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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열 Feb 07. 2018

다마스쿠스에 가야 하는 이유

요르단 암만 - 10년 전 나에게 보내는 편지

다마스쿠스행을 포기하려는 너에게


 네가 시리아 다마스쿠스라는 도시 이름을 처음으로 들은 건 대학교 1학년 신소재공학개론 수업 중이었을 거야. 지금까지도 유명한 다마스쿠스라는 도시 이름을 그대로 딴 검이 있는데, 중세에 만들어진 다른 어떤 강철검보다도 뛰어난 강도와 유연성을 자랑해서 다른 칼과 맞부딪쳐도 결코 부러지는 법이 없었다는 내용이었지. 넌 그 내용이 꽤나 흥미로웠던지라 이후에도 오래도록 다마스쿠스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돼.


 다마스쿠스라는 이름을 두 번째로 들은 건 2009년 10월, 요르단 암만을 여행할 때야. 만수르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방명록에 한국어로 적힌 깨알 같은 다마스쿠스 여행 정보를 읽어. 하나같이 이런 말들이 쓰여 있었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친절한 사람들, 사람들이 참 순박하고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바가지나 사기도 없는 곳, 우호적인 현지인들이 집에서 잠도 재워주고 맛있는 음식도 대접해 주는 곳, 너무너무 좋은 곳이에요.’ 시리아는 어디 붙어 있는 나라인지도 잘 몰랐던 너였지만 호기심이 점점 커지고, 일정을 바꿔서라도 그곳에 한번 가보리라 다짐하게 돼.



 그러다 중동만 한 달 반째 여행중이라는 한 한국사람을 만나 육로로 다마스쿠스 가는 방법을 물어봤어. 가장 큰 장애물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인해 시리아를 포함한 중동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라는 사실이었어. 지금 여기 암만에서 다마스쿠스까지 가려면 이스라엘을 거쳐야만 하는데, 여권에 이스라엘 스탬프가 찍혀 있으면 중동 어느 국가에서든 입국을 허용하지 않는다는거야. 이집트로 돌아가서 비행기로 이스탄불에 갈 예정인 네겐 치명적인 상황이 되는거였지.


 결국 다른 방법을 알아보기로 해. 열흘이 지나 이집트 카이로에서 다마스쿠스 가는 비행기 편을 알아봤어. 익스페디아라는 여행사이트에서 당일 밤 12시에 출발하는 $216 가격의 이집트에어 항공편을 발견하지. 불안정한 인터넷 탓인지 결제가 잘 되지 않더니 결국 좌석이 매진되고 기회를 놓치게 돼. 대안으로 다음날 낮에 출발하는 $231 가격의 항공편이 있긴 한데, $15를 더 주고 타는 게 너무 아까운 거야. 그래서 망설이다가 시리아를 갈 경우와 가지 않을 경우로 나눠서 예산을 짜는데 시간을 보냈어. 의외로 갈만하다는 결론을 내리지만, 그 비행 편을 결제하려고 했을 땐 $231짜리가 $290으로 가격이 또 한 번 오른 뒤였지. 넌 항공사의 상술에 괘씸해하며 "아 드러워서 안가." 내뱉고는 그냥 자버려.


 지금 와서 말하지만 그 항공편 값 35만 원을 결코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과감히 지르면 좋겠어. 그래서 꼭 다마스쿠스에 다녀왔으면 좋겠어. 거기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신세도 져 보고 다마스쿠스 검도 실제로 두 눈으로 보고 와. 왜냐하면, 넌 그 후로 10년 동안, 아니 그 이후로도 그곳에 갈 수 없기 때문이야.



