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처를 비추는 사랑
이 이야기는 내가 어둠 속을 거닐다가,
나 자신을 사랑한 과정과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간 과정이다.
나의 이전 글들이 '빛과 어둠을 포용하고 사랑하라', '불편해도 자신을 마주 보고 솔직해져라'
'두려움을 맞서고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이런 말들이 큰 줄기이기에, 내가 나의
빛과 어둠을 포용한 과정을 보여주고 솔직해져야 독자도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한 발 다가
서고, 용기 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나의 이야기를 공개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제는 나의 일부를 감추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겠다는 나의 의지이기도 하다.
두려움도 올라오지만 내가 공개된 공간에서 글을 쓰고자 했던 목적을 다시 상기시켰다.
그래서 이전에 가족이나 연인, 친구에게도 공개하지 못했던 나의 모든 것을 과감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번 챕터는 즐거운 이야기에 속하지만,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작성해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게 있는 거 같다. 내 상처를 다 치유했다 생각했고,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이야기를 작성하면서 두려움이 올라오는 걸 보게 되고, 내가
나에 대해서 몰랐던 점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사건들의 연관성이 보이기도
한다. 내가 그냥 '난 이제 괜찮아' 하는 것과 내 안의 흉터를 밖으로 꺼내 공개할
때의 따끔따끔한 느낌은 다르다는 것을.. 체감한다.
괜히 '에세이의 솔직함의 경계'에 대해 검색해 본다. 누가 날 말려주길 바라는 듯이..
하지만 내 안에 '두려움'과 '고통'이 올라온다는 것은, 내가 통과해야 할 문의 경계
라는 걸 뜻하기도 한다. 정리해서 보다 보니 반복되는 패턴이 보이는 듯도 하다.
처음으로 글을 쓰면서 고통을 느낀다. 이 챕터를 쓰면서도 너무 부끄러움과 창피함
이 느껴진다. 쓰다가 멈추고 얼굴을 감싸 쥐게 된다. '아니, 이렇게까지 다 써야 해?'
라고 자문한다. 하루하루 글을 수정하고 써가면서 나를 내려놓게 된다.
이 사랑이야기는 나의 큰 축이기도 하고 즐거운 맘에 길게 쓴 거 같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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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상고에서는 공부를 잘해서 지역 전문대학에 진학하였다.
그 당시 개인용 컴퓨터(PC)가 대중화되던 시기였다. 집에 있는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재미를 느껴 해당하는 학과를 지원하였다.
아빠가 시립 원서비만 줘서 서운했던 기억이 있다.
가고 싶었던 사립전문대학이 있었는데.. 할머니를 졸라서 원서비를
받아 지원했으나, 결국 떨어졌다. 전화로 불합격을 확인하고 울고
있자, 아이스크림을 사주시던 할머니가 떠오른다.
그 학교를 가야만 했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도 같다.
언제 슬펐냐는 듯이, 학교생활을 재밌게 잘했다.
그때가 난 제일 즐거운 기억이 많았던 거 같다.
여중, 여고에 다녔었기에 남자친구들도 있어
낯설면서도 신기하고 설렜던 거 같다.
그 당시 나는 그래도 해맑았다.
우울감이 종종 올라오면 혼자 동굴에
들어가고 분노의 일기장을 쓰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수업도 빼먹긴 했지만..
그다음 날이면 다시 훌훌 털어버리고
해맑은 나로 돌아왔다.
어둠 속에 오래 머물러 있진 않았다.
학기를 시작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학교를 가는 버스에서 멋진 사람을 발견했다.
렌즈를 안 껴서 또렷하게 안보이긴 했지만..
그 사람한테 후광이 보였다.
'버스남'을 발견한 것이다.
두근두근..
어.. 엇.. 근데 그 사람이 내가 내리는 정거장에서 내린다.
'같은 학교인가?'
발걸음이 너무 빨라 못 쫓아갔지만, 같은 공학부 건물인
것을 확인했다. 그 후로 종종 그 사람을 버스에서 봤다.
버스에서 보게 되는 날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 사람을 버스에서 말고도, 등교하는 시간에 공학부
건물에서 스치거나 광장에서 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친구들한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야' 하고
자랑했다. 그걸 본 남자동기가 자기 친구의 친구라고
한다. 여자동기도 자기 친구의 친구란다.
