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코로나

by 행복한어니언

몸이 무겁고 뜨겁다.

회식이라 숙취로 인한 피로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아프고 체온계는 38.6도를 나타낸다. 평소 먹지 않는 고량주를 먹어 체온이 높고 숨이 조금 버겁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평소 보다 30분 늦은 출근을 한다. 회사 도착 후 1시간 반 가량 업무 시작 전 루틴을 하고 시업 시간을 맞이한다.


한 시간가량 지난 후 외출증을 끊고 병원으로 향했다. 하루사이 따뜻한 공기와 차가운 공기가 돼 바뀌는 날씨에 병원에는 대기자들이 가득하다. 담당 의사는 수술 중이라 조금 대기해야 했고, 나의 몸을 소파에 기대어 느껴지는 중력에 그대로 맡겼다.


수술이 주요 매출인 이 병원에선 담당의사가 서둘러 수술을 마친 듯 금방 내려왔다. 곧 내 이름이 불려진다.

"어떻게 왔어요"

"목이 아프고 고열이며 코가 막힙니다"

상투적인 표현이 오가고, 차고 얇은 금속이 목안을 타고 들어온다. 그 후 상태가 화면에 나타난다.

"목이 상당히 부었네요, 목상태와 고열을 보니 코로나와 독감검사를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자 뾰족하고 따끔한 날카로운 플라스틱이 용액을 묻힌 채 콧속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아, 오랜만에 느끼는 이 따끔함'

대기한 지 20분 후 내 이름이 불려진다. 의사는 내게 코로나 양성임을 알린다. 처방전을 얼른 작성하여 내 보내려 한다. 맥없이 서있는 나의 나지막한 음성이 울린다.

"수액 맞을 수 있을까요?"

다행히 수액 처방을 받고 주사실로 향한다. 이렇게 나의 세 번째 코로나를 맞이한다.


5년 전 코로나가 우리 일상으로 다가왔을 초창기 때 실시간 동선, 모임제한, 전파되지 않도록 전염병 예방에 노력을 가하던 때이다. 신상정보가 공개되고 지나치게 개인의 자유를 너무 침해한다는 주장이 앞서며 코로나를 대하는 의미는 몇 년 사이 조금 달라졌지만 코로나는 분명 아직 치료제가 없는 전염성 질병이다. 코로나로 인해 목숨을 잃으신 분들, 그리고 백신 부작용으로 인해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에게 반갑지 않은 단어이다. 할 말이 많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내 입장이지만 부족한 필력으로는 담을 수 없다. 그분들에게 깊은 유감을 표한다.


이 과정들을 지난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코로나 이전과 현재 많은 사회적 변화가 이루어졌다.


첫 번째 모임, 회사회식 등 분위기가 바뀌었다. 코로나 이전을 기억하면 집에 머무르는 시간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일이 끝나면 퇴근과 동시에 함께 일하던 사람과 저녁, 술을 마신다. 그리고 업무가 연장되며 일 얘기를 한다. 그렇게 회사에서의 수직적 관계는 끊임없이 유지되고 주변 상황과 혹사되는 자신의 몸상태를 모르고 회사 업무 성과만 생각하는 사람으로 진화되어 간다. 지금은 회식을 한번 하자라는 말도 꺼내기 어렵고, 회사 자체적인 행사도 상당히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두 번째 집단, 단체보다는 개인을 알아가는 시간이 생겼다. 그동안 양보해 왔던 것들,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시간들이 생겨났다. 글쓰기를 시도할 수 있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코로나 이전에는 모임을 챙기고 업무를 챙긴다. 자신을 돌봐야 하는 순위는 한참 뒤에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모임이 제한되고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하지 못해도 살아가는데 이상이 없음을 느낀다. 우리 사회는 돌보지 못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맞이한다.


그동안 집에서 나는 언제나 부재중이었다. 집이라는 공간은 그저 나의 수면을 채우는 공간이 되었고,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 그리고 아내가 어려움을 겪는 모습들을 모르고 지내온 시간들이었다.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을 모르고 관성에 의지한 채 살아왔다. 아내와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시간이었다. 코로나가 우리 일상에 다가오면서 기존의 관성을 털어내고 나와 내 주변을 다시 돌아보며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 필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니었다. 안 하면 큰일 날 일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안 했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큰 사건이 생기고 그로 인해 세상이 바뀌어 간다. 관념적인 것들이 없어지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이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내 것으로 만드냐 따라 우리 삶도 달라질 것이다. 이전의 것이 잘못되었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도 그것이 정답이라 믿고 살아왔고, 그렇게 우리 사회는 운영되고 유지되었다. 하지만 사회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간다. 우리가 생각하고 조금 더 변화하고 편견과 오류의 붕괴를 만들어 빛을 만들어 낼 것이다. 다음 세대도 현재 우리의 과오를 바라보며 개선하고 더 나은 삶을 바라보며 바꿔 나갈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지대로 운영될 것이다.


처음 맞이했던 코로나보다 통증은 덜하지만 타인에게 옮아갈까 걱정이다. 보다 더 조심하고 세 번째 코로나를 맞이하며 5년간 시간을 떠올려 보았다. 변화를 두려워했다. 기존에 하던 데로 하는 것이 가장 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코로나를 경험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중요한 것은 현재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나를 더욱 돌보고 내가 만들어 가는 행복을 찾아가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누군가 해온 대로 반복하지 않고 나의 행복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행복을 좇아보려 한다. 아직은 힘들 것이다. 40년 넘게 살아온 나의 루틴을 단번에 깰 수 있는 자신감은 없다. 하지만 나의 행복을 위해 천천히 발을 내디뎌 본다.


어김없이 오늘도 나의 소중한 것을 찾아 일상을 맞이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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