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 | 어둠 속을 거닐다가 나를 찾다#5

고요한 어둠 속에서

by 사랑의 등대

이 이야기는 내가 어둠 속을 거닐다가,

나 자신을 사랑한 과정과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간 과정이다.


나의 이전 글들이 '빛과 어둠을 포용하고 사랑하라', '불편해도 자신을 마주 보고 솔직해져라'

'두려움을 맞서고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이런 말들이 큰 줄기이기에, 내가 나의

빛과 어둠을 포용한 과정을 보여주고 솔직해져야 독자도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한 발 다가

서고, 용기 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나의 이야기를 공개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제는 나의 일부를 감추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겠다는 나의 의지이기도 하다.

두려움도 올라오지만 내가 공개된 공간에서 글을 쓰고자 했던 목적을 다시 상기시켰다.

그래서 이전에 가족이나 연인, 친구에게도 공개하지 못했던 나의 모든 것을 과감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내가 사랑했던 이들..

난 이제서야 기차역에 도착했는데

그들의 기차는 엇갈려 떠나간다.

기차를 따라잡으려 쫓아가봐도

잡히지 않는다.

저 멀리 멀리 떠나간다.







https://brunch.co.kr/@lighthouse-love/20



#5


어느 시점에 오빠부부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큰아빠가

할머니에게 말씀드렸던 거 같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신의 방에 할아버지

사진을 두고 향로에 향을 늘 켜두시곤 하셨는데,

그 때문인지 폐가 안 좋아지셨고..


누가 집에 없을 때, 뭘 꺼내시려고 의자 위에 올라가셨는지

넘어지셔서 고관절 골절로 수술 후, 요양원에 계셨다.

나이 드신 분들은 뼈가 약하셔서 고관절 골절은 치명상이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내가 방황의 시기를 거치고 나니, 나에게 엄마였던 할머니가

너무 빨리 나이 드셨고, 너무 작아지셨고, 또 허리가 휘어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가 젊어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명을 나눠드리고 싶었다.


나이가 드실수록 할머니는 하나, 둘 씩 아픈 곳이 늘어났다.

이비인후과 치료를 잘못하셨는지, 한쪽 귀가 잘 안 들리셨다.

치아가 빠지시고, 발톱은 검게 변하셨다.

할머니에게 필요한 걸 내가 턱턱 해줄 능력이 안되니까 또

죄책감이 들었다.


내 삶은 계속된 열등감과 계속 늘어가는 죄책감과 자기 비하의

연속이었던 거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을 못해줄 때의 마음은 무너지는

일이라는 걸 느꼈다. 다행히 보청기는 작은아버지가 해결해

주셨다.


할머니가 고관절 수술로 거동이 어려우셔서 요양원으로

모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주말에 찾아뵙기도 하면서 거기서

잘 지내시는 줄 알았는데, 그곳이 갑갑하셨던 거 같다.



면회를 마치고 집에 가려는 나를 붙잡고

자신도 집에 가고 싶다고 우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그곳에 계시면서 폐가 안 좋아지셔서

요양병원으로 옮기셨다.


할머니 병문안을 아빠와 조카랑 같이 간 적이 있는데,

호스를 꼽은 채, 병실에 기운 없이 누워있는 할머니를

보고 울고 있었더니.. 어린 조카가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참 마음이 따뜻한 아이라고 아주머니에게도 전달해 주었다.


할머니 병세가 점차 악화되었다.

이젠 밤늦게 연락 오는 게 무섭다.

하지만 세상은 내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

그렇게 할머니는 내 곁을 떠나셨다.

할머니에게 다음 생에는 내 딸로 태어나시라고 했는데,

더 이상 지구에서의 인간의 삶은 졸업하고 싶어서

할머니가 인간의 삶을 선택하신다면..

비물질적인 존재로 도와드리고 싶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아크릴 물감으로 명화 따라 그리기였긴 했지만..

아무 생각 없이 그림에 온전히 집중하고

하나하나 색칠해 나가고 완성하고 또 다음 그림을

그리고를 반복했더니, 열 점 가까이 그린 거 같다.


나는 포옹을 좋아한다. 내가 사랑을 느끼는 자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림도 포옹 그림이 많다.

화려한 색감과 포옹그림에 이끌려 '클림트' 그림과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의 '반고흐' 그림을 따라 그렸다.


왜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오직 캔버스와 붓과 물감만이 존재하는 시간이

멈춘 듯한 그 몰입의 순간이 기분 좋았던 거 같다.





그 후, 어머니의 기도 덕택이었는지 괜찮은 회사에 입사했다.

인자하고 따뜻하고 자애로우신 사장님이었다.

말투는 약간 무뚝뚝하신데, 자비로운 행동들을 많이 하셨다.

휴일이나 상여금 등을 잘 챙겨주셨다.

사장님이 좋으신 분이니, 직원들끼리 싸우곤 했지만 말이다.

