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친구가 되다
이 이야기는 내가 어둠 속을 거닐다가,
나 자신을 사랑한 과정과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간 과정이다.
나의 이전 글들이 '빛과 어둠을 포용하고 사랑하라', '불편해도 자신을 마주 보고 솔직해져라'
'두려움을 맞서고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이런 말들이 큰 줄기이기에, 내가 나의
빛과 어둠을 포용한 과정을 보여주고 솔직해져야 독자도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한 발 다가
서고, 용기 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나의 이야기를 공개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제는 나의 일부를 감추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겠다는 나의 의지이기도 하다.
두려움도 올라오지만 내가 공개된 공간에서 글을 쓰고자 했던 목적을 다시 상기시켰다.
그래서 이전에 가족이나 연인, 친구에게도 공개하지 못했던 나의 모든 것을 과감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당신이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은 결국 당신을 지배한다.
진짜 삶의 시작은 그림자와 마주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악이 아니라, 버림받은 나의 일부이다.
기억해줘야 할 감정들, 받아들여야 할 나 자신이다.
그것을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온전해진다.
[칼 융(C. G. Jung)]
https://brunch.co.kr/@lighthouse-love/17
그와 헤어지고 몇 달 후,
그가 메일을 보내온다.
학교에서 점심 사 줄 테니 만나잔다.
헤어지고 바로 다른 여자를 만나는 사람에게
화가 쉽게 풀리진 않았다.
또 헤어짐의 슬픔을 먹는 걸로 풀어서
내가 살이 많이 찐 것도 있었다.
웃기고 슬픈 일로 보이겠지만
난 그 당시 심각했다.
|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푸는 건 아주 안 좋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살이 찌니 우울하고 자신감이 떨어지고 또 먹는 걸로 풀고 또 살이 찌고..
그 순환에서 빠져나오려면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풀기로 전환해 보자.
나는 잠자는 걸로 전환시켰다. 훨씬 건강한 방법이다.
....
그는 나중에서야 내게 말했다.
"네가 술 먹고 다시 전화할 줄 알았어."
난 그의 말이 이해가지 않았다.
나와 헤어지고 바로 다른 누굴 만나는
사람에게, 헤어짐의 쐐기를 박는 사람에
게 누가 연락을 하고 싶을까?
내 혼란스러운 마음을 그에게 말하지
않았으니 그도 혼란스러웠을 거 같지만,
그게 날 승부욕 돋게 하려는 거짓말이었
다면 아주 잘못된 방법이었다.
사랑은 강요하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에도 알고 있었다.
남자들은 사랑을 쟁취로 배운 거 같다.
친구 간에도 연인 간에도
어느 관계에서도 대화나 소통이 참으로 중요하다.
기본 중의 기본인데..
나의 과거를 보면 혼자서 계속 추측만 하고 있다.
직접 물어보질 않는다. 서로 오해할 수밖에 없다.
그도 날 이해할 수 없어 답답했을 거 같다.
그리고 나는 말을 안 했으면 안 했지,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라서 다른 사람들도
솔직하게 말하는 줄 알았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은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편이란 걸 알게 됐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왜 내게
"넌 솔직하잖아."라고 말을 하는지
나이가 들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 내가 어렸을 때 가정에서 내 의사를 표현하는 법이나
서로 소통하는 법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토론하고 타협하고
절충점을 찾는 법이나 내가 불편한 것을 표현하고 상대가
날 존중하게 하는 법 등의 방식을 배우지 못해서 그런가 싶다.
어릴 때부터 자기 의사를 표현하게 하는 건 참 중요하다.
아이가 시끄럽다고 그런 것을 다 받아줄 여력이 없다고
다그칠 문제가 아니다. 한 아이의 인생을 좌우한다.
중요한 항목이니, 학교에서 교과목으로 가르칠 수도 있다.
몇 년 후에..
신은 우릴 다시 만나게 하려고 하셨는지
버스에서 그를 다시 보게 됐다.
여전히 멋있는 모습이었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그땐 용기가 나서
내가 연락해서 만나보기도 했는데..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우리의 만남은
상처를 더 깊어지게 할 뿐이었다.
그때 당시에 그의 말이 떠오른다.
"남자 믿지 마."
여자를 못 믿게 돼서 그렇게 내게 말한 걸까?
왠지 내가 그렇게 만든 거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다.
그는 힘들 때 내가 생각난다고 한다.
오빠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남자가 힘들 때 생각난다는 건 무슨 의미야?"
또 한편으로 생각한다.
'왜 기쁘고 행복할 때는 생각이 안 나지?'
오빠는 뭐라도 단서를 찾고 싶어 하는
나를 위로한다.
그의 차가워진 모습을 보고 속이 아려온다.