버스에서 보고 좋아하게 된 사람이 같은 학교에
같은 공학부에 아는 친구로 엮여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의 이름과 학과를 알게 되었다.
오빠 느낌이었는데 같은 학년이란 것도 알게 됐다.
공학부 건물 1층에 그림 전시회를 했다.
괜히 "여기 OO의 그림은 없냐~" 너스레를 떨었는데,
그의 이름이 적힌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난 주위를 살핀 후,
'그림 멋지게 그리셨네요 그림과 닮으셨어요" 하고
나의 과랑 이름을 살포시 적어놓는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축제가 열렸다.
해가 지고 어둑한 저녁, 광장에서 공연이 열린다.
광장에 앉아 공연을 지켜보고 있는데
바로 뒤쪽에 그 사람이 앉는다.
근데 옆에 여자도 앉는다..
친구들이 말하기를, 여자친구가 생겼단다.
그날 나는 학과 주점에서 소주를 마셨다.
그의 학과 주점이 바로 눈앞에 보였다.
소주가 연거푸 들어간다.
아빠랑 같이 살 때라 통금이 있어서
무거운 발걸음을 뗀다.
그 후로는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를 한다.
버스나 공학부 건물에서 보이면 반갑긴 했지만,
나에겐 먼 그대였다.
그렇게 1학년이 지나가고, 2학년에 복학생 오빠들이 온단다.
1학년때 남자동기들은 군대문제로 휴학하기도 했다.
복학생오빠들이 5명 넘게 들어왔던 거 같다.
어느 수업에서 교수님이 짝꿍을 정해주셨다.
여자학생들이 의자에 앉아있고, 남학생들이 원하는 자리에
앉게 하셨다. 그때 내 옆자리에 어느 복학생오빠가 앉았다.
자리가 없어서 앉은 건지, 밀려서 앉은 건지 알 도리가 없다.
그 오빠는 학교 수업에 별 흥미가 없어 보였다.
같이 탐구하고 공부해야 하는 수업이었는데,
왠지 앞으로의 수업이 걱정된다.
그러다 같이 반MT를 가게 되었는데
그 복학생 오빠가 '서태지'를 좋아한단다.
'엇.. 나도 좋아하는데..'
노래도 잘 부른다. 자세히 보니 안경도 쓰고 서태지를 닮은
거 같다. 콩깍지가 씐 건지, 내가 환상을 씌워 본 건지
모르겠다.
수업 때, 자세히 보니 눈도 크고 이쁘고 목소리도 좋고
다정한 거 같다. 환상이 커진다.
'환상 속의 그대'로 바라보게 된다.
그 시절 나는 연예인 좋아하듯이 남자를 좋아해서
멀리서 혼자 잘 반하기는 했다. 짝사랑 같은 것 맞다.
그 복학생 오빠는 여자친구가 있고, 여자친구를 사랑한다
는 걸 알았지만 한 번 흘러가는 마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또 버스남을 계속 마주치니,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친구로라도 연락을 해보고 싶어서였는지,
그 당시에는 다모임 친구 찾기가 있어서 그 친구의 메일주소를
찾을 수 있었다. 메일을 쓰고 보내기를 주저하고 있는데..
친구가 전송버튼을 이미 눌렀다.
방아쇠가 당겨졌다.
그 친구에게 답메일이 왔다.
자기 전시된 그림에 글을 적어준 것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글의 내용에서 바람기가 느껴진다. 왕자병도 보인다.
그래도 드문드문 안부메일을 서로 보낸다.
그러다가 그 친구가 만나자고 메일을 보냈는데..
나에게 이상형 같은 존재라서 쉽게 용기가 나지 않는다.
다리가 부러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쉽게 믿는다.
그 친구는 곧 군대를 갈 생각인가 보다.
내가 용기를 내서 한 번 보자고 메일을 보냈는데
시큰둥한 반응이다. 이쁜 여자친구를 데리고 나오라는 둥..
뭔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만나지 못하고 그는 군입대를 했다.
어느 날 메일로 그가 군대 주소를 보냈다.