사장님을 보면서 나도 나중에 저렇게 따스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했던 거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아빠와 엄마를 챙겨드리려고 했던 거

같다. 오빠의 고충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막내라고 항상 뒤에 빠져서 내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어떤 죄책감도 작용했던 거 같다. 때마다 아빠, 엄마, 조카네

를 챙기느라 여념 없었다. 부모님이 이렇게 안 보내줘도 된다

고 말씀하셨지만, 뭔가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편안했다.



아빠와 조카를 정기적으로 만나고

여름휴가 때마다 지방에 계신 엄마 집을 방문했다.

그전에 오빠와 새언니와도 방문한 적이 있긴 했지만..

엄마가 사시는 곳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한적하고 정겨운

느낌이었다.


늘 도시에서 출퇴근하며 사람들에게 치이며 다니는데

엄마가 사는 동네는 지방이어서 그런지, 거리를 다녀도

한적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좋았다.

나중에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살아도 좋겠다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오면 음식들을 푸짐하게 차려주셨다.

음식솜씨가 좋으셨다. 그리고 식재료들이 도시의

것보다 유난히 커 보여서 신기했다.


엄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시라 대화를 하면 늘 전도로

시작하셨지만, 난 항상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종교 관련 이야기를 할 때도 엄마는

나를 판단하지 않으시고 나의 생각을 귀 기울여 들어주

시고 이해하시려 하셨다.


아빠처럼 언성을 높이거나 무서운 눈으로 보지 않으셔

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

약간의 장벽은 있었지만, 대화다운 대화를 하는 거 같

았고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혼가정에서 자랐고 엄마와 떨어져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갑자기 싹싹하고 사랑 가득한 딸이

될 수는 없었다. 나의 말이나 행동에는 상처가 담겨있었다.

마음이 다 열리지는 않아서 말이 무뚝뚝하게 나오고 방어

적인 태도가 나오기도 했다.



난 궁금한 게 있다.

왜 어릴 때 충분히 사랑을 줘서 키운 게 아니면서

자식이 크면 부모에게 사랑을 줄거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기브 앤 테이크, 주고받음의 이치이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나서야..

나를 사랑하는 과정을 거쳐서야 마음을 열고

달리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형성된 성격이 '금 나와라 뚝딱'

방망이 휘두른다고 해서 바로 바뀌는 게 아니다.


...

엄마는 나와 어릴 때 못다 한 추억을 나누고 싶어

하셨던 거 같다. 나와 같이 살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나는 간섭을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또 계속 혼자 자유롭게 살았어서 엄마의

거듭되는 요청에도 거절을 했다.


엄마는 혼자 사시면서 여행도 많이 안 다니신 거 같았다.

엄마 사는 곳의 바로 옆 지역도 안 가보셨다고 한다.

난 그때 철이 없었던 거 같다.

나의 상처와 아픔만 바라보고 있었다.

같이 여행 가자고 해놓고서 고속버스시간이 다 돼서

시장만 들렀다 돌아오기도 했다.

내가 일찍 간다며 서운해하셨지만,

엄마는 내게 더 뭐라 하시지는 않으셨다.


엄마는 나를 볼 수 있는 여름휴가 때를 늘 기다리셨던 거 같다.


엄마는 내게 편지를 주시고 따뜻한 말씀들을 해주시면서

차가운 나의 마음을 녹여주셨다. 엄마는 책을 좋아하셨고

늦은 나이에도 자격증을 따 간병일을 하셨다.

힘들게 돈을 벌어 내게 용돈을 주시곤 하셨다.


그러다 엄마가 오십견이 오셨다며 일을 그만두시고

주택연금을 받아 생활하시고 도서관에서 사회봉사일을

하신다고 하셨다.


...

그러다 2020년 코로나가 발생했다.

감염이 확산되어 마스크 사재기를 해서

아빠, 조카, 엄마에게 보내고 회사에서도

KF마스크를 쓰고 근무를 했다.

계속 마스크를 쓰니 공기가 부족해서

일하다가 어지러움도 느꼈다.

마스크로 얼굴피부에 습기가 차고

턱 부분에 계속 접촉되니

턱여드름이 발생했다.

이때부터 피부 균형이 깨져

계속 트러블이 발생했던 거 같다.



코로나가 점점 심각해서 그 해는

여름휴가 때 엄마 집을 방문하지 않았다.

다음에 가겠다고 했다.


아빠가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조카 문제로 엄마가 올라오셔서 서로 의논한 적이

있는데, 그때 엄마를 봤을 때 걷는 모습이 건강이

안 좋아 보였다고 말이다.

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2021년 즈음..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오십견인 줄 알고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낫지 않아 병원을 갔는데 검사를 해보니

암이 재발했다고 말이다.

3 기암인데 치료를 거부하셨단다.

담담히 내게 말씀하셨다.


엄마 곁에 있어드려야겠다 생각하고

퇴사하고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새로운 사람을

뽑는데 과정이 더뎌진다.

사장님은 편의를 봐줄 테니 며칠 다녀

오고 며칠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근데 내 마음이 그리 가벼운 상태가

아니었다.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엄마 상태를 확인하러 지방을 다녀온다.

