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에 효율이라고는 없다
가장 최근에 만난 상담선생님은 정신분석을 하시는 분인데, 좀 직설적인 면모가 있었다. 여러 가지 얘기를 하다가 하루는 "왜 이렇게 외모를 안 꾸미나요? 좀 심각한데"라고 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이 정도면 많이 나아진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정신분석이고 뭐고 상담사가 그런 얘길 하는 건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데, 그로 인해서 '내 주변 사람들은 그냥 엄청 착한 사람들인가?'갑자기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정도면 나아진 거라는 대답은 사실이다. 당시 나는 다이어트로 1년 사이에 10킬로를 감량했고, 화장도 하고 간 상태였다. 물론 하루 업무를 다 보고 나서 화장이 지워지긴 했고(수정화장은 하지 않는 편이다), 원래도 렌즈는 중요한 날만 끼기 때문에 안경을 쓴 모습이긴 했지만 그래도 저런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외모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보면 가족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아버지는 6남매 중에 5번째이자 유일한 아들이고, 그래서 나에겐 고모가 다섯 분이 계시다. 솔직히 말해서 친가 쪽 외모는 아름답다고 얘기하긴 좀 그렇고, 좋게 말해 복스럽다. 복코가 판박이처럼 모든 고모들 포함 우리 형제들도 갖고 있고 친할머니가 키가 크셔서 고모들도 그 세대 분들 치고는 키가 크신 편이다. 풍채가 좀 있으신 분도 있고, 여튼간에 전형적인 미녀상들은 아니다.
그런 고모들은 어려서부터 우리의 외모에 엄청나게 많은 피드백을 주셨다. 그래서 엄마는 친가 쪽 집에 갈 때마다 동생과 나를 예쁘고 꾸미고 보여주느라 바빴다. 어릴 때는 예쁘게 하는 게 좀 재밌기도 했는데, 크면서는 좀 귀찮고 긴장되었다. 친가를 가는 날은 외모를 평가받는 날이라 새로 산 옷을 입고 단정하게 머리를 하고 갔다. 많이 예뻐졌다고 듣는 날도 있었고, 어쩔 때는 엄마가 애들 옷이 왜 그러냐 가방이 왜 그러냐 신발이 왜 그러냐 하나 사줘라 한 소리 듣곤 했다.
결혼할 나이가 되어가니 살을 좀 빼야겠다, 꾸미고 다녀야 남자들을 만날 수 있지 등으로 변한 메시지들이 들려왔다. 한 때는 그 말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듣는 족족 타격받았었다. 나보다 예쁜 동생은 늘 고모들의 찬사와 추대의 대상이었고 비교적으로 덜 생긴 나는 조금은 질타를 받는 편이었기에 친가 모임은 정말로 재미가 없었다. 등장과 함께 스캔하는 눈빛들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환경에서 얼지 않고 웃으며 있었던 스스로가 대견하다.
어려서부터 조금 통통한 편이었고, 늘 의류점에 가면 예쁘게 맞는 옷이 없어서 쇼핑을 좋아하지 않았다. 동생은 무슨 옷이든 예쁘게 어울려서 맘에 드는 걸 골랐는데, 나는 마음에 드는 옷은 사이즈가 없거나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맞는 옷을 사야만 했던 경험이 많다. 몇 차례의 경험으로 새로운 옷을 사는 것은 재미없는 중노동이 되어버렸고, 언제인가부터 백화점에 쇼핑하러 가자는 말이 스트레스가 되었다. 백화점 쇼핑보다는 입지 않아도 되는 작은 소품들을 쇼핑할 때가 더 행복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화장을 하면 예뻐진다고 했지만 도무지 화장을 어떻게 하는 건지 알지도 못했고 화장을 하면 얼굴이 간지럽고 답답하기도 해서 잘하지 않고 살았다. 중요한 날들만 화장하고, 직장을 다닐 때도 그저 비비크림만 발랐는데 30살이 넘고 나서는 화장을 하지 않는 게 사회적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뭐라도 하려고 노력했다. 아직도 아이라인을 그린다든가 마스카라를 하는 것은 특별한 날에만 하지만 이제는 기초화장과 립을 바르는 것 정도는 매일 열심히 한다.
고등학교 3학년부터는 머리숱이 많이 빠지기 시작해서, 그냥 입시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증상인 줄 알았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머리숱이 다시 풍성해진 적이 없다. 머리숱이 없는 것은 성인이 되고 난 후 늘 스트레스 요인이었다. 곱슬머리라서 평소에는 좀 붕붕 떠 있어서 괜찮은데, 습한 날이나 더워서 땀을 흘리면 머리가 가라앉아 비어있는 부분들이 여실히 다 드러나 하얀색 두피가 보인다. 머리숱을 늘리기 위해서 약도 먹고, 바르고, 샴푸도 바꾸는 등 머리 심는 것 외에 안 해본 것이 없는데 잘 개선되지 않고 나이가 들수록 적어지기만 한다.
그래서 나에게 "왜 그렇게까지 외모를 안 꾸미나요?" 물어보면, 나는 정말로 최선을 다한 게 이건대 그게 부족해 보이면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다. 외모는 노력을 해서 꾸미려고 해도 많이 개선되지 않는 나의 약한 부분이고, 몇 시간을 들여 매일 치장해서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 것에 노력을 하느니 그냥 그 시간에 하고 싶은 것을 좀 더 하면서 행복하려고 한다. 외모 치장은 나에겐 그다지 효율성이 없는 활동인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내 모습이 엄청 마음에 들지 않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엄청나게 마음에 들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마음에 안 들지도 않다. 그냥 적당히 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꾸미고 산다. 그래도 좋아하는 색이 생긴 이후로는 쇼핑이 조금 쉬워졌다. 입고 싶지만 안 어울리는 옷은 아직 있지만, 어울리는 색은 찾았으니깐 어울리는 색을 입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옷 쇼핑의 스트레스도 좀 줄어들었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고모들을 만나는 자리에 나가야 해서 스트레스받아서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