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날 군산에 오다

이렇게 저렇게 여행시작

by 연한보라
KakaoTalk_20241225_205026173.jpg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를 크리스마스날 오는 재미 :D


딱히 엄청나게 원대한 계획을 하고 온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당일에 군산, 8월의 크리스마스 벽화 앞에 와있었다. 영화 촬영지와 이성당 빵집으로 유명한 군산에, 8월이 아닌 크리스마스날 당도하다니. 나는 이사실조차도 초원사진관 앞에 가서 깨달았다. 그만큼 이번 여행에서 여행의 장소는 중요하진 않다. (초원 사진관은 동절기에는 문을 열지도 않는다 ㅎㅎㅎ)


사람들과의 거리가 필요했고, 쉼이 필요했다. 12월 초에 자체적으로 연말 회고를 하면서 이번 해에 얼마나 많이 사람들을 만나고 무슨 활동을 했는지 세어보았다. 캘린더에 모든 약속을 적는 파워 J이기에 약속을 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이리저리 셈해보니 일 년에 무려 100개 넘는 약속을 잡았다. 이 약속들은 덕질하려고 갔던 콘서트나 뮤지컬, 교회 활동, 여행 등을 제외하고서 순수히 밥을 먹거나 놀기 위해서 잡은 약속만을 센 것이었다.


숫자를 보고 잠시 망연자실했다. 1년이 52주고, 주말이 100개 조금 넘는데, 거의 모든 주말 그리고 평일까지, 누군가를 만나면서 살았던 것이다. (콘서트 8회, 뮤지컬 12회, 국내여행 8번까지 세면 그냥 매일 누군가를 만난 것 같기도 하다) 운동은 주 1회 겨우 하면서, 사람은 매주 2번 이상 꼬박꼬박 만났다는 게 이상했다. 회고를 한 다음에 마음먹었다. 좋든 싫든, 고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혼자 여행을 1박 이상 가본 적이 없는데, 적어도 2박 이상을 홀로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간 김에, 내년에 내고 싶은 책을 위해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행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홀로 있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어차피 글을 쓰는 게 목적이라면 밖에 별로 나가지 않을 테니 북스테이 같은 곳을 알아보다가 마음에 드는 숙소를 군산에서 찾았고, 그래서 이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군산이 꽤나 심심한 곳이라는 것, 도보로 모든 곳을 돌아다닐 수 있는 뚜벅이에게 좋은 관광지라는 것, 그리고 아기자기한 책방들이 몇몇 곳 있다는 것까지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리더님께 말씀을 드려 3주 뒤 휴가를 받고, 찾았던 숙소 예약을 하고 (결국 그 숙소는 1박만 가능했다) 시외버스터미널 표를 예매하는 등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 여행의 핵심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독을 취하러 가면서 모든 곳에 방방곡곡 얘기하는 것은 좀 이상했다. 굳이 속세와의 모든 연락을 끊고 지내겠다 이런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지금도 카톡이나 인스타는 보고 있다), 적어도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을 만한 요소는 차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너무나 "people person"인 나는, 비교적 지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 브런치에 오늘을 기록하러 왔다. 그것 자체가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너무 웃기다. 하지만 어쩠든 간에, 글을 쓰러 왔고, 글을 써야만 하는데 이곳에 온 이유와 오늘에 대해서 쓰지 않는 이상 불편해서 다음 단계의 글을 쓰지는 못할 것 같고 (핑계 맞는데, 진짜 그렇기도 하다) 그러면 평소에 쓰던 곳들에는 티 내지 못하니 브런치에 왔다.


원래는 내일 오전에 군산에 오려고 했는데, 휴일인데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미리 와서 구경도 좀 하고 조금 더 고독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어제 낮에 지금 숙소를 잡았다. 크리스마스인 오늘, 교회 가서 해야 할 모든 의무(?)를 마치고 지금 이곳에 와 있다. 시작이 좋다. 생애 처음으로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타봤고 (의자가 엄청 젖혀져서 누워 잠도 쿨쿨 잤다) 작은 서점에 가서 '취향'이라는 책을 사버렸고 (취향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혼자 맛있는 저녁도 먹었다(음식점에 고양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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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고 있다가 사진 찍으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야려봄


군산이 나에게 얼마나 친절한 곳일지 잘은 모르겠지만, 친절하든 불친절하든 나는 이곳에서의 시간을 알차고 무용하게 그리고 고독하게 보낼 예정이다. 군산은 와서 보니 저녁에 여는 카페는 있으나, 그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민망해서 못 들어가 있겠다. 그래서 게스트 하우스 공용 공간에 앉아 이렇게 오늘 하루를 회고한다.


마지막까지 엄마는 '그냥 오늘 저녁은 먹고 가지'하며 아쉬워했지만, 엄마에게 조금은 매정하게 '너무 연락 많이 하지 마 내가 뭐하는지 말할게...' 하고 나와서 지하철을 타고 앉아서 잠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김에 기도를 한 것 같은데, 눈물이 날 뻔했다. 뭔진 몰라도 이 시간이 엄청나게 소중한 시간임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무리하지 않고 지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또 회복하고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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