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집어삼켜지다
이 이야기는 내가 어둠 속을 거닐다가,
나 자신을 사랑한 과정과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간 과정이다.
나의 이전 글들이 '빛과 어둠을 포용하고 사랑하라', '불편해도 자신을 마주 보고 솔직해져라'
'두려움을 맞서고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이런 말들이 큰 줄기이기에, 내가 나의
빛과 어둠을 포용한 과정을 보여주고 솔직해져야 독자도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한 발 다가
서고, 용기 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나의 이야기를 공개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제는 나의 일부를 감추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겠다는 나의 의지이기도 하다.
두려움도 올라오지만 내가 공개된 공간에서 글을 쓰고자 했던 목적을 다시 상기시켰다.
그래서 이전에 가족이나 연인, 친구에게도 공개하지 못했던 나의 모든 것을 과감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가을에 나무는 낙엽을 떨구고 비가 오는지,
해가 뜨는지, 서리가 내리는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생명을 서서히 내면으로 움츠린다.
그 나무는 죽은 게 아니다. 기다리는 거다.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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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의 시간을 가지면서 내가 나 자신을 그래도
좀 치유했던 시기가 30대 초반이었던 거 같다.
새로운 직장에 취직을 하고 나에게 호감을 갖는 사람도
있는 거 같다. 운전을 하면 인생이 더 넓어진다는
오빠의 말에 나는 운전면허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내게 호감을 표하던 그 사람은 그 빌미로 내게
카톡으로 말을 건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장에도 찾아온다.
드라이브를 즐기면서 가까워졌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평소 같았으면 머리에 '경고 신호등'이 떴을 텐데..
그땐 내가 외로웠던 거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우주가 그 만남을 반대하고
있었던 거 같다. 내 핸드폰 번호가 어느 준유명인의
번호라고 어느 게시판에 잘못 올라왔었는지, 모르는
사람한테 그 사람이 맞냐고 묻는 메시지와 전화들이
쇄도했다.
보이스피싱에 넘어갈 뻔도 했다.
은행까지 가서 계좌이체하기 전 내 잔고금액이
안쓰러웠는지 사기 치기를 포기했다.
그래도 양심이 있었나 보다.
그때서야 화가 나서 112에 전화해서 이런 사람들
잡아달라고 한 기억이 있다.
그때 일이 발생했다. 출근하는 아침이었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와 새언니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것이다.
난 믿을 수 없어 말했다.
"아빠 지금 농담하시는 거예요?"
아빠는 "내가 그런 말을 농담하겠냐.."라고 하셨다.
멍하니 출근해서 회사에 소식을 전하고 조퇴를 했다.
믿을 수 없기도 하고 차마 그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없어서..
울먹거리며 글을 써서 알렸다.
장례식장에는 새언니와 오빠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다.
그들의 개인적인 문제라서 자세히 거론하진 않겠다.
나는 멍하니 음식 나르는 일들을 돕고..
장례식장에 조카는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런 말이 들렸던 거 같다.
"어머, 눈물 흘리지도 않아.'
근데 큰일이 닥치면, 실감이 나지 않으면 눈물이 무작정
나오지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듯이 눈물이 쏟아
나오진 않는다. 난 오히려 더 고요해졌다.
시간이 지나서 그들이 곁에 없다는 게 실감이 나면
일상생활 속에서 눈물이 났다.
내가 슬픈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억누르는 스타일
이여 서일 수도 있다.
지방에 계시던 엄마도 영문도 모른 채 올라오셨다.
엄마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드셨는지, 발인을
지켜보지 못하시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셨다.
엄마, 아빠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다.
"네가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해도 오빠는 전혀 생각도
안 했는데.."
부모님이 보는 나는 '우울한 아이'였던 거 같다.
오빠 친구들에게 이유를 물어보지만 그들도 잘 모르
는 거 같다. 최근에 오빠 친구들 중 누가 세상을 떠났
는데 거기 갔다가 영향을 받았나? 하고 생각한다.
눈앞에 조카가 뛰어다니고..
난 슬픔보다 분노가 튀어나온 거 같다.
오빠 친구들 앞에서 내 생각만 하면서 말을 던졌다.
"그럼 나는 어떻게 결혼을 하라고-"
오빠 부부가 자식을 두고 너무 책임감 없는 행동을 하고
남은 가족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화부터 났다.
'그럼 자식을 낳지나 말던가' 하면 안 될 생각들도 했던
거 같다.
슬픔보다 분노하고 있는 나를,
오빠 친구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어둠에 집어삼켜졌다.
오빠 부부를 떠나보내고 얼마나 흘렀을까..
아빠에게 전화가 온다. 갑자기 나보고 조카를 키우란다.
난 싫다고 한다. 보육원 얘기를 꺼내신다.
이때 아빠도 나와 같이 혼돈 속이었던 거 같다.
