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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사 May 25. 2022

7유형은 정말 미래지향적일까?

7유형이 좌절감이 많은 이유

흔히 7유형을 미래지향적이라고 말한다.

오래도록 이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미래지향'이라는 단어는 진취적이고, 목적지향적이며, 과거는 돌이켜보지 않는 담백하고 냉철한 느낌을 주는데, 정말 7유형이 다 그럴까 의문이 있었다.

그렇지만 단어는 맥락에 의해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에니어그램에서 나오는 표현은 에니어그램 세계관 위에서 해석되어야만 다.

7의 미래지향성이란 세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자기 손으로 직접 처리하고 그 설계도를 파악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Sandra Maitri)


여기에는 내가 어떤 경험을 어떻게 겪어야 한다는 강박, 나의 감정이 어떻고 어때야 하는지 재구성하는 습관, 앞날에 대한 예감이나 예측이 모두 포함된다.


설계도라고 하면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계획표를 세우는 것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미래지향적 태도는 사실상 계획표 만들기 보다도 사소하고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예시를 나열해본다.


A 화제로 이야기를 하는 중 다음 순서인 B 이야기가 이미 떠오른다.

상대가 앞으로 무슨 말을 할지 감이 잡혀서 상대방의 말을 자르고 자신이 이야기를 진행한다.

상대방에게 영향력 있게 또는 재치 있게 맞받아칠 이야깃거리나 대사들이 머릿속에 떠돌고 있다.

점심에 돈가스를 먹으면 좋을 것이다, 카레를 먹으라고 하면 싫을 것이다 라는 식으로 앞으로의 상황을 예상이나 예감한다.

C라는 대답을 기대했는데 D라는 대답을 들으면 기분이 상하거나 의기소침해진다.

E라는 상황이 벌어지면 재미있겠다 또는 자극적이겠다고 느껴서 상황을 그렇게 몰아간다.


위와 같은 것들이 모두 미래를 지향한 모습이다.
모두 '내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또는 '나는 미래를 읽을 줄 안다.'라는 관점이 바탕이 되어있다.

7유형이 기대하고 예상 및 예측하고 조작하려는 것은 거창한 미래가 아니라 '바로 다음 순간'이다.
이렇게 바로 다음 순간에 마음이 가 있는 것을 '계획으로 도망간다'라고 설명한다.
이를 '감정 회피'나 '고통 회피'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현실 회피'라고 해도 좋다.

현실은 결코 이들의 계획이나 그것이 실현되면 어떨까 상상했던 대로 따르지 않으며, 따라서 이들은 언제나 실망한다.(Sandra Maitri)

자연스러운 전개에 대한 믿음이 없는 7유형은 그렇게 전지전능함을 모방하며 무언가를 설명하고, 분석하고, 기획하고, 실행에도 옮기면서도 만족할 수 없다. 진짜 전지전능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풀어서 말하면 타인을 웃기고, 짓궂은 장난을 치고, 똑 부러지게 이론을 해석 및 요약하고, 끌리는 사람을 만나고, 끌리는 모임에 참석했다 하더라도 쉽게 공허해하거나 실망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행위들을 한 이유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에 맞닿지 않아 생겨버린 내면의 지도를 채우는 시도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공허함을 잠시라도 느끼는 것이 괴로워 거의 쉴 틈 없이 다음 활동에 착수하는 7유형이 있는가 하면 외부 활동이나 소비 생활로 도망치기보다는 공허함을 지적으로 분석하거나 문학적으로 승화하는 7유형도 있다.


또는 자신의 괴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진짜 살아내야 할 현실을 회피하고 있을 수도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면 사람들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한다면 혼자서 그렇게 할 것이다.


또한 7유형이라고 해서 누구나 불안과 고통 회피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공허함이나 좌절감에 지독히 빠져든  인생을 낙담하며 살 수도 있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시비를 가리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특정 유형이라는 것이 그들이 갖는 생각과 감정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7유형이 좌절감을 자주 겪는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상황이 주어지는 대로 자연스럽게 반응하지 않고, 삶에 있어 자력으로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 애써 노력했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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