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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에 쓰는 세계여행기
by 두 개의 등대 Mar 25. 2018

정의란 무엇인가

베트남 하노이


 한 남자가 내 앞을 스치듯 휙 지나갔다. 그의 손에는 신문지로 돌돌 말린 칼이 들려있었다. 아차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십수명쯤 되는 현지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모두 나를 적대적인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무서웠다. 여기서 잘못하다간 정말 잘못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 청년인 응옥(Ngoc) 을 처음 만난 건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가운데에 있는 응옥썬사원 앞이었다. 베트남 엽서를 하나 사주지 않겠냐며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 20대 청년이었다. 공손하게 앞으로 모은 두 손, 전통복 같은 진한회색 의상과 어깨에 맨 작은 크로스백, 배려 넘치는 말투에 환한 웃음까지. 가난한 환경을 딛고 영어강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밤에는 좁은 단칸방에서 공부하고 낮에는 관광객들에게 엽서를 팔아 버는 돈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30분의 짧은 대화였지만 외유내강형 모범생 같은 이 친구와 조금 더 친해지고 싶었다.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 또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 날 저녁, 숙소 로비에서 한국 여자를 만나 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용은 이렇다. 며칠 전 한 베트남 남자와 말을 섞게 되었는데, 그가 친절히 가이드를 자청해 왔다. 동쑤언 시장과 호안끼엠 호수를 같이 걷다가 상인들을 만나면 정답게 인사하기도 하고, 몇몇 상인은 흔쾌히 차와 사탕을 내주었다. 경계심을 낮출 무렵 그는 여자를 좁은 골목길로 안내했다. 열쇠로 어떤 집 문을 열더니, 자기 집에 영문판 여행가이드북이 많으니 한 번 들어와서 구경해보라고 친절히 권했다. 들어가보니 잘 때 대각선으로 누워야 할 만큼 좁은 방에 이빨 빠진 대나무 돗자리만 깔려있었고, 덮개 없는 선풍기가 달달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웬지 불편한 마음에 몇 분 뒤 돌아가겠다고 말하니 갑자기 그의 눈빛이 변했다. 손목을 붙들고 그 여자 손에 썩은 향수를 넘쳐 흐르도록 부었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들고 있던 과일과 부채를 집어던지고 뛰쳐 나가려 했지만 이미 문은 잠겨있었다. 그는 공포에 질린 여자를 보고 씨익 웃으며 40달러를 요구했다. 결국 돈을 주고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 몹시 화가 났다. 여자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이 흔들리긴 했지만 그의 얼굴 윤곽과 특유의 회색 전통복에서 오늘 만난 친구인 응옥과 동일인물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말로는 응옥은 20살에 아버지가 하롱베이에서 어부로 일하고 있다고 했는데, 내가 그에게 직접 들은건 27살에 아버지가 월남전에서 전사했다는 것이었다. 그가 한 말은 온통 거짓말 뿐이었다. 감금, 협박, 금전 갈취라는 몹쓸 짓을 일삼는 범죄자에게 이렇게 감쪽같이 속다니. 내일 만나면 실컷 욕을 하든 경찰서로 끌고 가든 해야겠다는 다짐에 활활 불타올랐다.


 그 다음날 그는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던 건 사파와 하롱베이를 다녀오고 난 8일 뒤, 같은 장소에서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꺼냈다.


나: “너 한국에서 온 여자 여행객한테 40달러 빼앗았다며?”

응옥: “내 친구가 그랬다고 들었어. 40달러가 아니라 11달러를 받았다고 들었어.”

나: “그 여자가 네 이름을 말하던데, 그 친구 이름도 응옥이야?”

응옥: “응 같은 이름이야. 오늘 아침에 만났다고 했어.”

나: “열흘 전쯤 이야기인데?”


 말도 안되는 핑계로 이어지는 지루한 꼬리잡기를 끝내고 싶었다. 그는 태연히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나: “길게 얘기할 것 없고, 그 여자 카메라에서 범인 사진을 봤어. 집으로 유인해서 문을 잠그고 협박해서 돈을 뺏은 사람의 사진이라고. 그게 너였고."

응옥: “아, 내가 담배 피던 사진 말하는거야?”

나: “아니, 말 돌리지 마.”


 그새 친구들로 보이는 몇몇이 나타나 언제라도 이 언쟁에 참전할 수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아까 전화로 누군가에게 SOS를 청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응옥은 내가 무례하게 구는 외지인이고 자신은 도움이 필요하다며 주변 행인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듯 했다. 구경꾼들이 하나같이 날 향해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데서 느낄 수 있었다. 이윽고 칼을 든 한 남자가 위협하듯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하고자 했던 말은 꼭 해야겠다 싶었다. "너 같은 쓰레기 하나가 이 좋은 베트남 인상 전체를 먹칠하는거야.” 라는 말을 던지고 황급히 인파를 헤쳐 나왔다.


Ngoc Son Temple 입구


 8년 뒤 가을, 회사원이 되어 하노이에 출장을 왔다. 일정을 일찍 마친 날 호안끼엠 호수를 거닐며 회상에 잠겼다. ‘낯선 사람의 일이었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위해 나섰고, 죽을지도 모른다며 잔뜩 쫄았지만 할 말은 했었지. 지금도 내게 그런 모습이 남아있을까?’ 자문해보았다.


 상사에게 매일 공개적으로 망신당하기 일쑤였고, 멸시와 부당한 대우로 점철된 매 순간이 모여있는 게 내 직장생활이었다. 나를 깎아내리는 수 많은 말과 부정적인 암시에 맞서 힘겹게 버티는 일상이기도 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고 했지만 소용 없었다. 그 말들은 기어코 내 귓구멍 안으로 날아들어와 내 의식과 무의식을 가리지 않고 화살처럼 박혀댔으니 말이다. 점점 힘이 빠졌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모든게 내 탓'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면에서는 '나'라도 내 편이 되어달라고 간절하게 외치지만 ‘나’는 그 외침을 듣고도 무기력하게 고개를 떨궜다. 나란 존재는 보이지 않을 만큼 쪼그라들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한 번이라도 당당하게 내 목소리를 내 보지 못했다. 타인이 부당한 일로 받은 상처를 보며 분노하고 직접 그 대상을 찾아가 따지던 정의감 넘치는 청년이, 막상 자신이 그런 일을 겪을 땐 왜 무방비 상태로 두들겨 맞기만 했던 걸까?  



 그 이유는 아마도 내게 어떤 의도를 주입하고 나를 이용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괴물을 상대로 매번 맞서 싸우기보다는, 적당히 타협하며 자신을 포기하는 태도로 당장의 위안을 삼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 나를 내려놓다보면 조금 속상하기는 해도 억울한 상황을 어거지로 납득할 수는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에 익숙해지다보면 어느덧 괴물의 편을 들기도 하고, 비난의 화살을 나 자신에게로 돌리게 된다. 종국에는 내 안이 텅 비어있으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나’ 가 없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괴물은 그렇게 나의 알맹이를 잡아먹고 점점 더 위압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그런 껍데기 뿐인 삶은 결국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괴물의 앞발에 부스러질 뿐이다.



 이를 깨달은 이상, 어떠한 상황에서도 더더욱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나의 존재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된 힘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 그것만큼 자신에게 정의로운 것은 없으며 그것만큼 자신에게 중요한 것도 없음을 깨닫는다. 먼저 나 자신부터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다른 존재를 위해 나설 수 있는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정의로움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정의로운 사람만이 온전한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는 말의 가치를 진정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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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의 세계여행을 현재의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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