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과 의도와 느낌 때문에 서로를 오해한다
말에는 사회성이 있어 구성원들 사이에서 약속된 사전적이거나 관습적인 의미가 있다.
이것은 말의 객관성이다.
그러나 맥락에 따라 말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어떤 맥락에서 어떤 말을 사용할지는 화자가 판단한다.
또한 말은 화자의 감정이나 욕구, 의도의 표현이다.
마찬가지로 청자도 어떤 말이 어느 맥락에 쓰이면 적절하다는 자기 주관이 있다.
청자는 화자의 말로 인해 감정이나 욕구, 의도를 갖게 되고 또한 화자의 그것을 감지할 수 있다.
이것은 말의 주관성이다.
이러한 말의 객관성과 주관성 때문에 우리는
표현된 말이 같으면 같은 것을 가리킨다고 단정한다.
같은 것을 말했지만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고 확신한다.
상대방의 의도가 어떤 것이라고 확신하여 말의 내용을 자의적으로 편집한다.
상대방이 실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상상도 못 한 채 의미가 잘 전달됐다고 가정한다.
그렇게 하고서는 상대방과 충분히 소통했다고 생각한다.
이 착각 때문에 호감이 생기기도 하고 영원히 대립하기도 한다.
이렇게 각자의 기표와 기의 사이에서 생겨나는 오해는 글을 읽을 때도 발생한다.
책을 한 번 읽었다고 해서 또는 열 번 읽었다고 해서 저자의 생각을 이해한 것은 아니다.
책의 내용이 무슨 말인지 너무 쉽게 이해된다면 저자의 견해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관점을 다시 한번 재확인한 것일 수도 있다.
반대로 영 아니라며 내친 글이 사실은 자신의 상황에 알맞은 메시지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삶에서 이미 추구하고 있는 어떤 가치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무리 표현에 신중을 기했어도 독자가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착각 속에서 우리가 진짜 느끼고 이해해야 하는 메시지들을 놓친 날들이 수없이 많겠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세상은 굴러가기 때문에 진짜 안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익숙한 관념을 뛰어넘어 무언가를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 성급하게 단정 짓는 것은 아닌지, 나의 생각이 충분히 전달됐을 것이라 전제하고 원하는 피드백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