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대표반

포지션은 골키퍼입니다

by 행복한어니언

센터에서 아이의 축구 시작은 23년 초로 기억한다. 축구를 잘하게 되면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고 자신감도 붙어 일상을 조금 더 즐겁게 맞이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정식 등록을 했고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따라 하는 것이 힘든 7세 아이, 본능이 머릿속 마음속에서 몸으로 연결되어 바로 표현되었다. 실력을 쌓기보단 비용을 지불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을 빌린 곳이었다.


축구를 계속하다 보면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나에게 있었다. 감독님에 대한 신뢰와 관계 그리고 우리 생활의 관성적인 부분이 센터를 꾸준히 다니게 했다. 생각한 만큼 축구는 늘지 않았고 아이가 진지하게 집중하고 오는지, 프로그램에 잘 따르는지도 의심이 들었다. 어느 날 감독님께서 대표반, 선수반과 별개로 취미반 위주 감독님이 직접 가르치기로 한 센터 2호점이 오픈한다고 했다. 감독님이 선수반 위주로 코칭을 하고 취미반은 다른 코치님이 수업을 진행했기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아이가 감독님에게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된 기회였다. 올해 2월, 즐겁게 그리고 체계적인 수업을 기대하며 새로운 축구를 다시 하기를 기대했다.


즐겁게 축구를 배우며 실력도 늘어갔다.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센터에 갔을 때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전개에 두 눈을 끔벅거렸다. 어디서부터 인지 모르겠지만, 다들 함께하는 슈팅훈련에서 아이는 골대를 지키고 있다. 순간반응능력이 좋아서 막는 것을 잘하는 아이가 맞다. 그런데 여기는 비용을 지불하고 배우는 자리가 아니던가? '잘했으면 좋겠는데' 속으로 되뇐다. 실제 아이의 킥도 다른 아이와 비교했을 때 부족함이 보인다. 알려주는 것이 필요한데, 더 잘할 수 있게 기회를 더 주면 좋을 텐데,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속상한 마음이 솟구친다. 분명 잘 알려주었을 테지? 알려준 대로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아 속상함이 크게 다가와 아이가 마음이 움츠려 들었겠지? 분명히 잘하고 싶었을 텐데, 그게 어려워 되지 않아 본인이 가장 힘들었을 거야.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운동신경이 좋고 잘하는 아이들을 따라갈 수 없음을 느낀 건지 스스로 위축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제일 잘할 수 있는 골키퍼를 자청한다.


아내와 얘기를 하고 감독님께 의견을 전달한다. 골키퍼를 하더라도 슈팅연습과 킥 훈련을 같이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우리와 오랜 인연을 다져온 감독님은 반영한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러 대회참여 및 연습경기, 훈련의 일정이 잡힌다. 어쩌다가 아이가 대표반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의 포지션은 골키퍼! 드리블, 킥, 패스, 상황판단 이 모든 게 부족한데 대표반이라니, 골키퍼면 다행인 건가? 뛰면서 축구실력이 늘기 바랐지만 아직은 한참 부족해 보이는데 같이 어울릴 수 있을까? 불안을 가득 안은 채 그저 관성처럼 따라가는 선택을 한다.


그렇게 함께하는 공식적인 첫 훈련이 시작되고 연습경기도 뛴다. 예전에 필드를 뛸 때 시작할 때 뛰지 못하고 교체로 들어가 다시 재교체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포지션이 바뀌고 스타팅으로 나와 시작과 동시에 한자리를 차지한다. 포지션은 골키퍼다. 뛰면서 골을 넣는 게 더 재미있고 즐거울 텐데라는 내 마음속 말이 계속 맴돌며 공식 훈련과 경기가 끝난다. 그리고 다음날 대회도 한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무사히 치르게 된다. 골키퍼만 해서 속상하지 않을까 아이에게 물어봤는데 반응은 의외였다. 질문에 당연히 반응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행동은 대표반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난 것이었다.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대표반을 하고 있고 만족하며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데, 난 내 모습을 투영해 아이를 바라봤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에게 따라오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아이는 대표반으로 뛰면서 자존감이 올라가고 소속감도 강해진 상태다. 심지어 빠른 반응으로 아이만 가진 특별한 선방능력은 덤이다. 잘할 수 있는 부분을 격려받으며 구성원들에게 존중받고 더욱 당당해진 아이의 모습을 바라본다. 내가 아이 나이 때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지만 잘할 줄 아는 게 없어 같이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게 큰 걱정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본인이 가진 능력을 바탕으로 한자리를 꿰차고 팀을 대표해서 소속되고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내 불안과 걱정이 오히려 아이의 행동에 제한을 가지게 한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보통의 아이로 살았으면 좋겠고, 세상의 어려움과 갈등을 최대한 마주하지 않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 욕심 많은 부모다. 학교 생활은 어떤지,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는지 궁금하고 듣고 싶지만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아빠의 잔소리가 오히려 행동에 제약을 가지고 왔다. 조금 더 아이를 믿고 나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아이의 행동에 지지하고 바라봤어야 하는데 내가 가진 불안과 알량한 욕심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라는 미안한 감정이 든다.


솔직하게 조금 더 잘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더 부딪히며 어울리고 리더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런 게 나의 욕심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아이는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며 즐기며 잘하고 있는데, 내가 살아온 방식을 주입했다. 분명한 건 아이가 느끼는 즐거움과 행복인데, 여전히 간과한 채 통제라는 벽을 세웠다. 돌아보며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너 즐겁고 행복한 거지? 그거면 됐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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