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조직화를 꿈꾸며 라인에서 한발자국 빠져 봅니다
추석 연휴를 20일 정도 앞둔 시점에서 동료의 해외출장 일정을 보게 되었다. 9/4(일) 일에 출발하여 9/11(일) 일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작성된 보고서가 내 눈에 들어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휴에 해외 출장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아직 존재하며 회사의 분위기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과, 이런 조직에 아직도 내가 몸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화가 났다.
나 역시 이 조직에 있으면서 코로나 시대가 열리기 직전 설 연휴에 맞춰 이곳과 시차가 5~6시간 차이가 나는 지역에 7박 8일간 살인적인 일정으로 다녀온 적이 있다. 말도 안 되는 시기와 일정으로 보여주기식 군대 문화(OO 정신, OO 문화), 생색내기로 표현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던 나의 모습이 있었다.
그럴 수 있다. 이 조직의 임원이 된다거나 어느 정도의 출세를 한다는 것은 일반 직장인들이 만지기 힘든 연봉을 가지니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고도 생각을 한다.
하지만, 연휴에도 일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수주 및 해외시장 확대라는 명목을 내세워 연휴에 출장 계획을 수립하며 그럴싸한 포장을 하고 있다. 자신의 판단이 옳다며 추진하는 그들의 마인드가 너무 싫고 박살 내어주고 싶다. 그러면서 꼭 실무자 한 명은 데려가는 희생을 강요한다. 이 불쌍한 벗은 과연 실무자일까 아니면 그들의 허드렛일을 담당할 도구일까? 출장을 준비하면서 실무자에게 이것저것 확인 여부를 물어볼 테고, 온갖 잡다한 잔소리와 압박이 제공되었을 것이다. 비자 발급, 항공권 발행, 미팅 일정 조율 등 그들의 출장을 위해 혼자서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가졌을 벗의 마음은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았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오면서 많은 것이 바뀌고 나를 찾아가고 돌아보며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시대가 도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큰 착각이었다. 올해부터 하늘길이 열리면서 해외출장이 재개되고 있다. 예전처럼 명절, 하계휴가 연휴에 일정을 잡으며 출장을 가는 행위가 재발되는 것 같아 화가 치밀어 오르는 중이다.
나의 동료에게 얘기했다. 본인은 가기 싫은 마음이 크며 회사의 결정이 많이 아쉽다는 표현을 했지만, 결국 이 출장도 네가 선택해서 가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말하지만 결국 그가 선택 한 것이다. 여기에서 본인 위치와 거절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거절 시 닥치게 될 미래를 보았을 때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비난하거나 탓하진 않는다. 다만, 그 또한 불합리해 보이는 상황에서 순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직장인이라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며 이 조직은 하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 나를 절망하게 한다.
물론 출장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직책자들이나 임원도 하기 싫은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 또한 주주나, 더 위로 눈치를 보아 살아남기 위한 선택지였을 것이다.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변화되는 분위기에 조금 더 편승해서 문화를 조금씩 바꿔가는 것은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 또한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당시 내가 가진 사고와 행동, 그리고 회사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옳다고 바라보던 시절이었다. 조직이 우선이고 내가 속한 곳에서 성과가 나야 나 포함 우리 가족이 행복해진다는 편협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올해 마흔이 되며 세상과 작별한 친구의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 전구가 깜빡였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를 갈아 넣는 현재의 내 모습이 과연 행복할까라는 의문의 불이 켜진 것이다.
결론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마음속으로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 보았다. 나는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을 만들어가는 것이 내가 원하고 바라는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앞서 얘기한 부분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여유를 챙길 수 있는 경제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부족한 급여 부분을 더 채우기 위해 조직 내에서 인사고과를 잘 받아 성과급에서 플러스알파를 받기 위해 잘하는 척과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였고 사내에서 정치를 잘 하려 했다. 그러면서 하향식 지시의 조직 문화가 무조건 옳다는 인식이 상당 부분 자리 잡고 있었고 꼰대력은 무한히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조직 내 인정을 받고 그곳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을 보이면 인사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을 것이며, 결과에 따른 최종 연봉이 달라질 수 있었다.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면 아무래도 즐길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지니까 나의 가족이 더 행복할 기회가 확대된다는 이기적인 혼자만의 생각으로 회사에 더 매달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되었다.
하지만 나를 잃어가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심리적, 물리적으로 더 멀어지고 행복하지 않음을 느끼며 조직을 위해 24시간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전적인 여유를 위해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같은 공간 안에서 함께 보내며 서로를 공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정시 퇴근을 한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정시 퇴근도 익숙해졌다.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눈칫밥을 어지간히 먹고 있었던 것이다. 회식도 불가하다는 에너지를 내뿜으며 정시 퇴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직까지 조금은 불편한 부분은 있다. 올해 인사 평가는 어떻게 될지 장담하지 못하겠다. (그렇다고 내게 주어진 일을 허투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변화가 생겼다. 우선 아내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생겼다. 별 보며 출근하고 별 보며 퇴근하던 시절을 잊고 해가 있을 때 집에서 가족들과 밥을 먹으며 놀이를 하는 시간이 생겼다. 내가 바라던, 함께하는 시간을 공유하며 즐거움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나의 아내와 아이도 조금 더 여유가 생겼고 서로의 목소리를 더 듣는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우리 집에는 안정이라는 편안함이 찾아왔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함께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 기쁨이고 행복인데, 조직에 너무 얽매여 있었던 것이다. 금전적으로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우리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며, 누릴 수 있는 행복도 많지 않다는 것에 매일을 감사해 하며 가족과 더 시간을 보내려 한다. 조직과는 거리를 조금씩 두며, 나의 가족에게 한 발자국 더 디뎌볼 생각이다.
나는 오늘도 나를 위한,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삶을 위한 정시 퇴근과 탈 조직화를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