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하여 (2)

구차하고 진부하게도 내 결핍은 동생들과 관련이 있다

by 연한보라

구차하고 진부하게도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은 어린 시절, 삼 남매의 큰 언니로서 살면서 받지 못한 관심과 애정에서 시작하고, 그 이상 나아가지도 못한다. 좋았던 어린 시절조차도 어둡게 기억하는 피해자처럼 그 일에 대해서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마음을 또 정의하지 못하니깐.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는데, 나의 유년은 예쁜 순간들도 너무 많은데, 내 안의 어린아이는 예쁜 것보다 안 좋은 것에 대해서도 관심 가져달라고 하니깐 그것을 굳이 써본다.


네 살이 되었을 때 바로 밑의 여동생이 태어났다. 처음 그 아이에게서 내 세계를 뺏겼던 순간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자고 일어났는데, 나만 봐주던 엄마, 아빠, 할머니까지 모두 그 아이를 씻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자고 일어난 나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고, 내가 관심을 달라해도 아이를 씻기니깐 좀만 기다리라는 얘길 들었을 때,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창문에는 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 아이가 목욕하는 그 물은 따뜻해 보였는데 나만 굉장히 어둡고 차가운 곳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엄마 아빠와 할머니에게 느낀 배신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동생은 나에 비해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생긴 것도 예쁜 순한 아이였다. 그래서 그 아이가 나오자 평생 받아본 적 없는 비교당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네, 다섯 살이 무슨 생각을 얼마나 했겠냐만은- 스스로가 '밥을 잘 안 먹는다', '잠을 잘 안 잔다', '예쁘지 않다' 등등의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동생이 태어나고 나니 나는 예민하고, 밥도 잘 안 먹고 그렇게 예쁘거나 귀엽게 웃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그 아이가 더 귀여웠고 그래서 어느 순간은 예쁨 받기를 포기한 것도 같다.


그렇게 예쁜 아이는 누구나 좋아하게 되는 법이니깐, 내 눈에도 그 아이가 예쁘긴 했으니깐, 동생을 사랑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 아이는 나를 많이 좋아했다. 예쁜 아이가 내 손을 잡고 내 옆에 있고 싶어 하는 것이 어느 순간 자랑스럽기도 했다. 내가 하는 것을 다 따라 하고 싶어 했고, 내 친구들과 놀고 싶어 했다. 내가 놀아주지 않으면 도무지 놀 친구도 없는 것처럼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를 책임지기로 했다. 그 아이가 잘 놀 수 있게, 그 예쁜 아이의 언니가 되어주기로 했다.


이 아이의 언니로 사는 것이 익숙해질 때쯤, 10살 어린 남동생이 또 생겼다. 당시만 해도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지 않을 때라, 나오기 전까지 그 아이가 여자애일지 남자애일지 몰랐다. 그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과연 이 아이가 우리 집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어색하며 어떡하지?" 하고 고민했던 것이 기억난다. 여동생이 처음에 집에 온 순간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에 막내가 갑자기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막내가 집에 온 순간, 침대에 눕혀져 있는 하얀색 포대기를 보고 나는 그 애를 받아들이는 일이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좋은 냄새가 나는 새 빨간색 아이와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


막내가 태어난 첫 해 나는 4학년이었는데, 4학년 때 기억이 아예 없다. 5학년 때 일들은 기억나고, 3학년 때 일들은 기억이 나는데 4학년 때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4학년 때 무슨 일이 있긴 했나보다. 엄마가 산후우울증에 걸렸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유난히 예민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하루는 엄마가"너희 계속 이렇게 말 안 들으면, 엄마 어느 날 이 베란다에서 뛰어내릴지도 몰라!"하고 소리 지른 기억은 난다. 우리가 정확히 뭘 얼마나 잘못했는지는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시 집은 12층이었고, 그게 사실이 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그때도 울진 않았다. 그것조차 엄마를 자극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엄마에게서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을 포기한 것이. 그래도 엄마가 있는 게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깐 엄마가 살아있길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에 여동생과 얘기했을 때, 여동생은 살아남기 위해서 엄마에게 계속 무언가를 요구했다고 한다. 준비물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엄마가 챙겨줄 때까지 여기저기 메모에 준비물을 써붙인다든지, 엄마에게 계속 말을 한다든지 엄마가 챙겨줄 때까지 괴롭혔다고 한다. 그럼 나는 어떻게 했지? '왜 나는 그렇게 엄마에게 뭔갈 해달라고 한 기억이 안나지? 엄마가 나는 잘 챙겨줬나?' 하고 물어봤더니 언니는 그냥 혼자서 알아서 잘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알아서 스스로 자라났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막내에게 꽤나 큰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는 건진 몰라도 그 아이가 죽지는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우울증에 걸린 엄마가 유기하게 된다면, 여동생이랑 나는 어떻게든 살아갈 텐데, 막내는 혼자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자기의 똥과 오줌에 파묻혀 지내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괜스레 혼자서 이 아이의 엄마처럼 마음을 먹은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시키지도 바라지도 않았는데 나 혼자서 말이다. 결국 엄마는 우리를 유기한 적은 없지만, 아주 잠시 잠깐 동안은 많이 우울했던 것 같다.