첫 편지를 쓸 때, 몇 장을 다시 썼는지 모르겠다.
내가 쓴 편지가 그의 손에 간다는 생각에
쓰고 구기고를 반복했다.
편지를 나누면서 그의 새로운 점을 발견했다.
글씨가 이쁘고 편지 장수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6~7장이 넘어가기도 했다.
'참 사랑이 많은 친구군.' 하고 생각했다.
내가 답장 보내기 전에 답장을 주기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내 편지를 받는 게 좋았단다.
나도 군에서 편지가 오면 그날 하루가 기분이
좋았다. '아, 이래서 연애를 하는구나.'
생각도 들었다.
아빤 내게 묻는다.
"왜 자꾸 군대에서 편지가 오냐?"
친구처럼 편안하게 받아줘서 나도 편하게 편지를
썼던 거 같다. 하루는 누나가 시험을 보는데,
합격선물상자 좀 보내달라고 해서 투덜대면서도
보내주기도 했다.
...
그렇게 나의 2학년 학기도 끝나가고 있었다.
나에겐 또 서태지 닮은 복학생 오빠가 있었다.
그 오빠의 생일이었는데, 학과 사람들과 다 같이 밥을 먹고
술집에 들어갔다. 근데 내가 그때 술을 너무 많이 먹었었나 보다.
오빠가 옆에 앉아있고 너무 다정해서 감정조절이 안 됐던 것도 같다.
친구들과 다른 복학생오빠들은 그 오빠의 선물을 사러 가서,
또 그 술자리에서 날 보고 다 눈치를 챘다고 한다.
다른 복학생 오빠가 날 옆에 앉히고 그 친구는 여자 친구가 있으니
이쯤에서 단념하라고 말한다. 난 그에 수긍한다.
그러고 나서 복학생 오빠의 여자친구가 술자리에 왔다.
내가 울라고 운 게 아니고, 그때 여자동기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 여자동기도 뭐 힘든 일이 있어서 얘기를 주고받다가
감정 주체가 안 돼서 눈물이 쏟아졌다.
황급히 술집을 빠져나와서 건물 복도 의자에 걸터앉았다.
술의 힘이었는지, 그동안에 쌓이고 쌓였던 어릴 때부터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서러움 때문이었는지..
걱정되어 나온 다른 친구를 붙잡고 펑펑 눈이 붓도록 울었다.
그 복학생 오빠는 눈치도 없이.. 복도에 나와서
"울지 마, 왜 울고 그래."라고 또 다정하게 말해준다.
여자친구가 있고, 상대에게 관심이 없으면 다정한 성격이라도
다정하게 구시면 안 됩니다! 오해한다고요..
그렇게 한 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그 버스남 친구가 휴가를 나온다고 한다.
그 친구는 편지로는 거의 연인과 같은데
만나게 되면 어떨지 모르겠다고 걱정한다.
난 그때 그 친구를 오해했던 걸 수도 있다.
어느 일부분을 보고 바람둥이로 생각했다.
왕자병, 허세가 보이고 나와는 다른 가정환경이라
다른 세상에서 사는구나 생각했다.
여자가 뭘 좋아하는지 잘 아는 듯해서
'이러니 여자가 많겠지' 생각했다.
그런 생각들이 결합되어 선입견과 편견이 고정됐다.
그 친구를 버스에서 처음 보고 반해서 좋아했지만,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말에 한 차례 마음을 접었었고
복학생오빠 폭풍이 지나간 후, 공허한 상태였다.
그리고 난 가벼운 바람둥이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기대를 접게 됐다.
'그냥 친구로 지내도 좋겠다.' 생각했던 거 같다.
오히려 그런 내려놓음이 정반대의 결과를 끌고 왔다.
나의 욕망이나 욕심 없이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보여주었더니,
내가 상상도 못 한 결과가 내게 끌려왔다.
그땐 뭣도 모르고 한 행동이었지만, 그게 우주의
이치였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
휴가를 나온 버스남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사촌동생 면회를 간다고 한다.
새벽같이 아침에 일어나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일어났냐고 확인 문자를 한다.
'부지런한 녀석..'
그를 만나기 몇백 미터 전, 나의 심장은 쿵쾅댔다.
