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이 이야기는, 한겨울 미국의 외딴 도로에서 갑자기 멈춰버린 시간에서 비롯되었다.
생의 경계에서 간신히 돌아온 나는, 그날 이후로 많은 것을 잃고 또 새로 배우게 되었다.
이 글은 20대의 내가 겪었던 사고 이후, 회복의 시간 속에서 만난 사람들, 기억들, 그리고 변화된 나의 삶을
마흔을 앞두고 조용히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넌 운이 참 좋은 사람이야.”
우연한 기회로 한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6개월간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고, 생활비까지 지원받는 조건이었다.
나 역시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예기치 못한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의 정확한 순간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뒤늦게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의료 기록을 통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그야말로 큰 사고였다.
의식이 돌아온 건 사고 후 약 일주일쯤 지난 뒤였다.
그동안 여러 번의 수술이 있었고, 나는 중환자실에 누워 진통제와 마취제에 취한 채 악몽과 현실을 오갔다.
그 꿈들은 지금도 놀랄 만큼 생생하다.
경동맥은 일부 찢어졌고, 얼굴 뼈는 24조각 넘게 부서졌다.
경동맥 수술이 신속히 이루어져 목숨은 건졌지만,
안면 골절 수술은 더디고 복잡했다.
눈 주변, 입과 턱은 특히 회복이 어려운 부위였다.
부어오른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고, 무너진 코는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턱과 치아는 철사로 고정되어 입을 벌릴 수도 없었다.
목에 삽관한 자리는 말을 할 때마다 바람이 새고,
물을 삼키면 종종 사래가 들었다.
음식은 씹을 수도, 삼킬 수도 없어 영양제 주사로 버텼다.
가장 그리웠던 건
차가운 물을 벌컥 마시는 감각.
‘먹고 마신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 거울을 마주한 건 사고 후 약 3주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병실 구석 작은 거울 속, 낯선 얼굴을 본 순간 눈물이 터졌다.
처음엔 외모의 변화에 대한 시각적 충격이었고,
그다음은 앞날을 가늠할 수 없는 막막함 때문이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겠나.”
이 얼굴도 내 것이고, 이 삶도 내 것이니
결국 살아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그 순간부터, 마음이 단단해졌다.
슬퍼하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도 담담하게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불안은 여전히 있었지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의지가 생겼다.
사고를 낸 사람에 대한 원망도,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원망할 여유가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 바뀐 얼굴, 흘러간 시간을 붙잡는 대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집중해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배웠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이따금 생각한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었을까?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렇게 큰 사고를 당했으니, 운이 나쁜 거지.”
또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 사고에서 살아남았으니, 운이 좋은 거야.”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대답한다.
절망 앞에서 의연해지는 법을 배운 것.
과거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는 법을 알게 된 것.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