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를 보기 전에 사실 조커와 베트맨의 이야기에 흥미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새로 나온 조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는 친구의 말에 끌리듯이 영화표를 예매했다.
고담 시티라는 가상의 도시 속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모든 일들이 낯설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서 영화 보는 내내 Arthur라는 인물에 공감하면서도 거리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Arthur는 고담 시티에서 홀어머니를 모시며 사는 중년 남성이다. 그는 어릴 적 겪은 사건으로 인해 머리에 손상이 가 웃음을 조절하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다. 이 병 때문인지 정신 병원에도 갇힌 적이 있는 그는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여러 악조건이 있음에도 그는 최대한 웃으려 노력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그가 억지로 입을 찢어 웃으려 하는 것에서 그는 행복하지 않지만 웃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엄마가 "Happy" 라고 입에 달듯 그에게 말하는 것에서 그는 어릴 적부터 웃게끔 강요받아 온 삶을 살아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후 그의 엄마는 친엄마가 아닌 그를 유괴해 학대한 범죄자임이 드러난다.아니면 누군가의 거짓말일까) 영화가 전개되면서 그는 더이상 억지로 웃으려 하지 않는다. 그에게 '웃음'은 거짓된 가치였다. 학대 받은 그는 평생을 웃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자라 웃고 싶을 때 웃지 못하고 웃기지 않을 때 웃어야 했다. 그런 그에게 코미디란 그가 원할 때 웃을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Arthur가 조커가 되는 첫 순간은 그가 첫 살인을 한 뒤 춤을 출 때라 생각한다. 그에게 살인은 우발적 범행이었다. 그러나 이후 그가 공중 화장실 거울 앞에서 춤을 추는 장면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조커가 된다. 그의 춤을 보면 특정 장르가 아닌 그가 자유롭게 그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한 광대 분장이 그를 조커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를 괴롭히던 장애물들을 죽임으로써 극복한 뒤, 자신이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표출하는 순간(춤추는 장면)부터 그가 조커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범행 이 후 그는 자신에게 권총을 주고 상사에게 고발하여 자신의 직업을 빼앗은 동료 광대를 살인 한 뒤에도 계단에서 춤을 춘다. 그 계단은 언제나 자신이 축처진 어깨로 걸어다니던 계단이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감정을 숨기는 불행한 광대 Arthur가 아닌 마음껏 하고 싶은대로 하는 Joker가 된다. 그가 춤을 추는 또 다른 장면으론 자신의 롤모델이 자신의 스탠딩 코미디를 비웃고 그를 자신의 쇼에 이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이다. 이 장면은 그가 살인을 하기 전 추는 장면으로 불행한 자신의 삶을 끝내는 대신 권총을 자신의 비극을 비웃고 이용하는 사람을 향해 쏜다.
Arthur는 불행한 사람이다. 납치되어 거짓된 삶을 살며 병까지 얻어 평생을 진정으로 자신을 위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사는 도시는 분노와 갈등이 넘치고 그의 눈에는 모순과 거짓으로 위선을 부리는 사람들만이 사는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서 조커라는 범죄자가 탄생하는 건 그리 놀랍지 않는 사실일 수 있다.
영화 속 가장 마음이 아픈 장면는 자신이 미친건지 세상이 미친건지 복지사에게 묻는 장면이었다. 유일하게 그에게 공감하는 점은 불행한 삶 속에서 그가 세상을 바르게 살으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웃지 않는 아이에게 웃어주거나 이웃 사람과 장난치는 장면들은 그가 그냥 평범한 시민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동정하진 않는다. 결국 그가 조커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불행이 그의 범죄를 정당화 할 수 없고 그 어떤 근본적 변화 따위는 없다. 당장은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상징이 된 들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건 분노를 표출하고 현실에서 변화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한 극단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변화는 무엇이며 과연 그것이 오래 갈 수 있을까. 또 다른 불행한 삶들을 낳는 악순환이 될 뿐이다.
현실에서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조커라는 범죄자를 추앙하는 영화 속 시민이 될 지 그의 탄생을 막는 사람이 될 지 선택해야 한다. 당연하게 모든 사람이 후자를 선택하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영화 속 고담 시티는 현실과 닮은 점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아마 누군가에겐 현실과 다를 바 없을 수도 있다. 세계화의 시대에서 어느 나라나 격변의 시대를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한국 사회는 유독 극심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도 불행한 삶 속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가만히 있어도 느껴지는 분노와 날카로운 적대감들이 팽배하다. 또한 무조건적인 정의만을 외치며 시민들의 삶에 공감 못하는 정치인과 흥행만을 쫓는 언론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실 세계는 고담 시티와 다르게 분명 의미있는 변화를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눈에 띄진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변화하려 발버둥 치고 있다. Arthur처럼 쉬운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닌 현실을 감당하며 변화하려 자신의 최선을 다한다. 그런 '사람'들이 진정한 변화를 이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