심호흡을 하며 전화를 걸어 어디 있냐고 했더니
앉아있다고 한다. 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못 찾고
고속버스 정거장에까지 나가본다.
옆에 아저씨가 손으로 가리키며 알려주신다.
신문을 펼치고 있어서 못 알아본 것이다.
그의 옆에 착석했다.
"따뜻한 거 사줄까?" 하며 일어섰는데
알고는 있었지만 키가 훤칠하다.
버스 출발시간이 되어 맨 뒷자리에 앉았다.
난 내가 좋아한 사람을 만나게 돼서인지
신기해서 쳐다봤다. 그도 힐끔거리면서
장난스러운 웃음을 웃는다.
내가 기대가 없어서인지, 편지를 나눈 기간이 길었어서
편했던 건지, 나의 장난스러움이 마구 나왔다.
그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 재밌어서 더 해주었다.
그 시절 '엽기적인 그녀'란 영화가 인기였기도 했다.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친오빠를 닮은 듯한 친근한 느낌
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긴 시간을 왕복해서 고속버스를 타는데
도 불편한 느낌은 없었다. 난 편지 때문인가 했다. 그리고
이건 남자들이 내게 하는 질문인데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넌 무섭지 않아?"
내가 뭘 무서워해야 하나? 처음 보는 사람과 장거리 여행을
하는데, 넌 왜 무서워하지 않느냐 이 뜻인가?
몇 번 이런 질문을 받았던 거 같다.
그때마다 나는 "나는 널 믿지."라고 말해준다.
가는 동안 그 친구는 나한테 뭘 그렇게 많이 사주는지
배가 터질 거 같다. 그 전날 술을 마셨어서 속이 안 좋다.
그 친구가 사촌동생 만날 때는 장난치지 말라고 나에게
주의를 준다.
사촌동생이 군생활을 편히 하는 것을 보고
배 아파하는 그를 보고 난 연신 깔깔 웃어댄다.
돌아가는 고속버스 안에서는 졸음이 몰려온다.
가벼운 팔짱을 끼고 있어서인지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잤다.
내가 의도한 건 아니다. 그도 느꼈는지 나의 머리 위에
자기 머리를 기울인다. 난 밑에서 균형 잡느라 힘들었다..
그의 인상적인 면을 발견한다.
신문을 펼쳐서 보는데 넘길 때나 정리할 때나 각을 잡는다.
손톱도 단정하고.. 깔끔하고 꼼꼼한 친구 같다.
그렇게 늦은 시각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고
늦은 식사를 하고 헤어지려는데 데려다준다고 한다.
됐다고 사양한다. 버스를 기다려주면서 갑자기 짤짤이
게임을 하잔다. 자기가 동전 몇 개를 쥐고 있는지 알아
맞춰보라고.. 내가 맞췄는지 신기해한다. 계속 시도한다.
이윽고 내가 탈 버스가 오고, 내가 타려고 나서니..
그가 말한다. "한번 안아보자."
뒤에 사람들 다 있는데 영화 찍는 줄 알았다.
설레어하며 안아주었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
그다음 날은 같이 영화를 봤다.
근데 신기한 점은 내가 1시간 이상 늦었는데도 화를 내지 않았다.
'두사부일체'를 보려는데 다 매진이 되어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아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나의 장난스러운 행동들을 힘들어한다.
안 어울리니까 가만히 있어보란다.
삐져있었더니 고치기를 포기한다.
결국 영화가 다 매진되어 '바닐라스카이'를 예매했다.
기다리면서 영화관 바깥에서 공연하는 밴드도 보고
커피숍에 들어가서 손에 들고 있는 막대사탕으로
주변을 탐색하다 서로를 가리키며 "연결~" 하며
유치한 장난을 즐겼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무슨 내용인지 머리 아파했다.
그 영화를 보게 된 이유도 있었을까?
'오픈 유어 아이즈' 란 말이 생각나서 지금도 종종
찾아보게 된다.
.....
이튿날에는 같이 술을 먹으러 갔다.
군부대에서 빨리 복귀하라는 장난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 한다. 옆에서 웃고 있는 나를 보고
"좋았지" 이런다.
