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하늘을 사랑하겠습니다
덕질은 짝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최애를 향한 마음은 사랑의 형태가 맞는 것 같고, 최애는 나라는 사람이 누군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니깐, 이 사랑은 외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최애가 하는 행동들에 사랑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사랑의 마음이 전달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최애는 정말로 노력하는 사람이라 팬들을 위해 하는 모든 것들이 너무 고맙고 기특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엄밀히는 내 사랑은 짝사랑이지 않을까 싶다.
박보영 배우님이 어떤 팬의 편지를 읽다가 우는 쇼츠를 봤는데 꽤나 감동적이게 팬과 연예인의 사랑을 표현했다. 본인(팬)은 나무고, 언니는 숲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언니는 숲에 있는 나무를 하나하나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하게 숲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며, 본인이 언니가 사랑하는 그 숲의 나무라서 좋다고 했다. "숲 속의 나무가 되어 하늘을 사랑하는 삶이 어찌 찬란하지 않을 수 있겠냐"라고 했던 그 부분이 진짜 하이라이트... 그 대목에서 보영님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었다.
맞다. 나는 최애라는 하늘을 사랑하는 24,893그루(그냥 아무 큰 숫자나 쓴 거다)의 나무 중에 한 그루다. 좀 열심히 마음을 표현하고 그 마음들이 어떻게든 최애에게 닿았으면 싶어서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다. 때론 내가 품고 있는 마음이 얼마나 진지한지 스스로도 웃기다. 그렇지만 언제나 좋은 영향을 주고 행복을 주는 사람에게 나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은 마음이라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보지도 전하지도 못하는 말들이 많은데도 늘 조심하려고 한다.
덕질 계정을 운영하면 자주 SNS상으로만 아는 사람들과 DM을 하거나 댓글을 달면서 소통을 할 때가 있다. 얘기하다 보면 좋은 말들도 많이 해주시는데, 마음에 들어오는 좋은 말들을 캡처해 두고 모아놓아서 볼 때가 있다. 스스로에게 다정한 말을 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까지는 외부의 피드백으로 스스로를 확인받으려 하는 쪼랩 사람이라 그 말들을 읽다가 보면 기분이 많이 좋아진다. 오늘도 오랜만에 그 말들을 봤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해주시는 말들이 "(내가 쓰는 글들과 만든 영상을 보면서) 사랑은 이렇게 하는구나" 하고 배운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내 사랑은 외 사랑인데도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걸 보면 감사하면서도 좀 의아하다. 나는 덕질을 하는 6-7년의 기간 동안 진짜 이성과의 사랑은 하지 못했다. 그 기간 동안 연애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굉장히 열심히 소개팅도 하고 여러 활동도 했는데 그냥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내가 외사랑만으로 '사랑을 잘한다'고 들어도 되는 것일까?
또 자주 해주시는 말들 중에 하나가 내가 바라보는 최애가 좋고, 나 덕분에 최애를 더 잘 알게 되었다는 말들도 있다. 내가 바라보는 최애는 어떤 모습이길래 그게 좋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어차피 같은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일 텐데, 나의 시각은 뭔가 다른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모습을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하며 비슷한 애정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조금 친해진 분에게 비슷한 얘기를 듣고선 염치를 무릅쓰고, '내가 보는 최애는 어떤 모습인 것인지' 좀 설명해 줄 수 있냐고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망망대해에 떠 있는 고래를 멀리서 보고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최애는 고래를 좋아해서 고래라는 별명이 있다). 그러면서 너무 멀어서 작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너무 가까운 것도 아닌 적당히 '오 저기에 있어!'라고 하며 보고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나는 이 대답이 감사하게도 마음에 꼭 들었다. 내가 최애를 대하고 싶은 마음, 지향점이 저런 모습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좀 지나칠 정도로 최애의 활동과 무대 그리고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지만, 또 이 사랑이 그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애가 나를 알아준다면 너무 좋겠지만 사실 몰라도 할 수 없고, 내 사랑이 어떠한 형태로든지 전달이 되었을 때 소름 끼치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선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내적 친밀감이 강해져서 자주 실패하지만 그래도 존댓말을 하려고 노력하고, 존중하려고 한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많이 노력하는데, 그래서 저 정도의 거리감으로 나의 시각을 표현해 주신 것이 너무 감사했다. 그건 어쩌면 외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하는 올바른 자기 인식은 아닐까 싶다.
짝사랑도 사랑이라고 불러주시고, 내가 바라보는 최애를 향한 시선과 거리가 좋다고 얘기해 주시는 분들의 말에 힘입어 나는 사랑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려 한다. 겉에서 보기에는 이 외사랑이 돌아오는 것 없이 일방향이라 미련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매일의 삶에서 최애는 그저 살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주는 존재다. 고단한 하루 끝에 작은 사진 하나로, 글귀 하나로 기분을 180도 바꿔주는, 100전 100승 행복을 주는 사람인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고 고마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하늘을 사랑하고, 외사랑이어도 올바르게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을 진짜 사랑이라고 얘기해 주셔서 또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