 지혜, 부드러움, 수용, 포용, 치유, 관계성의 여성성..

리더십, 대담함, 행동력, 추진력, 결단력, 명확성, 목표지향성의 남성성..

두 측면을 존중하고 통합하고 균형을 잡을 때, 온전한 자신이 된다.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면서

건강한 경계설정을 하고 원하고자 하는 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내부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통합할 수 있을 때,

외부 사회에서의 남녀 차별도 줄어들 수 있다.

그 둘을 분리시킨다거나 어느 하나가 우월한 것이 아니라,

그 모두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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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기 '태극기'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고

태극문양은 서로의 다른 음양이 조화가 되어

하나로 더 크게 창조하고 발전함을 뜻하고

건곤감리 또한 '하늘, 땅, 물, 불' 음양의

조화와 발전을 설명하고 있다.




나와 의견이 다른 형제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다.

저항하고 없애려고 애쓸수록 지속되고 강화된다.

해답은 '사랑'이다.



우린 지금 당장이라도 싸움을 멈추고 평화를 선택할 수 있다.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더는

역사적, 집단적 카르마를 대물림하지 않을 수 있다.

계속되는 싸움과 고통과 상처를 겪게 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끌어당기고

내가 저항하는 것을 지속시키며

내가 살펴보는 것은 사라진다.



'내가 주는 것을 받는다' 라는 자연법칙은

우리가 하나이기에 남에게 주는 것이

곧 나에게 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분리도 없다. 서로에게서도,

신에게서도, 존재하는 어떤 것에서도,


어떤 것과도 분리되지 않은 듯이 행동해보라.

그러면 너희는 세상을 치유할 것이다.


책[신과 나눈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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