그날 그는 나에게 고백을 했다.
편지를 나눌 때도 내가 자기를 생각해 주는 게 보여서
좋았고, 만나서도 편하고 또 친척동생 면회 갔을 때
내 모습이 좋아 보였다나? 그리고 나를 한 번은 만나봐
야할 거 같았단다.
나는 생각한다.
'편해서 좋다는 게 좋은 뜻인가?'
'더 편한 사람이 있음 떠날 수도 있다는 거 아냐?'
사귀자는 식으로 말을 하면서 자긴 군대에 있으니까
다른 사람도 만나보고 하란다.
난 기대 없이 친구처럼 편하게 대했는데,
뜬금 고백하니 믿을 수가 없다.
'군대에 있으니 외로워서 그런 건가?'
'바람둥이니까 저런 말을 쉽게 하는 건가?'
다시 군대에 들어갈 테고 저러다 말겠지 싶었다.
근데 군대 복귀하고 나서 하루에 3번을 전화한다.
아침, 점심, 저녁.. 적응이 안 된다.
그를 만나고서도 난 우울모드에 빠질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전화를 꺼두었다. 그럼 그는 음성통화를 남겨
놓는다. 편지도 보내준다.
군 포상휴가를 나온단다.
'아니, 뭘 그렇게까지..'
휴가를 나와서는 나에게 자신의 과거를 말해준다.
여차저차해서 예체능 대학에 지원해서 붙었는데
아빠가 반대했고 엄마가 지원해 이 학교에 오게 됐다고..
그리고 사귀었던 여자 이야기도 간략히 해주었다.
나에게도 물었는데 난 대답을 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때의 나는.. 어쩌면 밝고 장난스러운 가면을 쓰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의 어두운 면을 들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침묵했다.
지금에 비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만큼 큰일이 아닌데..
어떤 주입된 생각을 믿어서.. 아빠의 직업을 부끄러워했고,
못 사는 가정환경을 부끄러워했으며, 이혼가정을 부끄러워
했고, 공부 못해서 상고 나온 것도 부끄러워했고,
성적수치심에 대해서는 차마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열등감, 죄책감, 낮은 자존감 등이 날 따라다녔다.
사랑이 많던 그 친구는 모든 일에 열정적이기도 했다.
전화도 매일 자주 해주고, 편지도 잘 보내주고..
그러던 중.. 나는 졸업을 하고 취업 자리를 알아보고
알바를 하기도 했다.
그가 허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전했다.
'눈 쓸다가 다친 건가?'
잠깐 삐끗했나 싶었는데 수술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의병제대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싫어했다. 나중에 아들한테 면목이
없다나? 자존심이 센 친구이긴 하다.
난 알바를 하다 큰아빠의 소개를 받고 한 사무실에
사무직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대학시절과 다르게, 사회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실수하면 혼이 나기도 하고 체면이 구겨지기도 하고
밝지 않은 나의 성격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는 일이 내게 맞는 일인지도 몰랐다.
나도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그 친구도 아팠고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했다.
면회를 오라는 요청이 많아진다.
피곤해서 다음에 가면 안 되겠냐고 하면 삐진다.
아마 나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듯하다.
면회를 한 번 가면 돈이 깨지는데, 월급을 받았
을때 기분 좋게 가고 싶은데.. 쪽팔려서 말을
못한다. 자존심이 상했던 거 같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스킨십을 하는데..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존중해 주지
않는다. 날 사랑하는 건지, 내 몸을 사랑하
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을 해도 소용없다.
이전의 성적수치심과 함께, 성교육으로 인해
잘못된 것이라 생각을 하는지 건강하게 즐길
수 없다. 차단하느라 바쁘다.
...
난 회사생활과 함께 지쳐갔다.
그 친구는 나와 결혼을 할 거라며 아들딸 이름을
짓고 있다. 나에게 콩깍지가 씌었단다.
태어나서 날 만나게 되어 행복하단다.
나는 생각한다.
'나에 대해서 다 모르는데, 왜 사랑한다고 하는 거지?'
'더 맘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떠나지 않을까?'
진짜 궁금해서 그에게 물어본 적 있다.
"날 왜 좋아해?"
