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는 글쓰기 (1)
어제 오랜만에 마우스북페어에 함께 나갔던 기대, 두두, 그리고 우연히 우리 옆자리 부스에 앉아서 우리와 함께 이틀을 보낸 챈들러 님을 만났다. 우리의 이름을 "미니마우스"라고 불렀다. ㅎㅎ 마우스북페어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미니모임이자, 여자들의 모임이기도 하니깐 :)
책을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영광스럽게도 낀 기분이었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 분들에 비해서 재능적으론 좀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이곳에서 나누는 얘기들은 다른 모임에서 하는 얘기들과 다르다. 각자 하고 싶은 분야의 창작에 대한 고민이 있고, 또 어떻게 헤쳐나가야 되는지 솔직하고 진솔하게 고민을 말하면 또 각자가 해줄 수 있는 위로와 격려들이 여기저기 나온다. 근데 그게 그렇게 반갑고 새롭고 도움이 되는 말들이라, 기억에 오래오래 남는다.
나의 고민은 출판을 하기 위한 글쓰기에 들어가서 글을 쓰려고 하는데, 자꾸 한 자도 쓰고 싶지 않기도 하고 안 써지기도 한다는 것. 월초에 '사적인 서점'에 가서 책처방도 받아오고, 글을 써야 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야무지게 정리가 됐는데 그 이후로 산 책도 조금만 읽고, 글은 거의 쓰지도 못했다. 아무래도 뭔가 너무 큰 부담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나에게 기대는 "그냥 실패할 글을 써"라고 했다. '이 글은 이미 실패야'하고 쓰기 시작하면 뭐라도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이 그렇게 맘에 들었다. 언젠가부터 너무 많은 품을 들이고 마음을 다잡고 앉아야만 글을 썼다. 예전에는 그냥 회사에 있다가도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메모장을 켜서 몇 자 적고 또 일하고 했는데, 이제는 뭔가 각 잡고 앉아서 긴 숨을 내쉬고 글을 써야지만 글이 써지는 것 같다.
실제로 그렇게 진중하게 쓰는 게 좋고 또 나쁘지는 않지만, 풀타임 직장인으로, 교회 청년부 회장으로, 열혈 아이돌 덕후로 살아가면서는 그렇게 앉아서 글 쓸 수 있는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지금도, 며칠간 제대로 잠을 못 자 너무 졸린 가운데서도 실패하는 글을 하나 쓰기 위해 잠시 앉았다.
어제 작가로의 정체성과 그냥 현생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두두를 보면서, 나 또한 여러 가지 정체성 사이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생각했다. 책을 내기 전에는 '교회의 나'와 '덕후로의 나', 그리고 '회사에서의 나'를 잇는 내 이름 세 글자가 그렇게 무서워서 가명을 쓸까도 싶었다. 하지만 그 '세명의 나'도 결국 하나의 나이기에,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후로는 하나의 나를 보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사람들에게는 특정 부분만 보여주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한다. 물론 그것은 나를 보호하는 아주 좋은 수단이 된다. 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나를 아프고 힘들게 할 수 있는 무기를 건네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 역으로 상처 주는 이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적당히 나를 알리려고 하는 이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 알려주면 좋은, 어쩌면 나의 매력이 될 수도 있는 정보들을 숨겨놓고 있다가 나중에 친해지면 말하는 편이다. 내 자랑하는 것 같아서 싫기도 하고, 그러한 배경을 갖고 있는 것 때문에 나를 좋아하게 된다면 좀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몰라도 나와 친해질 수 있고 나와 계속 관계를 맺어 나가는 사람들에게서만 진솔함을 느끼고 편안하게 친해질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중요한 정보를 처음부터 알려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난 후에는 '나는 왜 그렇지 않을까?', '어떠한 방어기제인가?' 하고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만나자마자 자기가 잘난 것을 늘어놓고 칭찬받거나 좋은 인상을 남기곤 하는데, 왜 나는 매번 그렇게 뒤에 숨어서 겨우 하나씩 알려주고 나중에 인정받으려고 할까... 궁금하다.
일단 오늘의 실패하는 글은 여기까지. 이렇게라도 뭔가를 꺼낸 스스로를 자랑하고 우리 미니마우스 (기대, 두두, 챈들러)에게 감사하며.. 오늘도 마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