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신을 사랑하기가 이토록 힘든 걸까?

진정한 나를 찾기

by 사랑의 등대

우리 주위에 흔히 보이는 모습들이 있다.


종교를 가지고 있고 믿음도 굳건하고 하고자 하는 일의 목표도 생겼고

주위에 이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도 많다고 하는데도

외부와 계속 연결되기를, 연락 나누기를 바라고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못하며

외롭다고 한다.


어떤 이는 유투버로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로 노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창조하며

사람들에게 치유와 사랑을 보내주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각자의 외로움에 서로를 이용하고,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네'라는 영상 제목을 적는다.


어떤 이는 미용사로서, 자신의 재능으로 사람들을 아름답게 해 주고 기쁨과 행복을 주며

자신의 일을 무척 사랑하는 멋진 전문가임에도..

어릴 적 부모의 비난으로 인해 자신이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어떤 이는 가정의 한 주부로서, 가족들을 위해 참고 배려하고 희생하다가

이제는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아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더니,

가족들에게 "변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왜 그럴까? 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왜 우리 모두는 외로워하고 공허함을 느끼며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고

왜 사랑을 희생이라고 생각하게 됐을까?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서지 않았기 때문인가?

외로움이 인간 존재의 당연한 본능인 걸까?








나는 원래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이전의 나도 우울이 밀려오면 굳이 그 어두운 감정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지 않아

혼자서 시간을 보내면서 나름의 치유를 하려고 했던 거 같다.

아님, 고통을 마비시키려고 과식을 한다던지..

회피하려고 영화나 드라마, 쇼 등을 무의식적으로 계속 보고, 연예인들에게 열광했다.

몸에서, 감정에서 신호를 주는데도 내가 돌아봐주지 않았다.

자신이 외로운 상태에서 밖에서 채워줄 것을 아무리 찾으려 해 봤자

채워지지 않고 건강하지 않은 중독증세만 불러일으킨다.



왜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기가 이토록 힘든 걸까?

왜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어버렸을까?

오래 방황하고 혼란스럽고 힘들어 한 순간들..

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걸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어떤 가면이나 조건 없이 취약점이나 그림자까지..

그리고 자신이 거부하고 혐오하는 그 모든 것을 하나로서 사랑하고 통합하면..

모든 것이 치유되고 진정한 자신을 찾으면 외부에서 더 이상 찾을 필요가 없는데...

사회는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길 바랐던 건가?

이는 또한 우리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한 건가?




어쩌면 뭔가 슬픈 일이다.

사랑을 이때까지 다들 잘 못 배우고, 모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학교에서 안 가르치지? 가장 중요한 거 같은데..

혹자는 '사랑은 가정에서 가르치는 거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정의 모습들은 각기 다양해서 모두가 균형적으로 배울 수 없다.



자신을 사랑하고 건강한 경계설정을 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

자신의 재능의 발견과 자신이 하고 싶고 원하는 일을 탐색하고 탐구하고

재능을 펼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아보고, 사명을 찾는 법을 배우고

돈의 흐름과 돈의 소비나 관리방법에 대해서도 배우고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식단을 섭취하고 요리하는 법을 배우고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법을 배우고

운동을 체계적으로 하는 법, 몸의 기능과 쓰임새에 대해 배우고

감정을 다스리고 평온에 머무르고 정화하는 법을 배우고

철학에 대해서도 배우고 그에 대해 생각하고 의견을 펼쳐보고

몸과 마음 영혼, 말과 생각 행동의 창조과정에 대해서도 배우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불확실한 세계를 항해하고 즐기는 법을 배우고

존재상태가 끌어당긴다는 에너지 역학에 대해서도 배우고

우주의 진리와 균형에 대해서도 배우고

학문의 결과를 배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찾아가는 법을 배우고

그 과정을 즐기면서 자신만의 답을 찾았을 때 기쁨을 느껴보는 걸 배우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자신과 삶에 대해 관찰하고

자신의 느낌, 생각을 말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깨달은 것을 삶에 다시 적용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을 알아가고 믿고 사랑하고 사명을 찾아가고

재능을 펼쳐 사회에 기여하고..