"자꾸 그런 질문하지 마. 좋은데 이유가 없는 거야.
네가 믿을 수 있게 보여줄게."
"편한 것도 운명이야."
그때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날 사랑한다는 사람을
믿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날 다 알게 되면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떠날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 열지 말자고 미리 앞서 걱정했다.
그는 나의 가정사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내가 먼저 말하길 기다렸던 걸까?
군에서 편지 보낼 때 나의 주소지가 아빠집, 할머니집 등
여러 번 바뀌어도 나에게 묻지 않았다.
상관없었다는 건가?
그러던 중, 한일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연일 분위기는 들썩들썩했다.
경기가 있는 날은 다들 빨간 티셔츠를 입고 출근하고
근무시간 중 술집에서 같이 응원을 하기도 했다.
하루는 저녁에 축구경기가 있어서 회사동료들 따라
갈까 하다가 오랜만에 대학동기들이 같이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그러기로 한다.
그는 빠짐없이 연락이 와서 왜 신나 있냐고 묻는다.
축구경기 때문에 그렇다 하니 시큰둥하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동기들과의 모임 자리에
서태지 닮은 복학생 오빠도 나왔다.
괜히 반갑다. 한국이 월드컵 4강까지 간 만큼
종종 같이 축구경기 응원을 하게 된다.
그때 이후로 동기들과 술자리도 갖고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는 늦게 들어가고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통금시간을 말한다.
나는 말한다.
"네가 내 아빠야?"
친구들도 만나고 즐기고 싶은데
어느새부턴가 통제를 하려고 한다.
난 통제를 하면 반대로 튀어나가는데..
친구들이랑 놀지 말고 면회를 오랜다.
한 번은 면회를 갔는데,
그 전날 많이 울었는지 눈 위가 빨갛다.
나도 많이 울어봐서 그게 뭔지 알지.
어저께 무슨 검사를 하느라고 많이
아팠단다.
한편은 그런 생각도 든다.
'나도 힘들어서 그에게 힘이 못 되어주는 거
아닐까? 더 좋은 사람 만남 더 사랑을 받지
않을까?'
그의 통제에 벗어나고 싶으면서
나의 의견을 확실하게 전달하지도 못한다.
쌓이고 쌓이면서 지친다.
내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은연중에 복학생오빠 때의 감정과 비교
하게 된다. 헷갈린다.
사랑은, 그 사람이 행복하길 빌어주고
하기 싫다고 하는 건 존중해 주는 거
아닌가? 왜 내가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게 싫은 거지?
왜 하기 싫다는 걸 강요하지?
왜 면회를 강요하고,
왜 내가 스킨십이 싫다고 할 때도
존중해주지 않는 거지?
이런 이야기를 그 친구와 대화로 풀었으면
좋았을 텐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은연중에 그 친구도 내가 마음을
더 열지 않고 밀어내려고 하는 게
느껴졌던 거 같다.
그러니 통제와 강요로 반응했겠지.
그 전날 친구들과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가
면회 약속을 지키지 않자,
그 친구가 나에게 묻는다.
"나 좋아해?"
"응. 좋아하지. 그런 건 왜 물어?"
"난 안 좋아해.." "뭐?"
"난 사랑해."
그 친구도 내 맘이 혼란스러운 것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면서 자기가 아직도 인기 많다며
여자동기들이 면회를 온다고
자랑을 한다.
근데 남자분들, 이런 방법은 성향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여자분들에게 쓰면 안 되는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
그렇게 조금씩 마음이 어긋나던 중에
나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내 친구에게 털어놓았는데..
내 친구와 그가 같이 만나던 자리에서 친구가 그만..
나에게 잘하라는 식으로 말하게 된다.
그는 눈치가 빠르고 똑똑하다.
친구가 자리를 떠나고 나에게 채근한다.
나는 지치고 힘들어서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볼까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는 생각해 볼 시간을 갖자는 건
헤어지자는 것이라며 나를 혼낸다.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란다.
자기가 제대하면 더 잘해줄 생각이
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냐고 한다.
그는 집에 돌아가서 생각해 보니 괘씸했는지..