신물이 올라오는 듯이 속이 쓰린 걸 처음
경험했다.
그때에도 난 내 맘을 솔직히 전달하지 못했다.
내가 예전에 왜 그랬는지 터놓고 얘기하지 못했다.
친구라는 이름의 가면을 쓰고 뒤에 숨어 있었다.
공허할 뿐인 관계였다.
그런 관계를 드문드문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 더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는지
그와 나누었던 편지와 그의 일기장, 선물들을
다 버리고 그의 메일도 다 삭제했다.
그의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끝이 났다..
나의 첫사랑이었다.
| 이또한 영혼의 계획이었을까?
내가 그 학교에 들어가서 그를 알아봐야 했고, 만났어야 했고,
내가 성적수치심이 있어서 거부를 했어야 했고,
강압적이고 통제적인 환경에서 자라와서 자유를 갈망했기에
그의 통제에 벗어나려 했어야 했고,
자기 사랑이 부족하여 내 내면의 그림자를 대면했어야 했고..
그때 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며 자신의 가치를 몰라
사랑을 받아도 밀어냈고, 축복 속에서도 부정성에 집중하여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고, 감정의 파도를 겪었으며,
행복해도 행복한지 모르고 계속 자신을 벌주고 있었고,
자신을 믿지 못하고 남의 의견에 휘둘리고 인정과 동의를
구했으며, 사랑을 받기 위해 자신을 잃었으며,
건강한 경계설정을 하지 못하여 자신의 보호를 잠수타는 것
으로 대체했고,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좋은 게 좋은거다'라며 타인을 지나치게 배려하고 눈치보며
맞춰주려 했다. 그러다 지쳐버리면 그 상황을 벗어나려 했다.
불편하고 스트레스 받는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성급하여
혼자 부정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타인의 약점이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게 되면 판단
하고 비난했다. 내가 나의 그런 모습까지도 안아주지 않았기
에 타인의 그런 모습들을 불편해 했다.
...
첫사랑과 헤어진 후, 난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 공허함과 허탈함을 성장중심의 방식으로 풀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를 파괴하는 방식을 택했다.
첫사랑의 향기가 그리웠는지 흡연도 해본다.
끈적한 침만 생기고 입안이 버썩 마른다.
오빠가 자꾸 가져가서 그만두기로 한다.
그전에는 어둠에 잠시 머물렀다면
그와 헤어진 후에는 어둠과 친구가 되고
해맑음이 잠시 내비치는 정도였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에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공무원 시험에 붙었단다. 하지만 적성에 안 맞아서
나오고 편입을 했다고 한다. 모든 열심히 하던 친구
였긴 했지만, 예체능 쪽에 관심이 있는 줄 알았는데
단시간에 그 모든 걸 해냈다는 게 놀라웠다.
나랑 헤어지면 잘 되는 거 같은 건 내 느낌일까?
왜 헤어졌는데도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경쟁심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나는 멈춰있는데,
그는 성장하고 있어서였나..
나는 할머니집을 떠나 다시 아빠가 사는 지역으로
이사 오게 됐고 오빠랑 같이 살게 되었다.
출퇴근 시간이 길어져 회사를 퇴사하고
집 근처로 알아보았다.
구인란을 검색해 보며 내가 상고 다닐 때,
곧 잘하던 회계를 떠올리며 회계사무소에 지원한다.
구인란에 젤 많이 올라오기도 했다.
회계사무실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지만
일 년의 반이 야근이었다.
일 년의 반이 삭제되고 나머지 반만 정시퇴근
이란걸 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연수를 채우고 일반회사로 이직했다.
그 이후로도 회사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일이 능숙해지면 지루해져서 입퇴사를 반복했다.
그게 어릴 때, 잦은 이사와 어떤 걸 시작하고 끝까지
해내는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몰랐다.
나에게 물어보지 않았고,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꾸준히 일하시고 성실하신데
나는 왜 그럴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당시 여자들의 익명사이트를 알게 됐다.
호기심에 들어가 봤는데 글들이 빠르게 올라온다.
익명으로 수다 떠는 곳이었다. 익명이다 보니
말들이 거칠고 험담과 말싸움이 오갔다.
정치/사회/연예계/주변인들 온갖 것들을 비난했다.
인상이 찌푸려지는 글들이 오고 가고,
나의 별말 아닌 글에 거친 답변을 받고
심장이 쿵쾅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그 익명사이트를 오랫동안 놓지를 못했다.
말은 거칠지만 24시간 늘 얘기할 사람이 있다는 것
이 친근해서였을까? 어둡고 부정적인 에너지에 동화
되어 나도 즐기고 있었다.