서로의 조화, 통합, 공존이 중요함을..

자신 안에 그림자, 어둠까지 모두 하나로 끌어안을 수 있게 하는 방법 등을..

내면이 그러하듯, 외부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느끼고 믿는 것을 창조하고

내가 주의를 기울이고 에너지를 쏟는 것을 끌어당긴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임을..



왜 가장 중요한 진리를 가르치지 않는 걸까?

어릴 때부터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준비물을 갖추게 되면

삶을 두려움과 불안, 의심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 텐데...

두려움 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재능을 펼치며 온전히 살아갈 텐데..










내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라..

이는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알아가고 사랑하는 것과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듯이

나 자신을 알아가고 나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나와 대화를 나누고

그동안 억누르고 상처받았던 모든 상황들에 대해서

진솔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 상황의 기억, 느꼈던 감정을 솔직하게 써 내려가는 것이다.

(나와 대화를 나누는 수단으로 일기장 쓰기를 추천한다

글 쓰기가 영 맞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면 된다)



어떤 거짓이나 가면 없이 들추기 싫은 감정, 기억들까지도

자신과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 아픔을 들어주는 것이다.

어떠한 판단이나 비난이나 죄책감 없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정을 느껴주고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고

존중해 주고 포용해 주고 끌어안아주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많이 힘들었는데, 내가 지켜주지 못했구나'

'그렇게 느꼈었구나. 맞아, 내가 나의 그 점을 싫어했던 거 같아'

'내가 옆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너를 방치하고 회피하고

너의 말이나 감정들을 전혀 들어주지 않고, 외부의 상황, 사람들에게만

신경 쓰고 관심을 두고 있었어.'

'많이 외롭고 힘들었겠구나. 많이 외로웠을 텐데도 날 항상 지켜주고

너의 할 일들을 해주고 있었구나. 고마워.'

'내가 너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고 함부로 굴었는데도

너는 나에게 계속 그 자리에서 사랑을 보내주고 있었네.'


'내가 늘 분노하고, 우울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비하하고

부끄러워하고, 나쁜 생각만 하고, 부정적인 에너지에 집중하고,

건강한 음식도 먹지 않고, 물도 잘 먹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내가 나 자신을 제한하고, 한정하고, 스스로의 날개를 꺾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생각하고 스스로 기회를 버리고,

더 성장하고 확장할 기회를 내가 막고 믿어주지 않고,

네가 진정 원하고 좋아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 주지도 않고,

네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왜 적응하지 못하냐고

너를 탓하거나 비난하고 있었구나.

나의 어긋난 믿음과 생각, 선택들로 널 벌주고 있었구나.

두려워하고 불안에 떨고 있는 너를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안심시켜 주거나 안아주지 못했구나.'



'미안해,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못해 미안해.'



'이제 다시는 너의 손을 놓지 않을게. 항상 네 옆에 있어줄게.

너의 말에 귀 기울이고, 너의 반응을 세심히 살피고,

네가 좋아하고 신나 하는 일을 하고,

더는 남을 기쁘게 하려고 만족시키려고,

나를 작게 만들거나 수축시키지 않을게.

남을 편하게 하려고 날 불편하게 하지 않을게.

누구도 너를 상처 주지 못하게 내가 지켜줄게.

남이 원하는 것에 마음 쓰지 않고 휘둘리지도 않고

내가 원하고 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고 몰입하고

내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할게.

내가 이제 더는 허용하지 않을 거야.

널 믿지 못해서 미안해.

이제야 너에게 돌아와서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이렇게 그동안 지나왔던 일들에 대해 대화를 하나하나 해보면..

일기장이 훅훅 넘어갈 것이다.

그동안 참고 참았던 모든 감정들이, 하지 못했던 말들이

일기장 노트 위로 쏟아질 것이다.