다음 만남의 자리에서 날 툭 때린다.
| 연애를 할 때, 연애 사업에 대해서 친구한테 고민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
친구는 내 말만 듣고 균형에 치우치고 내편일 수밖에 없고, 내 입장만 생각
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의 조언은 당연 치우칠 수밖에 없다.
친구의 말만 덜컥 믿고 결정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그렇다고 혼자 추측하며 상상하지 말고 연인과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를 하라.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자신에게 솔직하고 타인에게 솔직
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제일 좋은 해결책이다.
나 같은 상황은 나의 여정에서 필요했던 거 같긴 하지만
친구의 간섭은 연애 사업을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할 수도 있다.
어느 날, 여름휴가를 어디로 갈지 정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가 어떤 이야기를 꺼낸다.
자기가 군대 있는 동안 자길 좋아하는 여자친구들이
면회를 왔었단다. 그랬지만 난 네가 제일 좋더라
이런 말을 하고 싶었나보다.
근데 그 얘기를 듣고 난 폭발하고 말았다.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일지 몰랐는지 어리둥절해한다.
"내가 그 얘기를 듣고 너한테 감사합니다 할 거라
생각했어? 왜 그런 얘기를 나한테 하는 거야?"
이미 감정의 기차를 타고 칙칙폭폭 달리고 있었다.
널 믿지 못할 거 같고 어쩌고저쩌고 생각해 볼 시간을
갖자며 전화를 끊는다.
...
그가 없이 친구와 바닷가 여행을 갔다.
바다를 보면서 그가 생각난다.
친구는 그렇게 못 잊겠으면 연락을 해보라고 한다.
그는 화해의 문자를 보내온다.
여행 중이냐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다.
나는 화가 덜 풀렸는지 헤어짐의 문자를 보낸다.
왜 그렇게 자존심을 앞세웠는지 모르겠다.
사랑은 자존심 싸움이 아닌데..
내 안의 열등감이 자존심으로 표현됐던 거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매일 해주던 연락, 일상생활을 나누던 것들이 사라졌다.
생각해 보니 나도 복학생오빠들과 축구경기를 봤는데..
내가 좋아했던 복학생 오빠와 그를 비교하며 감정을
헷갈려하기도 했는데.. 그가 솔직했을 뿐인데..
결국 그에게 다시 전화를 한다.
서로 통화를 하며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가
예전 같진 않다.
나는 졸업 후, 회사생활을 할머니집에서 하고 있었다.
그는 조기제대를 했고, 절차를 위해서 군에 들어가 보기도
하는 거 같았다.
그리고 그날 일이 발생했다.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이 모이자고 해서 술자리를 가졌다.
복학생 오빠들도 온단다. 그날도 술이 문제였다.
늦게 합류하는 동기들도 많아서 이미 취한 상태였다.
그는 내려왔으니 얼굴 잠깐이라도 보자며 내가 있는 곳을
물었다. 도착했다고 해서 술집 밖을 나가 그를 잠깐 보았다.
자기도 친구들을 만난다고 한다.
....
술집에서 내 옆에 앉은 복학생 오빠가 그날따라 이상하긴 했다.
친했던 오빠였고 원래 그런 오빠가 아니었는데 스킨십을 했던
거 같다. 취하기도 취했고 상황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내가 잠깐 불편하고 말지 하고 생각했던 거 같다.
갑자기 그의 전화가 온다.
잠깐 일어나 보란다.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안 보인다.
자기도 내가 있는 술집에 있단다.
난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그가 있는 자리를 찾아가 본다.
친구와 술을 먹고 있다. 휘청거리며 인사를 하고
다시 동기 모임에 합석한다.
지금 와서 이런 생각을 한다.
'그때 그를 대학동기들에게 소개를 시켰어야 했을까?'
'걔가 오란다고 왔을까?'
'그 동기 모임자리에 서태지 닮은 복학생오빠가 있어서
내가 주저했던 걸까?'
그에게 다시 전화가 왔지만, 친구들과 간다고 하고 나왔다.
....
그때 상황에 대해서 그에게 다시 들었을 때
가관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취해서 기억이 가물하다.
동기들과 놀 때 이렇게 노는 거냐고 하면서
복학생오빠들과 만나지 말란다. 학을 뗀다.