하루는 엄마가 운동을 하러 간다고 나갔던 날이다. 막내는 침대에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엄마가 나간 시간 사이에 별일 없을 것 같았는데, 그 아이가 잠결에 어떻게 떼굴떼굴 굴러 침대 밑으로 떨어졌었다. 빡 하는 소리 이후에 찢어지게 우는 아이를 두고 너무 당황했다. 침대가 꽤 높은데 머리라도 다쳤으면 어떡하지, 이 아이가 이대로 불구가 되면 어떡하지, 머리가 크게 다쳐서 바보가 되면 어떡하지, 온갖 생각에 겁이 나고 미안해서 눈물이 났었다. 난 아이가 잠결에 그렇게까지 구를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아이를 껴안고 이리저리 어르고 달래 봐도 계속 울어서 큰일이 난 것 같아 더 무서웠다.


엄마는 본인이 있는 헬스장 창문에서 집이 보이니,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삼색깔 부채를 창문에서 흔들라고 했었다. 나는 한 손에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면서 반쯤 울먹이며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애타게 헬스장 쪽으로 부채를 흔들었다. 그때 생각해도 우스꽝스럽고 창피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막내가 너무 울어서 창피함은 사라지고 다급함만 남았었다. 헬스장 창문은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안 보이는 선팅 된 창문이었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부채를 보았는지, 우리를 보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바보처럼 아이를 안고 울면서 부채나 계속 흔들고 있었다.


한참을 흔들어도 답이 없고 아이를 안고 어르고 있자 얼마 후에 엄마가 돌아왔다. 그 사이에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놀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불렀다고, 막내가 침대에서 굴러 떨여졌다고, 내가 부채 흔드는 걸 봤냐고 물어봤는데 엄마는 못 봤다고 했다. 일부러 의연한 척, 안 운 척 눈물은 거두고 엄마에게 소식을 전했는데 엄마가 별로 놀라지 않은 기색이었다. 놀라지 않은 척을 한 건지 진짜 안 놀란 건지, 아이를 보더니 괜찮다고 했다. 엄마는 별 일 아닌것처럼 여겼지만 그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를 들었어야 했는데, 나는 그 일로 인해 아이가 바보가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조금 더 크고 난 후에는 더 많은 시간을 육아를 하며 보냈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것은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4시나 4시 반쯤이 됐는데, 애랑 앉아서 텔레토비를 그렇게 열심히 봤다. 봤던 걸 또 보고 또 봐도 잘 보길래, 그 시간만큼은 조용히 잘 놀았기 때문에 나는 아이랑 티비를 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나도 쉬고 싶은데 애는 자주 심심해하니깐 그저 티비보고 네이버 주니어에서 어린이 게임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고 혼자 해보라고 했다.


그게 지금의 게임 중독에 가까운 동생을 만든 건 아닌지 나는 꽤 오랫동안 후회했다. 그때 내가 잘 놀아줄 걸 그랬나, 좀 귀찮더라도 게임은 알려주지 말 걸 그랬나. 그때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마우스 잡고 클릭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말 걸 그랬나 하고.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나도 달리 다른 걸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다. 그래봤자 고작 13살, 14살이었던 나도 아직은 아이 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꽤 오랫동안 그 아이를 망쳤다는 죄책감 비슷한 걸 마음에 안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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