담담하게 지켜봐 주어라..



나 자신을 알아가고,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고,

그동안의 억눌리고 오해했던 감정들을 진솔하게 터놓고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고, 하나하나 치유하고 감싸 안고 부둥켜안아주고,

자신의 그림자까지 끌어안으려는 시도를 하면 할수록

자신과 더 친해진다.



그동안 내가 나 자신을 제한하고,

나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믿지 못해

스스로 주저앉고 회피했던 경험들에서

자신과 하나하나 다시 경험을 채우는 것이다.

자신을 믿어주는 것이다.

지켜봐 주고 이해해 주고 일으켜주고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으로 제한했던 일들이 사실 충분히 잘할 수 있었던 것임을,

어느 일이든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고 불편의 적응단계를 용기 있게 나아가는 것임을,

시도하고 경험하고 실수하고 실패하는 과정에서도 성장의 기쁨을 느끼는 것임을..



어두운 그늘 아래 혼자 움츠리고 있는 나를,

밝고 따뜻한 햇볕으로 나오게 손을 잡고 끌어주는 것이다.

밝고 따뜻한 햇볕으로 나오는 것이 무섭고 두려운 게 아니고,

기분 좋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부모에게 받기를 원했던 사랑을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하나하나 같이 새로운 선택과 시도를 해보고 체험을 하면서

자신과 더 친해지고, 자신을 더 믿게 되고,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된다.

이제는 나와 온전히 보내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즐겁고 행복하다.

불편하다거나 어색해서 끊임없이 외부의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다.

혼자 있어도,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내도,

외롭지 않고 충만하고 넘치고 평안하다.



나는 빛과 어둠으로 빚어졌다.

나는 나의 중심을 잡는다.

나는 나를 선택한다.

인생이란 불길 속에서 데이고 넘어지고 고꾸라지고

끌어당겨지고 비틀거려도 난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운다.

나는 불의 재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이것이 나를 사랑하는 법이고, 진정한 나 자신을 찾는 법이다.



다른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듯이,

그래서 그 사람의 표정, 반응, 감정, 행동들만 봐도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고,

그 사람이 선호하는 것, 선호하지 않는 것, 피하고자 하는 것 등을 알 수 있고,

그 사람이 어떤 것을 하고 있을 때, 진정으로 기뻐하고 신나 하고 행복해하는지,

어떤 일에 열정을 느끼고 창조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지,

어느 음식을 좋아하고, 어느 음식을 거부하는지, 어느 음식이 트러블을 일으키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며, 소화가 안 되고 탈이 나는지,

그 사람이 어떤 상황을 좋아하며, 어떤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느끼고 배려해 주고

존중해 주고 위해주고 사랑해 주듯이..

그것을 자신에게 똑같이, 아니 이렇게 사랑하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자신을 사랑해 주는 것이다.

또 점차 자신을 더 알아가고 사랑해 가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은

결핍이나 필요, 외로움, 조건을 쫓아 타인을 사랑하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미 넘치고 흘러

상대방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 나누어도 소진되지 않는다.

또 이렇게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에너지 상태일 때,

자신과 비슷한,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들의 사랑은 어느 누구를 희생시키지 않고 집착하거나 통제하지 않는다.

서로의 사랑 에너지가 넘치는 상태이므로 더욱 증폭되고 확장될 뿐이다.



결핍이나 필요, 외로움, 조건에 의해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사랑하기에

혹여나 상대방이 떠나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자신이 배웠어야 했거나 깨달았어야 했던 것을 생각하고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내려놓고 신의 뜻에, 우주의 흐름에 따른다.

모든 일에 이유가 있음을 이해한다.

서로가 그 인연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끝났고, 그 인연의 끈이 다했다는 것을..



어떤 외부의 상황이나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의 평화를 깨뜨릴 수 없다.

균형에 치우쳐도 곧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나의 것이면 나에게 오고, 나의 것이 아니면 사라지거나 떠나간다.

