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주는? 사랑을 주는? 무엇이 진실인가?!
지금 하는 이야기는 종교인들에게는 조금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공명하는 것만 취하고, 공명하지 않은 것은 받아들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해하고 존중한다. 이것은 맞다/틀리다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에 대한 진술이다.
그래도 내가 왜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됐는지 그 연유가 궁금하다면,
크게 심호흡을 하고 신념이나 편견, 선입견을 옆에 잠깐 내려놓고
마음을 열어달라.
...
..
.
나는 지금 종교를 특별히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셨어서, 어릴 때 교회를 다녔던 기억은 있다.
수영복을 입고 세례를 받으며 코가 매웠던 기억,
교회에서 부활절 달걀 등 맛있는 간식이 많아서 즐거웠던 기억은 있다.
어렸을 때라 그런지 성경구절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어릴 때, 내 방에서 하나님을 찾으면서 열심히 기도했던 기억도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힘들 때나, 아플 때나, 도움이 필요할 때나,
자다가 가위를 눌렸거나, 악몽을 꿀 때.. 하나님을 찾는다.
가위에 눌리거나 악몽 꿀 때, 하나님을 언급하거나 주기도문을 읊으면 금방 사라진다.
효과 좋으니 추천한다. 나도 주기도문 앞부분만 기억한다..
교인들은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내가 힘든 일들이 많았었기에 나에게 전도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엄마, 사촌동생, 친구.. 그렇지만 난 강요하면 반대로 튀는 청개구리 스타일이다.
그러니 그 방법이 통할 리 없다.
그리고 의문이 해소가 되지 않은 점도 있었다.
'왜 꼭 교회를 매주 가야만 신을 믿는 자격이 되는 거지?'
'그냥 일상생활 속에서 믿으면 안 되는 걸까?'
'신을 믿는데 교회를 가고, 안 가고 가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방향이 되는 건가?'
엄마가 성경앱을 추천한다. 글들이 해석하기 어렵다.
'그래서 교회를 가서 목사님들이 구절을 해석해줘야 할 필요가 있는 건가?'
엄마는 하나님에게 요청하면 성경글이 쉽게 읽힐 것이라고 말한다.
근데 내가 그렇게 까지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교인들에게 위에 제시된 의문들을 질문해 봐도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
엇비겨나가는 답변을 하거나 성경구절을 읊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반복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의문이 해소가 안되고, 머리에 물음표가 가득이니
교회를 나갈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친구는 세례 받지 않은 아기들을 진심으로 걱정한다.
'아기들은 천사 아닌가?'라고 난 또 생각한다.
태어나면서 죄인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그렇게 표현한 거 같다.
물론, 훌륭한 종교인도 우리 주위에 많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사랑과 치유를 전파하시는 선교사, 목사, 신부, 수녀님 등..
오빠네 부부가 갑자기 하늘로 가는 선택을 했는데..
그 집에 대한 소문이 돌았는지 집이 안 나갔는데,
그 집을 살겠다고 용기 내어주신 분이 목사님이었다.
아, 그리고 '레 미제라블' 장발장 영화 속의 신부님도 있다.
장발장이 빵을 훔쳤다가 무시무시한 감옥에 갇혀 오랜 수감생활 후,
교도소를 출소하여 갈 곳이 없어 묵게 된 성당에서 은식기들을 훔쳐 도망쳤을 때,
경찰에 붙잡혀 다시 성당으로 데리고 와 신부님에게 물건을 훔쳐간 게
맞냐고 물어보는데.. 신부님이 환한 표정으로
"내가 선물해 준 것이다. 왜 이것은 안 가져갔느냐."
하면서 은식기를 더 챙겨주시는 장면에서..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장발장도 울고, 나도 펑펑 울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난 의문해소가 안되고 납득이 안 가서 교회를 안 가고 하나님을 믿는 것을 고수했다.
물론, 훌륭한 교인분들이 많지만.. 내 주위 교인들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천국행 기차티켓을 받았는데도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친구는 교회를 다니면 몸은 힘들지만, 맘이 평안해지고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그런데 자꾸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을 분리시키고 판단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지옥에 갈 사람들인데.. 두 번 죽인다.