아빠는 신의 도움이었는지, 조카가 좋은 보모 아주머니를
만났다고 한다. 선생님 경력이 있으시고 남편분이 아프셨지만
회복 중에 있고, 아들도 똑똑하게 잘 키워 강사로 잘 나간단다.
조카는 그 아주머니의 안정적이고 따뜻한 사랑 아래 안정을
되찾았고, 그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고 한다.
엄마, 아빠, 형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고모도 있다.
외가 할머니와 이모, 이모부도 있으니까..
나는 내가 키우지 못하겠다고 했지만, 그것에 또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도 억지로 하고 싶진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 생각해 보면 잘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그 당시 나는 우울했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데 억지로 강행했다면 내가 사랑스러운 조카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그럼 난 또 죄책감이 들겠지.. 날 용서하지 못했겠지..
조카를 키우면서 서로 치유됐을 수도 있지만
그 일은 내 일이 아닌 거 같았다.
난 꼭 자식을 친부모나 자기 핏줄이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오히려 친부모에게 더 많은 상처를 받지 않았던가?
친부모가 아니더라도 양육에 노하우가 있고 안정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카를 키웠다면
내가 삶을 바라보는 왜곡되고 위축된 시선이 옮겨가지
않겠는가..
이게 나의 변명이고, 합리화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이제야 사랑하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느라
조카 곁에서 심적으로 사랑을 표현해주고 있지 못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텀이라 생각한다.
조카에게 듬뿍 사랑을 주는 건 아빠와 고마우신 아주머니와
외가에 맡기고.. 나는 나로서 바로서고, 조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든든한 고모가 되는 것을 선택한다.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죄책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오빠 친구들이 전화가 오면, 조카에 대해 물어보면서
내게 직접적으로 얘기하진 않았지만 왜 키우지 않고
보모의 손에 맡기냐고 나를 책망하는 거 같았다.
삼촌이나 이모가 갑자기 혼자된 조카들을 키우는 내용을
다룬 영화들을 보면서도 죄책감을 받았다.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너무 나만 생각하나?'
오빠 부부가 떠난 것을 할머니에게 비밀로 하기로 한 거 같다.
너무 충격적인 소식을 들으면 건강이 상하실까 해서 했던
모두의 거짓말이었지만..
난 그 과정에서 할머니의 전화를 받고 거짓말을 하면서
또 죄책감을 받았다. 할머니의 전화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시고 물어보시는데 진실을
대답할 수 없으니 할머니의 연락을 피하게 됐다.
상황이 너무 힘들어 그 당시 나는 점을 보러 다녔다.
근데 과거는 잘 맞추는 거 같지만, 하나같이 하는 말들을 들어
보면 미래는 내가 하기 달렸단다. 그리고 기억나는 말이
'마음을 열어라'라는 말이었다.
그 대답을 듣기 위해서 돈 내고 찾아온 게 아닌데 싶어
점술가에게 내 사정을 말하면서 하소연했던 거 같다.
점술가는 아빠가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일 거라면서 날 위로해 준다.
내가 틀린 게 아니라고 위로받고 싶고, 내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하고 싶었는지 그 시절 점집을 많이 다녔다.
점집을 다니면서 특이했던 게, 날 안아주고 싶다며
실제로 직접 안아주신 분이 두 명이나 됐다는 것이다.
그 시절 그분들에게 위로를 받았던 거 같다.
| 미래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점술가들은 우리의 과거 패턴을 파악하고 선택할 거 같은 수많은
경우의 수의 미래 중 어느 '한 부분'을 보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 말을 100% 믿고 내면화하면 현실화될 수도 있고 말이다.
우린 자유의지가 있고 언제나 이전의 나와 다른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는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러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자신으로 선택을 한다면 갑자기
천지개벽할 일들이 세상에 펼쳐질지 누가 알겠는가?
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흘러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 수많은 완벽한 톱니바퀴 속에서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누가 계산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자신으로서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건 우주의 흐름에 맡긴 채,
자신의 미래를 점술가에 맡기지 말자.
맹신하지 말고 가볍게 참고용으로 생각하자.
점술가들의 위로로 부족했는지.. 그때 만나던,
우주가 반대하던 그 친구가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해 줄 구원자로 보였는지 매달리게 된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카르마메이트였다.
그 친구와 만나게 된 것도 내가 거기서 배워야 할 게
있었던 거 같다.
나와 비슷한 가정환경이어서였는지,
내가 나를 어느 정도 내려놓아서였는지,
그리 좋아했던 것이 아니었는지,
그 친구에게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줘도 되는구나 생각하게 됐던 거 같다.
성적수치심까지는 다 얘기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남녀의 관계
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극복할 수 있었던 거 같다.
그 친구는 귀엽고 자상한 면도 있었지만,
다혈질이었고 바람둥이 기질이 있었다.
'왜 자꾸 바람둥이를 만나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있다.
