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기 세 번째
그 거리에선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이었고, 다른 옷차림을 하고, 다른 말을 하는 관찰자이자 방관자였지만,
그런 구분은 내 마음속에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라는 외국인을 의식했던 누군가는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구분이 무슨 의미일까.
인도의 거리에 있는 그 시간만큼은 나도 인도의 일부였다.
누가 보는지 마는지 세상 모르고 낮잠을 자고 있는 한 마리 개를 발견했다.
'개팔자는 상팔자'라는 말이 인도에도 있을까 생각하며 셔터를 눌렀다.
지나다 보면 떠돌이 개가 참 많았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에 지쳤는지 손짓해도 오지 않았다.
더러는 피부병에 걸린 개들도 있어서 나에게로 오지 않는 게 되려 다행이었다.
한국의 누렁이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신이라니.
이 귀여운 누렁이를 숭배한다니.
내 입장에선 우스운 얘기지만, 그들은 몇천 년이나 그래 왔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세월을 그렇게 살 지 모른다.
그들의 인구만큼이나 많은 신들을 모시며 각자의 '카르마'를 지고 나아갈 것이다.
정말 짧은 시간이어서 '만났다'라는 표현보다는 '스쳐 지나갔다'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그 짧은 시간에도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할 만큼의 시각적 인상이 있었다.
셔터를 누르고 난 후의 상황은 제각각이었다.
슬쩍 훑어보고 지나치거나, 허락 없이 찍은 사진에 화를 내거나, 사진을 더 찍으라고 빙그레 미소를 날려주거나.
허락을 구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 예의인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순간적인 인상을 잡아내려면 그러기가 힘들다.
마음에 와 닿는 순간을 만나면 내 손은 이미 셔터를 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찍히는 사람들과 교감해 보려고 노력한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눈짓과 미소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인도에 와보기 전에는 그냥 외국의 한 나라에 불과했는데,
여행의 날이 하루 더해갈수록 다채로운 매력으로 나의 카메라 사각의 프레임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것은 단지 시각적인 인상만이 아니었다.
신선한 생각과, 뜨거운 태양 아래 살아있다는 느낌과, 충격과, 갑작스러운 감정.
멀리서 보면 작은 풀잎.
누군가는 부조리의 단면을 집어내 그것을 바로잡고,
누군가는 어떤 이의 미소로 행복을 전달하고,
또 누군가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이 작은 풀잎, 그 푸르름을 찬미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작은 풀잎이,
결이 하나하나 살아있다.
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다 다르다.
한껏 다가가서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