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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열 Jan 16. 2019

꼬맹이의 언어 발달기

아기에서 어린이가 되기까지


 아이가 부쩍 성장했음을 느끼게 해주는 찰나의 순간들이 있다. 예전에 자주 입던 바지를 오랜만에 입혀놨더니 7부가 되어 있거나, 그동안 잘 되지 않던 두 발 점프를 어느새 3연속으로 하고 있다든지, 회사에 있는 엄마와 자연스럽게 전화통화를 할 때와 같은 순간이다. 그 중에서도 아이의 말문이 점점 트여가는 과정을 보는게 무척이나 즐겁다. 폐에서 나오는 바람을 성대를 이용해 소리로 바꾸고, 혀와 입 내부를 의도대로 움직여 정해진 규칙에 맞춰 가공해낸다는 것, 이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를 자연스럽게 습득해가는 아이의 보이지 않는 발달 과정이란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이는 대략 13개월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를 제외한 단어는 무조건 앞 음절 하나만 발음하곤 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비상구의 초록색 표식을 보며 “비!” 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몇 개월이 더 지나자 아이는 웬만한 말은 제법 잘 알아듣는 것 같은데, 그에 비해 말문은 쉽게 트이지 않았다. 여전히 빨간색의 “빨!” 요쿠르트의 “요!” 이렇게 앞 글자만 발음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이는 어른처럼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니 말을 자기 마음에 드는 수준으로 하기 전까지는 문장 전체를 말하길 꺼려했던 것 같았다. 과거 내가 영어 공부할 때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려고 쉬운 표현조차 한참을 생각해서 정리하고 입 밖으로 뱉었던 순간들이 오버랩 된다.



 아이가 19개월 때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때를 시작으로 아이의 언어구사력은 마치 온천이 터진 것처럼 빠른 속도로 늘기 시작했다. 아이와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주변 사물과 현상에 대해 최대한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로 낱낱이 풀어서 쉽게 설명하고자 했다. 최대한 허리를 굽혀 발음할 때 입 모양을 보여주고, 최대한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하려고 애를 쓰곤 했다. 처음엔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영어도 쉬운 어휘로 쉽게 풀어서 말하는게 굉장히 어려운 법인데, 모국어인 한국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저 어린 아이가 알아듣게끔 말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더 머리가 아팠다.


 두 돌이 되기 전 무렵이 아이의 언어 발달이 체감상 가장 빨랐던 시기였다. 아이는 아직 느릿느릿하지만 단어를 붙여서 완전한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어려운 단어도 자기 기준대로 해석해서 의미를 알고 사용하는 것 같았다. ‘나’가 자신을 지칭하는 의미인 것도 어느새 알고 있었고, 말 끝에 “-요" 와 "- 입니다”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할 줄 알았다. 뽀로로 글자카드 100개 단어도 그림을 보고 대부분 맞출 수 있는 정도니 아는 단어 수도 제법 많아졌다.


 짧은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되자마자 ‘왜’를 알려주려고 했다. '왜'라는 개념을 알아야 질문을 할 수 있고, 질문은 세상의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있어 필수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무엇, 누구, 언제, 어디서, 어떻게라는 개념은 이미 자연스레 체득한 듯 보였다. 다만 ‘왜' 만큼은 의외로 의미를 알려주기가 쉽지 않았다. “딸, 왜 나무에 나뭇잎이 없어졌어? 왜냐하면 추운 겨울이 왔기 때문이야.”, “겨울이 왔어. 그래서 나무에 나뭇잎이 다 없어졌어.” 이런 짝을 지은 두 개의 문장을 틈틈이 얘기해주면 인과관계를 감각적으로 습득하는데 도움이 되고, “왜”라는 개념도 자연스레 익힐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나도록 아이는 “왜” 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질문에 ‘왜’를 넣기 시작하고 ‘왜’가 들어간 질문에 그 이유를 말하기 시작한 건 한참이 지난 24개월 무렵이었다. 어린이집을 무척 가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어린이집에 왜 가기 싫어요?” 라고 물어보자 “재미가 업져.” 라고 처음 대답했을 때, 그동안의 노력과 좌절이 한 번에 큰 보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기뻤다.



 의사전달에는 단순히 말 뿐만 아니라 비언어적인 요소도 필요하다. 예전에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풍부한 표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있었다. 내가 말할 때 별다른 표정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구연동화나 연기를 배울까 잠시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아이가 더 긴 문장도 어렵지 않게 말하게 된 무렵, 아이에게 말할 때만큼은 일부러 다양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슬픈 얘기 할때는 입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즐거운 얘기할때는 입을 귀까지 걸기도 하고, 놀라는 모습을 묘사할 때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쩍 벌리려고 했다. 몰래 하는 얘기는 최대한 소곤소곤, 안타까울 땐 눈썹을 구불구불 입술을 삐죽 내밀기도 했다. 말할 때 무표정이었던 아이도 점차 내용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본래 자연스런 발달의 과정이겠지만 표정이 풍부한 아이가 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후 30개월 무렵, 아내와 따로 대화하고 있으면 아이는 장난감 가지고 놀면서 시큰둥한 척 하지만 대화 맥락을 대체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다가 대화에 껴들며 대뜸 “아빠 대출이 뭐야?” 라고 묻는다. 그러다보니 전처럼 최대한 쉽게 풀어서 얘기하려고 하지 않고 이따금씩 오히려 친구에게 말하듯 편하게 얘기해주고 있다. 일부러 더 빠르게 얘기할 때도 있다. 그래도 다 알아듣는다. 표현도 자유자재다. 생각지도 못한 순수한 표현에 빵 터질 때가 많다. 한 번은 자는척 하려고 장난으로 코고는 소리를 냈더니 아이가 달려와 내 팔에 머리를 베더니 이렇게 말한다. "아빠! 머리에 구름 생겨! 코를 골면 머리에 구름이 생겨요!” 그 외에도 주옥같은 표현들이 많다. 탄 고기를 보고 "고기에 그림자가 있어요!" 라든지, 음식을 잔뜩 먹고 체했다가 나았다는 표현을 "풍선이 머리를 지나 배 안에 들어있었어요. 그러다 발을 지나 슝~ 하고 빠져나갔어요!" 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왕이면 이런 구름이면 좋겠다


 말을 잘하는 능력은 살아가면서 큰 도움이 되는 것 중 하나다. 자기를 표현하고, 자신을 지키고, 타인에게 해야할 말을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건 말의 힘에서 나오니까. 언어의 작동 원리나 본질에 대한 감각을 기를수록 다른 언어를 배울 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빠의 감에 의지하는 전문성 제로인 언어 교육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전혀 모른다. 내 딴에 아이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과정, 그리고 실제로 아이의 말이 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자체가 그저 즐겁고 감동일 뿐이다. 나중에 아이의 말솜씨에 못 당하고 항복하는 날도 오겠지만, 그 마음 한 켠에는 분명 뿌듯함이 조용히 자리잡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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