내가 다정한 사람을 원하고 애정을 갈구해서 바람둥이가
끌려오나? 너무 외모를 따지나? 하고 말이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대화가 잘 안 되고 갑자기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화를
내기도 했고 그것이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운전을 하다가 아버지뻘 되는 택시기사와도 목소리
높여 싸우기도 했다.
난 그 상황들을 다 느끼면서도 애써 무시했다.
결혼을 해서 내 복잡한 상황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
같다. 내가 매달리고 집착하는 것을 느꼈는지,
그는 나를 막대하기도 했다.
그를 만나면서 나의 낯선 모습을 많이 보았다.
맘에 들지 않았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게 되었다.
나는 내 첫사랑의 모습으로 그 친구를 좋아했던 거 같다.
그리고 그때 내가 첫사랑에게 다 못주었던 사랑을
그 친구에게 주려고 했던 거 같다.
첫사랑에게 남녀 간의 사랑을 배운 것과도 같다.
첫사랑이 내게 주던 사랑대로 그 친구를 사랑하니,
예전에 나 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첫사랑은 한동안 상처를 받으면서 날 꾸준히 사랑
해주었구나 싶어 그의 사랑을 더 깊이 느끼게 됐다.
한 가지 웃긴 추억은,
우주가 반대하던 그 친구와 만날 때 같이 궁합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점술가는 그 친구가 바로
옆에서 듣고 있는데도 내게 직설적으로 말했다.
"도망갈 수 있으면 도망가."
그래도 즐거운 기억도 있다.
국내여행을 많이 다니고 캠핑도 자주 다니면서
숨 막히던 상황에서 힐링도 많이 했던 거 같다.
그런 생각을 한다. 나와는 맞지 않는 상대였지만
다정하고 자상한 성격도 있어서 맞는 상대와는
재밌게 잘 지내겠다고 말이다.
나와 특히 맞지 않았던 것인지.. 헤어진 뒤,
내게 미안했다며 그가 말한 적이 있다.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
나의 상황을 벗어나고 싶으면서 무의식에서는
그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 같다.
그러던 중, 생리를 하지 않았고
내가 할 말 있다는 말에 눈치를 챘는지
이동을 하면서 자세를 바로 앉지 못하고
머릿속이 어지러워 보인다.
그에게 임테기를 보여줬더니.. 주저한다.
그는 원하지 않았다.
내게 맥주를 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그에 동의를 했다.
그와 미래를 그리고 싶지 않았는지
그에 해당하는 선택을 한다.
그래도 그를 계속 붙잡고 있었는데,
어떤 말싸움이 계기가 되어 그가 헤어지자는
말을 한다. 처음 이별할 때는 또 너무나 아팠다.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
집 앞을 찾아가고, 차를 쫓아가고..
또다시 만남이 이어지고..
그 후 나는 그와 헤어짐을 준비하는지 이직을 했다.
그리고 또 어떤 말싸움으로 이별을 말할 때,
"이제는 되돌릴 수 없으니까 잘 생각하고 말을 해"
라고 말했다. 그는 내 손을 놓았다.
1차 이별을 하고 나서, 나는 마음의 정리와 이별준비를
차근차근하고 있었던 거 같다.
그게 도움이 됐는지 2차 이별에 진짜 끝이구나 싶어
눈물이 나긴 했지만.. 어쩐지 고요하고 평안한 나로
돌아온 거 같아 맘이 후련하기도 했다.
사귀는 당시에는 서로 어떤 관계인지 헷갈려도
헤어지고 나서 보면 관계가 명확해진다.
카르마메이트라면 헤어질 때,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관계에서 벗어나면 자유가 느껴진다.
이별하고서 원래 자신의 평안한 상태로 돌아온 것이
만족스럽다. 그 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했기에 어떠한
미련도 없었다. 그리고 언제 그랬느냐 싶게 그 상대에
대한 감정이 증발해 버린다.
난 그 관계에서 깨달은 게 있다.
정신적, 영혼적으로 서로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육체적인 사랑은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을..
그래도 덕분에 그 관계를 통해 나의 성적수치심이
해소된 거 같다. 모든 걸 알고 경험하고 나면 흥미가
사라지듯이 말이다.
....
헤어지고 몇 개월 후, 그가 연락도 없이 찾아온 적이 있다.
영혼의 인도였는지 갑자기 현관비번을 바꿔야겠다고 생각
했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문을 두드리고, 비번을 계속 눌러대는데 진짜 공포였다.
경찰을 불러야 하나 생각했다.
이게 헤어진 후, 카르마메이트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그렇게 끝이 났다.
| 카르마메이트와 헤어지고 싶으면, 몇 차례의 이별을 통해서
자신을 헤어짐에 적응시키길 바란다. 처음은 힘들어도.. 계속
헤어짐에 자신을 적응시키면 이별을 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진정 사랑하고, 또 날 온전히 사랑해 주고 아껴주고 귀히 여겨주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라. 남녀의 관계라는 건, 그 행위를 통해서 서로의
에너지가 교환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아끼며 신중하고 현명하게 선택하라.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