그 익명사이트에서 어쩌면 나는 나의 어둠을 맘껏
발산했는지도 모르겠다. 비판, 비난, 험담, 분노,
슬픔, 우울 등 익명이어서 자유로웠다. 책임도 없었다.
하지만 그 부정적 에너지를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나를 좀먹는 일이란 걸 몰랐다.
언제든 그곳을 접속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커져가고 서로에게 어둠을 재충전
시켰다. 서로 누군지 모르고, 서로의 어둠을 내뱉고,
서로 싸우다가 뒤돌아서 또 다른 일상이야기를 나눴다.
그 익명사이트의 중독과 의존성은 오프라인에서의 만남
을 필요치 않게 하였다.
그 무렵 대학친구가 소개팅을 주선하기도 했는데..
나는 누굴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처음 겪은 사랑의 여파가 너무 거세어서 또 한 번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어느 보호장비도 없이 사랑에 빠져보고 사랑에
데였다. 결혼의 선택이 아니면, 나와 제일 가까웠
던 사람과 다시 모르는 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아파서.. 다시 겪기가 겁이 났었다.
사랑의 달콤함과 함께, 내 삶이 흔들리고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리고 다른 누굴 사랑할 에너지가 생기지 않았다.
한 소개팅남이 생각난다.
내가 백수일 때, 한 남자를 소개받았다.
그 남자는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자상했던 거 같다.
자동차 엔지니어 쪽이라 차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그에게 지나가던 차량들을 보며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말했던 거 같다.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헤어지는데
아쉬워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난 좋은 분 만나시라고 문자를 보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내가 백수인게 또 자존심 상했던 거 같다.
나의 취약점을 끌어안지 못한 채, 또 알아서 뒷걸음친다.
지금도 약간 그런 편이지만,
그때의 난 자신의 힘든 이야기나 약점 등을 드러내기를
어려워했다. 좋은 모습, 강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남에게 부탁도 잘 못하고, 힘든 일 있으면
혼자 해결하려 하고, 혼자서 울고, 나의 약점을 드러내
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타인에게 힘든 얘기를 계속하고 자신의 약점을
쉽게 드러내고 감정적인 사람들을 보면 이해를 못 했던
거 같다.
난 동정받는 것도 싫어했다.
날 불쌍하게 보는 시선에 또 자존심이 상한다.
나도 나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그런 시선의 재확인이 날 불편하게 하고
숨 막히게 했던 거 같다.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사랑해서 나의 약점도 타인
에게 건강히 드러내고,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표현
하고, 타인에게 도움을 청할 줄도 알고, 타인의 약점
까지 보듬어줄 줄도 알고.. 누구나 성장하는 과정에
넘어질 수 있고 잘못할 수 있고 그렇게 배워가고
성장해 가는 거라는 걸 몰랐던 거 같다.
어떤 기준점을 놓고 내가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내가 나의 판결자가 되어 괴롭혔다.
나의 감정을 억누르고 하고 싶은 말을 억누르고
내 안에 억눌린 것들이 어둠화되었다.
열등감을 느끼고 자존심이 상하면 나를 성장
시키고 변화시키는 방법을 택하면 되는데..
난 그 자리에서 계속 빙빙 맴돌면서
그 상태를 지속시키고 강화시켰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20대를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자신을 비하하고 부끄러워 했다.
내면을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방법보다
외부를 변경시키는 선택을 했다.
직장에서 모은 돈으로 치아교정을 했다.
오빠가 내게 물은 적 있다.
"왜 하려고 하는 거야?"
"내 콤플렉스야"
앞니 치아가 가지런하지 않고 약간 안쪽을 향하여
윗니, 아랫니가 맞물려 보이는 듯해서 고치고 싶었나 보다.
경험자로서는 꼭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 아니면 하지
않는 게 좋다. 장기간의 치아교정은 잇몸을 약하게 하고,
내려앉게 하고, 얼굴형의 영향을 주어 얼굴이 길어 보일
수 있다. 그리고 교정완료 후에는 치아 뒤에 철사를 달고
살아야 한다. 교정치과에서는 이 얘기까지 해주진 않는다.
그리고 새언니 손에 이끌려 성형외과를 간다.
자기 친구가 쌍꺼풀수술을 하고 대박이 나서 좋은 남자를
만났다고 한다. 마취크림만 바르고 쌍꺼풀수술을 했는데
너무 아파서 간호사 손을 꽉 잡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빠는 쌍꺼풀 수술을 왜 했냐며
이전 사진을 확대해서 보여주면서 한숨을 쉬신다.
코수술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오빠는 새언니를 만나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 나가고
나 혼자 살게 되었는데.. 아빠가 새엄마와 헤어지셔서
나와 당분간 사신단다.