움켜쥐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놓아준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떤 타인을 위해서도,

자신을 낮추거나 작게 만들거나 가면을 쓰거나 자신을 속이거나

자신을 잃거나 자신을 손을 놓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우주의 사랑 에너지로 만들어졌다.

높고 낮음이 없고, 크고 작음이 없다.

모두 동등한 존재들이고, 존재만으로 아름답고 빛나고 존귀하다.



사람들 모두가 본인이 곧 사랑임을,

그토록 찾아 헤맸던 모든 것들이 이미 자신 안에 존재함을 기억하기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 부모에게 받았던 상처되는 말과 행동, 잘못된 가치관 주입

등에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을 그 속에 가두고 계속 고통받고 있는데..

생각해 보면, 부모도 그들의 부모에게서 온전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

온전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에,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없었다.

보통 결혼해서 부모가 되는 나이에도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중이고,

아직 자신의 상처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고, 치유를 하지 못한 상태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식에게 왜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지 본인도 무의식적이다.

자식에게 본인의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투사된다.

자식에게 하는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은 곧, 자신에게 하는 말과 행동일 수 있다.

그들도 그들 자신과 친하지 않고,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체험을

해보지 못했다. 그들 의식의 존재 상태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를 이해하면, 그들을 좀 더 연민과 자비로 바라볼 수 있고 그들을 용서할 수 있다.

그리고 부모의 상처되는 말을 의심 없이 믿고 허용했던 것에 대해서,

그로 인해 이때까지 자신이 자신에게 주었던 모든 상처되는 말과 행동들에 대해서도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때,

타인이 진정한 자기 자신에게 다가서지 못해 불안해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때,

타인에게서 자신을 보며 좀 더 너그러운 이해와 자비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부모의 사랑에서 사랑을 배워서 사랑을 희생으로 오해한다.

모든 것에 균형이 중요하듯, 사랑에도 균형이 중요하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소란이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이 희생하면 가족들이 편할 거 같아서.. 나를 희생한다.

이런 균형에서 치우침은 본인을 시들게 한다.

가족들에게 자신을 그렇게 취급해도 된다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자기 삶에서 주인공이지, 그들의 조연이 되고자 태어난 게 아니다.



이제 그러기를 그만두고 가족들에게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건 좋은 신호이다.

가족들에게 선언하라. 그리고 자신에게도 선언하라.

''내가 그동안 괜찮은 척했지만, 난 괜찮지 않아.

그동안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나를 표현하지 못하고 참고 희생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싫은 건 싫다, 좋은 건 좋다, 이 부분은 협력이 필요하다 말할 거야.

이건 내가 변한 게 아니고, 내가 나로서 존재하지 못했던 것뿐이야.

이젠 날 사랑하겠어."



가족이란 행복한 정원에서 다 같이 아름답고 건강한 나무로

자신의 가지를 하늘 위로 뻗어나가며 잎, 꽃, 열매 등으로

자신을 다채롭게 표현하며 아름다운 숲을 만들어가는 것이 좋겠는가,

어느 나무 하나가 햇볕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시름시름 시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 좋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후자처럼 되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배려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라고 배우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이기적인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해야, 넘치게 사랑해야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다.

또 세상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더 느낄 수 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타인에게 줄 수 없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타인에게 따라주려 할수록 더욱더 고갈될 뿐이다.




삶을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더불어 사랑하라.


다른 사람이 원하고 되고 있고, 하고 있고, 가지고 있는 것에 마음 쓰지 말고,

오직 자신이 원하고 되고자 하고 하고자 하고 가지고자 하는 것에 마음을 써라.


자신을 위한 최고의 선택이 남을 위한 최고의 선택이 된다.


책[신과 나눈 이야기] 중에서..




또 반대로 이런 경우도 있다.

이것도 부모의 사랑에서 사랑을 배워서

사랑을 가족들의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고 가족들에게는

손끝 하나 까딱하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이 또한 균형에서 치우쳐 있다.