난 또 그럼 대학 동기들을 만나지 말라는 거냐며
반문한다. 그는 내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단다.
그의 친구들도 나를 보고서 헤어지라고 했단다.
난 해맑게 말한다.
"친구들에게 어떻게 만회하지?"
난 왜 그 술집에 와서 나를 지켜봤냐고 묻지 못했다.
내가 의심을 심어줘서 나를 믿지 못하고 날 시험하고
있었나?
이 일과 결부되어 또 하나의 사건으로 그와
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그가 군부대를 다녀오면서 잠깐 보자고
고속버스터미널로 나오란다.
그가 도착하면 밤시간이 되는 걸 알고 있다.
버스도 끊기고 택시 타고 가야 되는데 무섭다.
사촌동생한테 같이 나가자고 해본다.
사촌동생은 밤도 늦었고 낼 출근하는데
어딜 나가냐고 말린다.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그에게 너무 늦어서 안될 거 같다고
연락한다.
....
이런 사건들에 나에게 실망을 했는지
연락이 뜸하다. 내가 연락을 해도 금방
끊으려고 한다.
서운하다고 했더니 자기에게 생각할 시간을
달란다. 매일 연락을 해주면서 날 길들이더니
나와 멀어지려 한다.
그와 나누지 못한 일상 이야기가 많아진다.
퇴근 후, 붉게 물든 노을을 보며 공허해진다.
이제 나의 마음을 알 거 같은데,
너무 늦게 알아버렸나?
그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나?
그의 생일이 다가왔다.
케이크와 선물을 바리바리 챙겨서 내려간다고
연락을 했다. 연락이 바로 오지 않는다.
지나가는 열차들을 보면서 앉아있었다.
이윽고 문자가 온다.
그를 만나서 선물들을 전달한다.
왜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아니냐고 투덜댄다.
식사만 하고 나를 일찍 보내려고 한다.
그때 친오빠의 연락이 왔는데,
그는 복학생오빠의 연락인 줄 알았을까?
갑자기 관계얘기를 꺼낸다.
유치하게..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자기 앞으로
터치하지 말란다.
서로 마음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하는
관계가 아름다울 리가 없다.
서로에게 비수가 되는 말을 한다.
그렇게 연락이 뜸하던 시기가 한동안 이어져
이제 연락이 없는 게 익숙해져 간다.
서로 나눈 이야기보다 못 나눈 이야기가 더
많아진다.
관계 가진 후 약을 먹어야 하는 줄 알았다.
약을 먹으니 자꾸 입이 당기고 살이 찐다.
할머니집에 큰아빠네가 들어오면서 다시 아빠동네로
이사 오게 된다. 이번엔 오빠와 같이 살란다.
그는 내려오게 된 걸 반기면서 나보고 축제를 오랜다.
여기 집이 우리 아지트가 될 거라면서 좋아한다.
갑자기 변한 그가 적응이 안 된다.
나의 살찐 모습을 본다.
잘 살지 못하는 집을 둘러본다.
이런 모습도 그가 사랑해 줄까?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
첫 번째 이별을 통해서 그 고통이 얼마나 내 삶을
흔들리게 하고 힘들게 하는 일인지 경험했기에,
그를 더 좋아했다가 상처를 받으면 내가 무너질 거 같다.
두려워서 뒷걸음질 친다.
| 부모에게 단점까지 포용받았던 경험이 적었기에
사랑의 관계에 있어서도 내 단점을 싫어할까
두려워했던 거 같다. 그러니, 자식을 키울 때는
그의 미운점도 사랑으로 안아주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단점을 거부하
지 않고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온 세상이 무너짐을 경험하고 나서 뒤늦게 자신을
사랑하는 과정을 겪지 않아도 된다.
부모의 사랑으로 자랄 때부터 장착할 수 있다.
두려움에 사랑하는 관계에서 친구의 편한 관계를
생각한다. 그에게 장문의 메일을 보낸다.
친구로 지내자고..
그에게 답변이 없다.
답장하라고 재촉한다.
며칠이 지나 그는 알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른 누굴 만난다고 한다.
그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난 친구로 생각한다며
축하한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
왜 이렇게 자존심을 부렸는지 모르겠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