그 시절 나에게 아빠는 불편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같이 산다는 자체가 숨이 막혀왔다.
아빠는 입퇴사를 반복하고 백수로 오래 지내고
있는 내가 못마땅하셨는지,
내게 비수가 되는 말을 던지신다.
"아래층 남자에게 시집이나 가"
마주친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그냥 아저씨 같은
분이었다. 그 말에 상처를 입었다.
| 민감하고 예민한 자식들에게 이러한 자극적이고 상처되는 교육은
좋은 효과를 내지 못한다.
자식의 성향이 승부욕이나 도전욕구가 있어 자극을 주면 그것을
성장동력으로 삼아 발전할 아이인지, 그런 교육이 오히려 사기를
꺾고 더 상처만 주게 되는 방식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에게 맞는 교육방식은 믿음, 지지, 사랑, 칭찬, 격려였다.
보통은 압력이 아닌, 사랑의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한다.
오빠와 새언니는 우울해있는 내가 걱정되는지
어디 같이 놀러 가자 하고,
새언니는 점집을 다녀왔는지 내 속옷을 불태워야
한다고 달라고 한다.
아빠가 다시 집을 얻어 나가시고
나도 집을 오빠네 근처로 얻어 이사한다.
아빠가 날 좀 신경 써달라고 했는지
새언니가 새로 이사 온 집을 꾸며준다.
새언니는 손재주가 좋고 참 똑똑했다.
음식도 척척 잘했다.
이쁘고 재능이 많아 보이는데, 아버지가 아프시고
가세가 기울면서 아버지 간병을 도맡게 됐고
대학 및 유학 지원을 새언니의 언니만 받게 됐던
거 같다.
오빠 하면 많이 힘들어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어릴 때 아빠에게 나보다 더 많이 맞기도 했고
대학시절 늦게 들어온다고 아빠하고 다투고
집을 나가서 대학 학비를 지원받지 못하기도 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버스에서 오빠를 봤던 적이
있다. 오빠는 어디서 지내는지, 밥은 챙겨 먹고
다니는지 말랐고 그때 입고 있던 청바지가 좀
해져 있었다. 버스 안에 여학생들이 그걸 봤는지,
"저거 봐" 하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나는 너무 가슴이 아파서 눈물을 훔치며 등교한
기억이 있다.
대학시절 많이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졌는지
GOD의 거짓말을 구슬피 부르던 모습도..
또 아빠를 닮았는지 화가 난다고 벽을 주먹으로
치던 모습도..
그래도 오빠는 아빠를 그리 싫어하지 않았던 거 같다.
결혼하고 나서는 아빠를 더 챙기려 했다.
남자들만의 동질감인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들이 크면 아빠의 마음을 더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나도 엄마와 관계는 별로 없었지만, 커서 만났어도
아빠보다 더 통하고 이해하게 되는 점이 있긴 했다.
그때 난 나의 감정만 생각해서 우울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나올 생각을 안 했는데,
내가 부담을 주지 않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힘들어했던 오빠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좀 더 단단한 모습이어서 보기 좋았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난 새로운 회사에 취직하고 그에 집중했다.
그 사이 이쁜 조카도 태어났다.
난 회사에 적응하느라고, 또 나 혼자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이사도 직접 계약해보기도 하면서
내 삶에 집중했다.
새언니는 조카를 낳고 산후우울증이 있었던 거 같다.
내가 좀 더 살펴보고 도와줬어야 했을까?
오빠가 회사를 그만두고 푸드트럭을 해보면
어떨까? 하고 내게 물었을 때 한번 해보라고
용기를 주는 말했으면 달라졌을까?
어느 날 새언니와 오빠가 시간차를 두고 카톡이 온다.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내 번호를 다시 알려달란다.
새언니에게 알려주고.. 얼마 뒤에 오빠도 똑같은 요청을
하길래, 퉁명하게 언니한테 가르쳐줬으니 물어보라고 했다.
그냥 내 번호를 가르쳐줬으면 달라졌을까?
| 가족에게 사랑을 주지 못한 것을 왜 며느리에게 떠넘기는지
모르겠다. 본인의 역할을 남에게 떠맡기면 되겠는가?
며느리도 어느 집안의 귀중한 자식이다.
아빠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결혼하는 것을 취직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남편이나 시부모님을
직장상사나 대표라고 생각해라"라고 말이다.
며느리는 어느 기업에 취업한 신입사원이 아니다.
막 부려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
연봉은 톡톡히 쳐주는가? 열정페이라도 주는가?
한국에서 예전부터 내려오는 전통 같은 고정관념인 거 같다.
며느리를 나와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내 집으로 온
종으로 생각하는 것..
이 고정관념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