사랑은 혼자서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 다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이 되고 표현하는 건 최고의 선물이다.

그들이 자신을 찾지 않고 그대로 머물며 자신에게 계속 의존하며 살라고 하는 것은

건강한 사랑이 아니다. 그들을 계속 업고 다녀 제 발로 서지 못하게 함이며,

자신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받을 기회를 뺏는 것이다.

언제까지 자신의 배에 가족 모두를 태울 수 없다.

그들에게 자신만의 배의 선장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을 충분하지 않은, 부족한 존재로 생각하고

늘 의존할 대상을 찾게 된다.



이는 또 누군가가 자신에게 계속 의존하고, 자신을 필요로 해야만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 우린 존재만으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삶 속에서 늘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이다.

그 사랑은 조건적이지 않다. 무조건적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서 '몸, 마음, 영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와 함께 부스터로 작용하는 '감정'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몸은 온전히 나만 바라보는 우직하고 충직하고 성실한 친구이다.

내가 지구의 물질세계를 체험하게 도와주는 나의 일부분이다.

나의 감정, 생각, 존재 상태에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한다.

내가 평온하고 즐거운 상태일 때는 그들도 콧노래 부르며 자기 할 일들을 한다.

하지만 나의 감정이 바닥에 치닫고 분노, 긴장, 불안, 걱정을 하며

부정적인 존재 상태일 때는 그들도 같이 반응한다. 전시상황이 된다.



생각해 보라. 보통의 우리의 존재상태가 어떠한가를..

고요하고 평온하게 있는 법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뉴스와 신문기사를 보고 걱정을 하고,

소셜미디어의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글이나 콘텐츠를 보고,

또 회사에서 유대감 형성을 위해 온갖 사회, 경제, 회사, 타직원을 판단, 비교하고

뒷담 화하기 바쁘다. 집에서는 가족들을 걱정하고 집안일을 걱정하고 재정 상황을

걱정한다. 현재를 걱정하기에도 모자라 과거 상황들이 생각나고 또 화가 난다.

계속 머릿속에서 재상영한다. 낮에 봤던 자극적인 기사나 장면들이 또 생각난다.

이제는 또 미래가 걱정되고 불안하다. 자면서까지 걱정하고 꿈도 꾼다.

24시간 내내 걱정하고 불안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이 계속 올라온다.

몸은 그것을 다 느끼고 담고 있다. 계속해서 손상을 받고 있다.

부정적인 존재 상태일 때, 몸은 긴장과 불안, 두려움의 에너지에 계속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쌓이고 쌓여 더는 못 버티겠다고 몸의 반응으로 알려준다.

허나 다른 곳에 관심이 쏠려 있어 들을 생각이 없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결국 하나둘씩 몸의 증상으로, 병으로 나타난다.

몸의 생기와 활기, 그 반짝이던 빛이 사그라든다.

자신이 왜 이렇게 됐을까 걱정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걱정이 끝이 없다..



몸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참 고마운 친구이다.

우리가 몸을 소중히 대하지 않을 때도 우리를 위해서 호흡, 소화, 배출,

면역, 영양공급, 신체활동 등 늘 자신의 수많은 일들에 최선을 다한다.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지지하고 함께해 준다.

우리가 하려는 일들에 묵묵하게 따라준다.



이제는 몸이 우리에게 하는 말들에 귀 기울여 보자.

어떤 음식을 싫어하고 거부하고 탈이 나는지..

또 어떤 음식으로 내가 몸에게 고통을 주고 있었는지..

입에서는 즐겁지만 몸이 싫다고 몸부림치는 것을 주고 있었는지..

어떤 상황을 싫어해서 손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대는지..

내가 균형을 잡아야 할 때, 무리하게 과로해서 몸을 괴롭히는지..

우리가 자는 시간에 에너지를 충전시키고 몸을 복구하고 재정비하는 일이 필요한데,

늦게까지 안 자고 잠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는지..