물론, 믿음으로 평안과 기쁨을 느끼며 기적을 체험하며 베푸며 살아가시는
분들도 많다. 내가 한 면만 보고 느끼고 말하는 걸 수도 있다.
근데 내 주위에 교인들은 뭔가 날이 서 있고 예민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상대방 위에서 판단하고 판결하는 느낌을 준다.
연민이나 자비가 없다.
전 직장이 기독교인들로 이루어진 곳이었는데 오히려 갈등과 싸움이 잦았다.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 남을 험담하고, 늘 부정적인 것에 집중하고, 걱정하고
판단하고, 비웃는다. 회사 내 기독교 예배를 하고, 또 똑같은 모습이다.
자신이 돈이 없다는 걸 늘 우스갯소리고 말하고,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이 적어 보인다.
오히려 불교의 자아성찰, 자기 수행이 더 맘에 와닿는다.
자아성찰하고 행동 변화가 있고, 일상 속에서 수행을 한다는 교리이니까.
교회에서 무엇을 배우길래, 저리 날카롭고 차갑지?
친척동생 말을 들어보면 성경에 사랑만이 가득이라 행복하다고 하던데..
난 그 직장에서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다.
그것도 다 이유가 있고, 나 자신을 낮추는 선택을 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시느라고, 속성교육을 해주신 거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입사 1년 후에 '정규직 전환'이란 것을 구인란에도 명시해 두었고,
면접에서도 재차 확인했지만, 1년 후에 이행하지 않았다.
신이 내게 거기 머물지 말라고, 네 자리가 아니라고 말하는 거 같긴 했다.
그 후, 1년이 더 지났을 때도 '정규직 전환'을 재차 미루었다.
지금은 신이 그곳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선택을 하게 함이었다는 걸,
그런 체험을 하게 영혼계약된 관계였나 싶지만 말이다.
그때 당시에는 서럽고, 비참했다.
그리고 천국/지옥에 대해서도 그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자식이..
그 당시에는 그게 맞는 건 줄 알아서,
잘 몰라서, 어둠 쪽으로 균형을 잃어서, 감정에 치우치고, 두려워서,
무서워서 자신을 보호하려고,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무의식적이었어서, 어떤 실수나 잘못을 했다고 해서
뜨거운 불덩이에 빠뜨리고 싶지 않듯이, 신도 그렇지 않을까?
신이 우리를 조건적으로 사랑한다고 믿는 것은 인간의 시선 아닐까?
옛날부터 성경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면서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내용을 덧붙였을 가능성은 없는 걸까?
신이 '날 꼭 믿어야 하고, 그 장소는 교회나 성당이어야 하고,
그 방법은 꼭 성경을 통해서 여야 해.'라고 하셨을까?
우주의 하나이신 하나님을,
인간세상에서 여러 갈래로 분리시켜 놓은 건 아닐까?
각자의 해석에 따라,
각자의 방식에 따라,
각자의 편리에 따라,
이 세계를 창조하신 신이 여러 분일까?
우주의 하나이신 하나님을 여러 갈래로 분리시켜 놓고
각 종교들은 '내 말이 맞다, 네 말은 틀리다' 하며 서로를 판단하고 비난하고
서로에게 장벽을 쌓고.. 명분이었긴 했지만, 실제 종교전쟁도 일어났지 않은가.
뭔가 내가 관찰했던 사회현상들과 비슷한 양상이다.
이제 사람들은 교인들의 전도라면 팔짝 뛴다.
교인들도 다른 종교나 믿지 않는 자를 차별한다.
서로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한다.
서로에게 높은 장벽을 세운다.
나는 어둠 속을 거닐다가, 나 자신을 알아가고 사랑하면서 '영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오빠네 부부가 갑자기 떠나고, 사랑하는 할머니가 노환과 병으로 돌아가시고
그리고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지방에서 혼자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셨던 어머니가 3기 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는 무너졌다.
...
어머니와는 어릴 때 잠깐씩 보다가 왕래가 끊기고, 20대 다 커서 어머니와 첫 통화를
하는데, 오빠가 병질환에 걸린 것이 내 탓이라는 냥, 왜 안 챙겨줬냐는 수화기 속 목소리에..
전화를 끊고서 난 서럽게 울었었다.
그래서 더 맘을 닫고 무뚝뚝하게 대하고 선을 그었던 거 같다.