살이 많이 빠지셨고, 힘이 없으신지 계속

누워계셨다. 노인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셨다.

소화가 잘 안 되시는지 죽을 드셨다.

그래도 이때는 거동이 가능하셨다.

나와 같이 동네 산책을 하시기도 하셨다.


내가 걸음이 빨랐는지..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면서 좀 쉬었다 가자

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다시 돌아와서 새로 올 사람들을 면접을 보는데

사장님이 빨리 결정을 하지 않으신다.

맘이 조급해진다.


엄마가 또 연락이 온다.

몸이 안 좋아지셔서 거동이 어렵다고 하신다.

나는 주변 요양원을 알아본다.

엄마의 증상을 설명하며 요양원을 찾아서

다시 지방을 내려간다.


그때 왜 난 엄마에게 친절하지 못했을까 싶다.

엄마에게 따스한 말을 건네지 못하고

그 상황이 무서워서 그랬던 건지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엄마가 거동이 어렵고 힘들어하시는데

퇴사과정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고

엄마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겁이 났다.

엄마는 요양원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던 거 같다.



내려가서 엄마 물품을 챙기고

요양원 직원이 와서 차로 이동하였다.

엄마는 평온해 보였다.

내가 아프지 않냐고 물었는데

하나님이 지켜주셔서 그리 아프지

않다고 하셨다.


그날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엄마는 나보고 우산을 챙기라며

걱정해 주셨다.


회사로 돌아가서도 엄마에게

연락을 하는데 안 받으시면 걱정됐다.

기운이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시면

그렇게 마음이 놓일 수가 없다.


엄마가 다음에 올 때 딸기와 고추장을

가지고 오란다. 알았다고 했다.


....

그러던 중, 요양원에서 연락이 왔다.

엄마의 상태가 심각하단다.

빈혈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한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에

난 회사 휴게실에서 눈물을 쏟았다.


아빠가 엄마 가족들에게도 알 리라 해서

엄마에게 외삼촌 전화번호를 받아

연락을 취한다.


엄마가 그리 빨리 내 곁을 떠날 줄 알았다면..

마음의 준비시간도..

엄마와의 마지막 시간도..

내게 허용되지 않았다.



새벽에 요양원에서 전화가 왔다.

위급하니 지금 바로 내려오라고 한다.

엄마는 뭐가 그리 바쁘셨는지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엄마는 장례식도 원하지 않으셨다.

급히 내려오신 외삼촌과 함께 하루를 지내고

화장 후 엄마 봉안함을 고이 들고 올라왔다.

오빠 곁에 묻어달라고 내게 부탁하셨다.


가족공원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안치해

드리고 나는 한 달을 일어날 수 없었다.

아빠가 엄마 집 정리 얘기를 하시길래,

다시 엄마 집에 내려갔다.


엄마 집을 정리하면서 더 슬펐다.

소박한 살림살이들, 많지 않은 옷과 구두들..

시원치 않은 주방 수전의 물줄기..

어떻게 음식을 차려드셨는지 냉장고에는 음식이

별로 없었고, 내가 보내준 고등어가 냉동실에 있었다.


엄마 젊은 시절에 아름다운 흑백 사진들..

나에게 받은 편지들.. 다시 읽어보니

글들 속에서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왜 그랬을까..


그래도 교회를 꾸준히 다니시면서 교인분들과 왕래하고

지내셨을 거라 생각했는데, 코로나로 교회도 대면예배를

하지 않으면서 혼자서 지내셨던 거 같다.


이곳에서 외롭게 혼자서 아파하시고 견뎌내셨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난 그것도 모르고 무뚝뚝하게 대하고 툴툴거렸다.




....

엄마집을 정리 후, 처리할 일들을 하고 난 뒤

난 몇 달을 그냥 누워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아빠에게 조금 충격을 받은 거 같다.

이혼하셨어도 엄마가 아프고 돌아가셨는데

와 보시지 않으셨다는 것과

엄마집 전세를 주고 올라왔는데..

생전 내게 요청하시지 않으셨던 말을 하셨다.

돈을 얼마 빌려달라는 말씀과

주식에 투자하라는 말에 거절했더니

그중 반은 조카 것이기도 하다란 말씀이..


물론, 내가 이기적이었던 것일 수 있다.

엄마 말은 날 준다 하셨어도

오빠의 것도 있으니까..

신은 체험으로 그걸 내게 알려주려 하신 거

같지만.. 바로 돈 얘기를 하시는 걸 보고

좀 충격을 받았다.


아빠에게 가족과 돈거래는 안 한다 말씀드리고

소액의 돈은 드리고, 일부 금액은 주식투자로

맡겼다.




....

난 고요한 어둠 속에 머물렀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정지된 기분이었다.

나의 감정과 생각들도 고요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지치고 기운이 나지 않았다.


너무 충격을 받으면 어떤 감정이나

표정이 없이 멍해지듯이,


그 상태가 5달을 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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