몸의 말에 귀를 기울일수록 더 잘 느낄 수 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 몸이 비비 꼬이는구나. 자꾸 시계를 보는구나.

휴식을 가지려 하고, 보상이 되는 무엇을 보거나 먹으려고 하는구나.

원하지 않은 상황일 때, 머리가 아프거나 가슴이 답답하거나

배가 꼬이고 소화가 잘 안 되는구나.


자신이 몸에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재검토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게 내 몸에게 도움이 되어서 먹거나 하고 있는 건지,

다른 사람이 좋다니까, 부모나 사회가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하니까,

내 친구가 좋았다 하니까, TV나 매스컴, 소셜미디어에서 유행이니까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말이다.


나 같은 경우는.. 내가 예민하고 건조한 피부인데 어릴 때부터 때를 밀었다.

계속 피부에 손상을 가하고 피부보호막을 없애야 할 때로 오인하고 벗겨내고 있었다.

결국 버티다 못해 피부장벽이 무너졌을 때, 자각할 수 있었다.

벗겨내는 것이 아니라, 수분섭취와 꾸준한 바디로션 케어가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그러한 것들을 몸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감정을 몸의 반응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데,

나침반으로 삼을 수 있다.



두려움이나 고통이 올라온다면, 그것은 내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열쇠일 수 있다.

두려움이나 고통을 회피하거나 숨거나 저항하려 하지 말고 맞서고 통과하여 지나가라.

그 일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어도 됐을 일이었다는 것을,

내 생각이 환상을 씌워 더 크게 보았구나를 깨닫게 되고 자유를 느끼게 된다.

그렇게 하나, 둘씩 마주하고 돌파해 나갈 때마다, 자신을 제한했던 것에서

풀어주는 것이 되며 더 큰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어떤 상황이나 사람을 봤을 때,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온다면..

'아, 내 안에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투사되는구나.'

'무엇이 나를 괴롭히지? 이 감정은 언제부터 시작된 거지?'

'이 상황은 내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거지?'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지? 진정한 나로서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어떤 것을 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기쁨, 환희, 열정, 행복, 즐거움, 평온이 느껴지는지..

'이것을 할 때, 이 사람을 만날 때,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구나.'

'내가 원하는 것이구나.' 하고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은 참 명석하고 전략적이고 똑똑한 친구이다.

내가 지구의 물질세계를 체험하게 도와주는 나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두려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길들여졌다.

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지금 이 순간,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으며

이 세상을 위험과 적으로 가득 찬 세계로 바라본다.

마음은 전면으로 나서서 우리를 보호하고 싸우다가 폭군이 되어버리고 만다.

위험과 적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걱정이 태산이고 방어해야 할 것이 태산이다.

계속된 전시상황으로 그만 변질되어 버린다.

부모에게서, 사회에서, 친구에게서, 타인에게서 들은 상처되는 말과

잘못된 가치관들을 의심 없이 믿고 받아들이면서..

그런 말들과 생각들이 나를 통제하고 구속하게 한다.

내가 타인의 말을 의심 없이 믿고 받아들이고,

나를 지키려다가 변질되어 버린 마음의 생각을 의심 없이 믿을 때마다,

나는 진정한 자신으로부터 멀어진다.



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세세히 재검토하듯이,

내가 의심 없이 믿고 받아들인 생각과 믿음에 대해서 재검토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관점, 관념, 신념, 가족적/집단적 카르마, 자신의 상처,

트라우마, 트리거, 편견, 선입견, 자신의 경험, 자신의 사고방식으로

삶을, 누군가를 바라보게 된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각자 다르게 그 상황을 해석한다.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각자 자신의 세계, 자신의 경험 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사실을 덧붙이고 환상을 덮어씌워 왜곡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정보든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것을 음미해 보라.

나와 공명하는지, 옳다는 느낌이 있는지, 불편한 느낌이 있는지..

그리고 그 앎을 체험해 보라. 체험함으로써 앎을 체득하라.