그래도 오빠부부가 허망히 가고 나서 엄마와 연락을 하고 지냈다.
대화 시, 엄마가 전도이야기를 늘 하시지만, 그럼에도 난 교회는 안 가지만 마음으로
항상 믿는다는 내 뜻을 고수하였다. 종교 부분에서는 장벽이 있었지만, 그래도 내 얘
기를 판단 없이 귀 기울여 들어주시고 따뜻한 말들을 해주시고 편지도 써 주시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시곤 하셔서 마음적으로 의지를 많이 했었다.
...
내게 마음의 준비 시간도 주지 않으신 채,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동안 괜찮은 척 버텨왔던 것들까지 다시 내게 몰려왔다.
어머니의 집을 정리하면서 더 슬펐던 거 같다.
소박한 살림살이들, 물줄기가 시원치 않는 주방 수전..
옷이나 신발도 그리 많지 않고.. 아프셨을 때 어떻게 음식을 차려드셨는지
냉장고에도 음식이 별로 없다. 내가 보내준 고등어가 냉동실에 있었다.
책을 좋아하시고 늦은 나이에도 자격증을 따고 일을 하셨다.
그렇게 일하신 돈으로 내게 용돈을 주셨다.
편지 속에 같이 보내주시곤 하셨다.
혼자서 이곳에서 3기의 암으로 고통이 극심했을 텐데도 그걸 견디고
있었을 것이 그려져서.. 또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너무 맘이 아팠다.
그동안 무뚝뚝하게 대하고 툴툴댔던 것이 생각났다.
어머니는 너무 늦게 병을 발견해 치료를 거부하셨다.
아프지 않냐고 물었더니, 하나님이 지켜주셔서 그리 아프지
않다고 했다. 하나님 곁으로 빨리 가고 싶으셨던 걸까?
엄마 곁에 있으려고 퇴사하는 과정 중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너무 갑작스러우니 눈물도 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진공 상태고 멍한 기분이었다.
엄마 집을 정리 후, 난 몇 달을 그냥 누워 보냈다.
지치고 기운이 나지 않았다. 정지된 기분이었다.
이전에는 '왜 내게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생기는 거야?'
하고 분노했는데, 이제는 화를 낼 기운도 없다.
우울이 극에 치다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너무 충격을 받으면 어떤 감정이나 표정이 없이 멍해지듯이,
그 상태가 5달을 갔다.
.
..
...
그러던 중, 2022년 2월 즈음 내가 대학시절 작성했던 일기장이 읽고
싶어졌다. 그 시절 내가 해맑아서, 또 첫사랑과의 추억이 담겨 있어서
가끔 들여다보곤 했다.
근데 이제는 좀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계획만 세워놓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몇 십 년 전 계획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그때부터였나.. 달라져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밀가루, 가공식품등의 중독을 끊기 위해 5일 단식을 한다.
그리고 물을 잘 안먹었었는데, 물 섭취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
하루 1리터 이상을 먹는 습관을 들였다.
그 과정에서 나의 고질병을 고쳤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변비약을 꽤 오랫동안 복용해서 난 내 장이
무력해졌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했다. 유튜브 운동영상을
보며 근력유산소운동, 줄넘기, 실내자전거 등을 하였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서와 같이,
(이전 글을 첨부한다. 안 읽으신 분은 참고 바란다)
https://brunch.co.kr/@lighthouse-love/11
나를 하나하나 알아가고, 재검토하고, 재설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 기간 마스크로 피부가 뒤집어지고, 피부장벽이 깨져
내 피부에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사용해 보았다.
먹는 음식도 채소, 과일 등 건강한 식재료로 음식을 해 먹었다.
정신상태가 몸의 상태를 좌우한다 생각해서 찾아보다가,
책장에 '시크릿' 책을 보았다.
그전에 읽었을 때는 붕 뜨던 내용들이 마음에 와닿는다.
'끌어당김'의 관련 책을 섭렵한다.
참 많은 책을 읽은 거 같다.