 왜 갈 수 없냐고?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자스민 혁명이라는 민주화 운동의 물결이 시리아까지 번져. 그리고 그게 불씨가 되어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이 발발하게 되지. 내전의 여파로 혼란한 틈을 비집고 IS와 쿠르드 반군과 같은 세력까지 등장해.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복잡한 전쟁은 치열하게 계속돼. 설상가상으로 미국, 사우디, 러시아 같은 강대국의 대리전 양상까지도 띠게 되지. 그 결과로 아무 죄 없는 민간인 수백만 명은 목숨을 잃거나 국제 난민이 되어 전 세계를 떠돌게 돼. 네가 게스트하우스 방명록에서 접했던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순박한 사람들’ 이 누구는 정부군으로, 누구는 반군으로, 누구는 IS로,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무고한 희생자로 강제로 나뉘어진 거야.


 한밤 중에 머리 위에 생화학무기가 떨어져 고통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어. 어린 쌍둥이 아기를 폭격으로 잃은 한 아빠는 실어증에 걸린 채 아이들을 차마 땅에 묻지 못하고 끌어안은 채 끅끅대며 울어야 했어. 어떤 가족은 7명 식구가 일부러 좁은 방 한켠에 모여서 자. 그래야 가족들이 고통 없이 모두 한 번에 같이 죽거나, 또는 같이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안타깝지만, 10년 뒤의 넌 이 끔찍한 비극을 그저 먼 나라에서 일어난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여기게 돼. 3년 뒤 입사한 화학회사에서 중동시장을 담당하는 영업자가 돼서 ‘트럭이 폭격을 받아 제품과 차량을 모두 잃었다.’는 시리아 거래처의 메일을 읽으면서도 당장 떨어질 매출부터 걱정하게 돼.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넌, 길에서 한 할머니가 나눠주는 전단지를 기꺼이 받아주는, 그 사소한 도움으로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갈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야. 지하철로 내려가는 계단에 엎드려 구걸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주머니를 뒤져 바구니에 동전 몇 개라도 얹어놓기도 하고. 헌혈도 세 달에 한 번씩은 꼬박 거르지 않았어.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세상을 둘러보며 자신감 넘치게 걸었던 네가 말이지, 10년이 지나면 누군가 건네는 전단지를 몸으로 툭 치고 지나가는 지금의 내가 되어 있어. 동전은 백팩 한 구석에 몇 달이고 쌓여있고, 헌혈은 마지막으로 한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없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회사 업무에 찌들고, 보이지 않는 미래에 자신감은 그 끝을 모르고 추락해.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땅만 보고 걷게 된 것 같아. 나의 어떤 것도 세상과 나눌 여유를 잃어버린 것 같아.



 넌 세계여행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한 기회로 삼고 싶다고 말하곤 했어. 미안하지만 넌 여행기간 안에 그 결론을 내리진 못해. 아니 그 이후 10년이 지나도 ‘그 일’을 찾지 못해. 그래서 방황하고, 차선으로 어영부영 선택한 일도 실패하게 돼. 결국 막다른 길에 와서야 내가 무슨 일을 할 것인지보다는 먼저 ‘난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지. 넌 그 고민 끝에 마침내 ‘사람’을 위한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해. 그리고 그 시작으로 글을 쓰고 라이프코치라는 일에 도전하게 되지. 사람들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같이 뛰어주는, 마라톤으로 치면 페이스메이커와 같은 일이라고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니 여행 5개월 차 빡빡한 일정에 지칠 대로 지쳐서 몸져눕게 되고 3일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잠만 자게 되겠지만, 그래도 다마스쿠스는 꼭 갔으면 좋겠어. 그 행복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겪고 부대끼며 살아봤으면 해. 훗날 그곳의 참상을 마음속 더 깊숙한 곳까지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길 바라. 그러면 타인의 고통이 언젠가 내가 받을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고, 그 마음을 더 잘 헤아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사람'을 위한 일을 하며 만나게 될 많은 이들을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타성에 젖어 기계적으로 대하지 않길. 한 명 한 명의 눈물과 웃음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로써 지지하고 응원하는 ‘인생의 조력자’ 라는 굳건한 소명을 가진 네가 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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