(물론, 나쁜 일을 굳이 해보라는 뜻이 아니다.)

사랑의 방법에 대해서 그냥 책을 읽어서 아는 것과 그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며 뜨거운 감정을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은 다르다.

어느 한 사람의 세계에서 경험한 주관적인 의견으로

자신의 체험을 제한하거나 구속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것은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타인에게, 가족에게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아도 된다.

타인에게, 가족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을 믿고 신뢰하라.



나 같은 경우는 완벽해 보이는 타인과 날 비교하고

내가 충분하지 않고 부족하고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감이 없어 위축되어 있었고 타인에게 더 마음 쓰고 있었다.

20대부터 늘 외출을 할 때, 화장을 하곤 했다.

어떤 주입된 생각을 믿어서 화장을 해야지만 내가 아름답게 보인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어느 날 남자들의 아침 준비시간이 자유로워 보인다.

'나도 한번 해볼까?'

아침마다 화장하느라 준비시간이 길어져 지쳐가는 것도 있었다.

과감히 생략하고 선크림만 바르고 외출해 본다.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를 구속하던 것에서 탈출하였다.

이렇게 나의 생각들을 재검토하면서 재설정할 수 있다.



그리고 날 위해 방어해 주고 싸워주다가 폭군이 된 마음은..

혹자는 마음을 자아 혹은 악마라 부른다.

영혼을 진정한 나(사랑) 혹은 신 혹은 천사라 부른다.

난 어느 하나가 아니고, 이 모든 것이다.

마음을 미워하지 말고 사랑으로 안아주어라.

날 이 세계에서 지켜주고 보호하다가 변해버린 친구이다.



진정한 나(사랑)로서 새로운 선택과 새로운 생각, 새로운 행동을 하려고

하면 원래 나와 하나였던 마음이었기에 저항이 밀려온다. 관성작용이다.

자꾸 이전의 두려워하고 불안에 떨던 익숙하고 편안한 나로 돌아오라고

끌어당기고 주저앉히고 다시 돌아오라고 속삭인다.

이전의 나로서의 한 장을 닫고 새롭게 나아가려 할 때, 기분이 다운될

수 있다. 괘념치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그때 이렇게 말해볼 수 있다.

'네가 날 그동안 지키느라 힘들었겠구나.

많이 외롭고 무서웠지? 이제 너 혼자 그렇게 싸우지 않아도 돼.

내가 항상 네 곁에 있어줄게. 무서워하지 마. 다 괜찮아질 거야.

나 이제 진정한 나로 거듭나기 위해 모험을 하려는데, 날 좀 도와줄래?'



물론, 이렇게 말해도 이전의 생각들, 온갖 걱정들, 두려움 등이 올라온다.

거기에 같이 북 치고 장구치고 꽹과리 치고 축제를 벌이지 말라.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 그 생각은 더 증폭되고 감정까지 부스터 작용을 하면

내가 생각하는 것을 끌어당기게 된다.

하늘에 구름 지나가듯 봐주고 있기 힘들면, 나의 주의를 돌린다.

내가 되고자 하는 진정한 나(사랑)로서의 생각을 하고,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한다.

이전의 선택과 생각, 행동을 하더라도 자신을 다그치거나 비난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다시 다음날 새로운 나로서 선택을 한다.

진정한 나(사랑)로서 닻을 내리고 내가 나에게 등대가 되어준다.

내가 나에게 나침반이 되어준다.

진정한 나(사랑)로 향해 한걸음, 한걸음 걸어 나간다.

두려움을 맞서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



새로운 나로서 선택하는 것이 많아지고,

그 경험들이 나쁘지 않고, 기분 좋고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의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생각들이 점차 옅어지고 멀어진다.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있어도 늘 과거나 미래의 걱정, 후회, 두려움으로

뒤덮였던 생각들이 좀 더 조용해지는 거 같다.

그렇게 새로운 나로서, 되고자 하는 진정한 나로서 존재하는 상태가

더 당연하게 느껴지게 된다.