(추천하는 책은 아래와 같다)
닐 도날드 월쉬_[신과 나눈 이야기 1,2,3]
돈 미겔 루이스_[네 가지 약속], [이 진리가 당신에게 닿기를]
바딤 젤란드_[리얼리티 트랜서핑] 그 외
제이지나이트_[람타 화이트북], [람타 현실창조를 위한 입문서]
조디스펜자_[당신이 플라시보다] 그 외
마이클 A. 싱어_[상처받지 않은 영혼] 그 외
에크하르트 톨레_[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그 외
아니타 무르자니_[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그 외
안케 에베르츠_[9일간의 영혼여행]
론다번_[매직] 그 외
갈증이 나듯이 마구 들이켰다.
감사일기도 많이 썼다. 론다번의 [매직] 책을 추천한다. 28일간 감사연습을 실천하고
감사일기를 작성해 보면서 내가 삶 속에서 사랑을 많이 받는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근데 너무 두둥실 하늘로 떠오를 수 있다. 지구의 물질세계에서 사는 이상은 땅에
발을 붙여야 한다. 너무 사랑으로 뒤덮여서 주위 세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
허나, 그 모든 것에 대한 사랑에 자신을 포함해야 한다.
이원성 원리가 적용되는 지구에서는 건강한 경계설정을 하고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나는 나 자신을 하나씩 다시 알아가고 배우고 사랑하면서
또 시행착오도 겪고, 직장 생활하며 다시 이전에 나로 돌아가기도 했었다.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고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하다.
내가 먹는 음식, 내가 머무는 환경과 어울리는 사람의 에너지와 분위기도
중요하다. 하나씩 내가 이전의 것을 허용할 때마다, 이전의 나로 돌아가려 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진정한 나 자신(사랑)으로 걸어가는 시도를 했고, 하고 있다.
내가 일기장을 보고 싶었던 생각이나,
내가 변화해야겠다는 다짐과 적극적 행동,
또 내게 필요한 영상이나 책 등이 내 앞에 나타나주고,
내 눈에 띄어서 지금까지 이렇게 굳건히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영혼(신)의 인도였다고 생각한다.
이전의 나는 맞지도 않는 직업을 내게 억지로 욱여넣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고,
행복할 자격이 없다 생각하고, 나를 믿지 않고,
나를 싫어하고,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였다.
'삶보다 죽는 것이 더 평온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하나님, 제가 태어난 이유가 있나요?' 묻기도 하고..
그래서 교인들이 영생을 얻고 싶어 할 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난 그냥 전구 퓨즈가 꺼지듯이 소멸하고 싶었다.
...
신을 만난다는 것이 그리 뭔가 미로 같은 설계도가 필요하고
중계자가 필요하고 수많은 단계가 필요한 거 같진 않다.
우린 어쩌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분하고,
그 세계 안에서도 서로의 자격과 급을 나누어..
항상 우리 주위에 있고, 우리와 늘 함께 하는 신의 존재를
어렵게 생각하게 하고 특별 요건이 있어야 하고
선택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게 아닐까?
자신을 온전히 사랑한다면, 나의 빛과 어둠을 다 사랑으로
끌어안으면 영혼(신)을 만나게 된다.
아니, 꼭 그렇지 않아도 신은 우리와 늘 함께 하고 있다.
내 인생이 암흑이었을 때, 여전히 나를 지켜주셨고
날 버리거나 어둠에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길 잃은 어린양이 하나님께 다가오도록 인도해 주셨다.
내가 날 사랑할 수 있게,
내가 날 용서할 수 있게,
조용하고 사랑 가득한 손길로
넌 할 수 있다며, 잘하고 있다고..
그래, 그렇게 나에게 걸어오라고 용기를 주셨다.
내가 그동안 했던 잘못한 일들에 대해서도
나를 벌하시거나 차별하시지 않으셨다.
내게도 빛을 내려주셨다.
늘 우리에게 밝고 따사로운 햇살을 선사해 주듯이,
사랑으로 포근히 안아주셨다.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으로 날 감싸주시고 무거움을 날려 보내주셨다.
가을 저녁 풀벌레 소리로 아름다운 연주를 하시며 날 달래주셨다.
