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다시 시작했다

불안한 사람의 상담일지

by 연한보라

회사는 1년에 8회기 상담을 지원해 준다. 복지랄게 별로 없는 회사라서 이런 것이라도 꼭 받아내야지 하면서 다니는 3년 동안 깨알 같이 열심히 쓰고 있다. 이번 연도에는 받을 생각이 없다가, 최근에 머리가 많이 복잡해 9월부터 새로운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외형적으로는) 멀쩡한 사람이다. 타인의 모범이 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고, 초등학교 때부터 학급에서 회장이나 부회장을 안 해본 년도를 꼽는 게 빠를 정도로 뭔가를 늘 맡아서 했다. 학급뿐 아니라 동아리 회장, 다니고 있는 교회 회장 등 임원직을 맡아본 경험도 많을 정도로 책임감도 많은 편이다. 스카이 대학 중 한 곳을 졸업했고, 대학원도 마쳤다. '번듯한 직장'의 기준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4대 보험 되고 미약하게나마 복지가 있는 곳을 겨우 찾아서 이제 좀 정착한 듯싶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내형/심리적인 문제가 많다. 특별히 학대를 받거나(왕따인적은 있지만) 지속적으로 괴롭힘 당한 적도 없는데 자주 힘들다. 때로는 '이 정도 환경에서 자랐으면 좀 건강할 법하지 않나?', '지금 느끼는 고통 같은 건 그냥 투정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정죄하곤 하지만 고통은 실제 한다. 나는 꽤 많은 밤을 눈물을 흘리며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은 압박감에 심호흡을 해야 하며 어느 정도 불안 수준이 심해지면 일하는 중에도 밖에 나가 산책을 하고 와야 한다. 물론, 이 모든 현상들을 매우 잘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 편이고 그것을 누군가에 쉽게 얘기하지 않은 채 평범하게 멀쩡한 척 살아왔다.


그러나 고통은 실제 하기 때문에 상담을 받았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앞뒤가 막힌 것 같은 답답함과 괴로움,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바랐던 나는 2016년에 처음으로 상담을 받아 보았고, 21년부터는 거의 매해 상담이나 코칭을 최소 8회기부터 최대 30회기까지 받아보았다. 매번 상담 선생님은 다른 분이었으므로 적어도 6명 이상의 선생님을 만났고 잘 맞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정말 이상한 사람도 있었다.


이번 상담 선생님은 몸의 반응을 살피며 상담을 진행하시는 분이라 상담 방식이 새롭게 다가온다. 어려운 문제를 말할 때 많이 긴장하고, 말이 빨라지기도 하며 몸으로도 많은 것을 느끼는데, 평소에는 그러한 자극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당연하다, 나의 몸은 너무 많은 것을 느낀다. 때문에 그것을 다 인정해 주었다면 진즉에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동수단을 타면 쉽게 멀미하고, 평소에 뭔갈 먹어도 잘 미슥거리며 두통도 잦은 편이다. 어깨는 늘 굳어 있고 목도 아프며 허리디스크가 난 적도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에 일일이 관심을 둔다면 일상생활이 불가하므로 그것들을 조용히 무시하며 지냈다.


하지만,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이나 긴장에 대해서 인지하고 인정해 주기 시작하니 그 밑에 쌓여 있는 감정을 보는 신기한 경험을 했고, 덕분에 3주밖에 안 됐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 조금은 덜 갑갑한 상태로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그 기저에 어떠한 감정과 기억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지 온전히 탐구하지는 못했지만, 그 감정과 감각을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선생님께서 때로는 기억보다 감정만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버려질까 봐 두려운 감정'인 것 같다고 어렴풋이 그려내고 있다.


생각이 정말 많다. 내게 생각은 일종의 자기 방어이며 대비책이고 그렇기에 불안함을 누를 수 있는 도구였다. 수많은 가능성을 미리 그려봄으로써 상처받거나 잘못될 수 있는 것을 미리 받아보거나 미연에 방지하였고, 대책을 마련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것은 아마 30 몇 년 동안 나의 인생을 이끌어주고 지켜주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그것으로 인해 너무나 고통을 받고 있다. 사고하는 것은 자꾸 빈 공간에 자의적인 판단과 감정을 채워 넣는 과정이었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났다는 가정하에 살이 얹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불안하기도 했으며,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보지 못하게 했다.


이것은 이번 상담에서만 들은 내용이 아니라, 한 3년 전부터 선생님들을 통해 꾸준히 받아온 피드백이었다.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나요?', '그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얘기했나요?', '어느 정도 유추 가능한 행동이긴 하지만, 그러한 의도가 있었는지 확인했나요?' 이러한 질문들을 계속해서 물어보셨다. 나는 최소한의 정보로 최대한의 유추를 해야지만 나를 지킬 수 있었고, 그것은 잘못된 확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래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직접 대면하고 궁금한 것은 혼자 생각하지 않고 직접 질문하여 확인하는 것이었고, 정보가 없다면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다.


이번 선생님은 나에게 글 쓰는 것도 좀 자제해 보라고 하였다. 나는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을 때 글로써 그것을 풀어낸다 했는데, 선생님은 글 쓰는 것 자체도 사고를 더욱 깊은 늪에 빠지게 만들 수도 있으니 그런 것들 말고 현재에 집중하는 것을 권유하신다. 글을 쓰지 말라는 것은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그 또한 잘 따르려고 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이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것만 같다.


연휴를 맞이하여 2주간 동유럽 여행을 갈 예정이다. 그곳에서는 나는 글을 쓰고 싶어도 쓸 시간도 없고,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기에는 현재에 새롭고 많은 자극들이 주어질 것이다. 조금은 이 고통에서 벗어나 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기대가 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두렵다. 늘 새로운 경험은 즐거우면서도 많이 벅차기 때문이다. 여행 후에 계속 이어질, 남은 5회기 상담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두려우면서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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