또 그러한 상태일 때, 마음은 나의 명석하고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마지막으로 영혼은.. 의식이고 조용한 관찰자이다.

늘 나와 함께 하고 있다. 무한하고 영원하다.

영혼은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고 크게 소리치지 않으며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한다.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어떠한 판단이나 비난, 통제, 강요를 하지 않는다.

영혼은 우리에게 느낌이나 생각, 체험으로 말한다.

두려움에 의해 변질된 마음의 생각과 어떻게 구분을 해야 할까?

영혼은 사랑의 의한 느낌과 생각이다.

날 확장시키고 자유롭게 하고 가볍게 하고 기분 좋게 하고 평화롭게 한다.

순간의 직감, 스치는 생각, 또 갑자기 해야 될 거 같은 자연스러운 충동과 같이

부드럽고 조용하게 우리에게 스친다.

또 동시성으로도 말하는데, 영혼의 조용한 인도와 같다.

진정한 자신이 되라고 부드럽게 인도해 주는 손짓이고 응원이다.

내가 지금 듣거나 봐야 할 것이나 해야 할 것, 만나야 할 사람,

기회 등을 조심스럽게 보내준다.

조용히 말하기에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나를 사랑하고 나와 시간을 더 자주 보내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평온한 나로 존재할 때, 영혼의 말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영혼에 의한, 진정한 나로서 선택할 때, 당연한 선택이라는 듯이

맘 속이 시끄럽지 않고 고요하고 평온하다.

일이 쉽게 잘 풀리고 기회가 내게 다가온다.



두려움에 의해 변질된 마음의 생각은

날 수축시키고 갑갑하게 하고 무겁게 하며 기운이 빠지고 시끄럽고

서두르고 재촉하고 조급하며 움켜쥐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닌,

현실의 상황과 타협하려는 두려움과 불안에 의한 생각이다.

이런 선택을 하는 경우, 현실의 장애물이나 벽이 자주 생긴다.




그리고 영혼은 체험으로 말하기도 한다.

영혼은 의식으로서 내 안에 존재하기도 하고, 공기처럼 품고 있기도 하다.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라고 비슷한 상황을

반복해서 내게 보내준다. 이전과 같은 두려움과 방어에 의한 선택을 하면,

형태가 다르지만 비슷한 유형의 상황이 자신에게 계속 펼쳐진다.

이를 알아차리고 내가 되고자 하는 존재(사랑)로서 관점을 변화시켜 살펴볼 수 있다.

'이 상황은 내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 거지?'

'여기서 내가 무엇을 배워야 할까? 무엇을 깨달아야 하지?'

'이전의 나라면 이런 선택을 할 텐데, 진정한 나로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지?'

'내가 진정 원하고 바라는 것은 무엇이지?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지?'

이는 진정한 나로서 선택하는지에 대한 점검같기도 하고, 수수께끼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자신을 희생하며 중심을 바로잡지 못한 사람에게

통제하는 사람이 다양한 상황으로 끌려온다.

진정한 자신을 선택하지 못하고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그에 해당하는 상황을 선사하여 준다.

우리가 원하고 선택하는 것을 우리에게 준다.



자신을 사랑하고 중심을 찾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히 얘기하고

상대방에게도 건강한 경계설정을 할 수 있고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믿어주고

과감히 한 발 내디뎌 보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물해 주는 것이 된다.







'몸, 마음, 영혼'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서 있지 않고

서로 정렬되어 있고 한 마음, 한 뜻일 때..

'감정'이란 열정이 부스터 되어 내가 되고자 하고 원하고

하고자 하는 것을 창조할 수 있게 한다.



영혼의 영감,

마음의 생각,

몸의 행동,

감정의 열정이 한데 모여..

참된 자신이 되고 참된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고 진정한 자신(사랑)이 되고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는 것 말고는 더는 할 게 없다.





'나는 나 자신이 되는 위대한 모험을 받아들인다.'


영화[샴페인 프라블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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