밝게 빛나는 달빛과 별빛으로 어두운 밤에도 밝게 밝혀 주시고
푸르른 나무, 아름다운 꽃, 귀여운 새소리, 각기 다양한 모양의 구름,
아름다운 겨울 눈송이 등으로 날 웃게 하시고
경이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과감하고 다채롭고 조화로운 색감들로
예술적 감각을 표현하시며 감동을 주시고
드넓은 바다, 웅장한 산맥들로 광대함을 표현하시고
독수리의 당당함, 사자의 용맹함을 표현하시며 용기를 주시고
또한, 인간으로서 각자의 몸에 깃든 영혼으로 다양한 체험을 서로
할 수 있게 톱니바퀴 같은 상황들을 오차 없이 정확히 설계하시며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고 알려주셨다.
넌 삶에서 이미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넌 존재만으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널 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하며,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셨다.
우리는 우주의 사랑에너지로 이루어졌고 그 일부분이다.
그 사랑에너지, 생명에너지가 신이다. 신은 모든 것이다.
신을 대항하여 악마가 존재할 수 없다.
신이 모든 것에서 자신을 체험하기 위해 여러 조각으로 분리하였다.
하나에서 여러 조각으로 분리되어 떨어지니, 서로에게 공간이 생기고
이동할 시간이 생겼다. 그러므로 하나가 분리된 것뿐이라면,
시간과 공간이 없는 것과도 같다.
신이 사랑이고 모든 것이면, 자신을 누구인지 경험할 수 없어
이를 체험하고자 자신과 상반되는 두려움을 만들고,
자신을 여러 조각, 여러 형태로 삶을 창조하신다.
신이 사랑이고 모든 것이면,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기에..
사랑의 반대의 개념인 상실, 아픔, 좌절, 혐오, 분노, 질투,
두려움 등을 체험하여 사랑을 알고자 한다.
신이 아닌 것을 경험하면서 신을 체험으로 알고자 한다.
반대를 경험하면서 반대를 깨닫는다.
불안, 긴장, 공포의 경험을 겪어야 고요와 평온함이란 감정이
소중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듯이,
그리고 신이 자신이 누군지 알면 진정한 체험을 할 수 없기에
망각을 사용한다. 또한 고차원이면 신이 아닌 것을 경험하며
자신을 체험할 수 없기에 차원도 나누었다.
이것이 나와 공명하는 것이고,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다.
그리고 죽는다는 건..
물론, 지구 물질세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더는 아름다운
경험을 할 수 없다는 것, 서로 안아주고 감정을 나눌 수
없다는 게 여전히 슬프긴 하지만..
죽는다는 건.. 우리가 항상 밤마다 하고 있는 일이다.
잠을 잔다는 게 무서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긴 하루 끝에 달콤한 휴식과 재충전이고 깊은 평안이다.
편히 잠을 자는 사이, 영혼은 차원을 다니며 우리에게
꿈으로 알려준다. 지구에서의 역할과 생명이 다할 때까지
영혼은 밤이면 자유롭게 차원을 여행하고,
우리가 아침에 깨어날 때는 다시 돌아온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어보면..
어린 왕자가 지구별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자기 별로 돌아갈 때,
무거운 육체를 데려갈 수 없어서, 너의 별로 가게 도와줄 수
있다는 독뱀에게 자신을 물어달라고 요청한다.
어린 왕자는 무거운 육체를 벗고 영혼으로 자기 별로 돌아간다.
우린 죽으면 형태만 바뀌는 것이다.
물질적인 존재에서 비물질적인 존재로, 꿈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고 날아다니는 우릴 보듯이 그렇게 말이다.
우린 하나에서 분리되었고,
자신을 체험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신을 체험하고,
다시 하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내게 펼쳐지는 상황과 다가오는 인물들은 역할과 목적을 띄고
오는 영혼계약적 관계일 수 있다.
신이 모든 것이고, 자신을 체험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각기 다른 몸에 깃들어
자신들의 여정들을 걷고 있는데..
자신이 자신에게 심판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랬다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러니, 나의 글에 공명하든, 공명하지 않든,
자신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껴주고 보살피면서
두려움 없이 삶을 즐기고, 자신을 체험하라.
우리는 이 세상을 두려움, 불안, 걱정, 의심, 분리, 판단의 시선
으로 바라보며 단지 경쟁, 생존을 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고 진정한 자신이 되고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고 체험하려고 태어났다.
우리의 목적은 진화, 성장, 체험, 존재함에 있다.
책[신과 나눈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