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게 될 거라곤 상상해보지 않았는데,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머신을 장만했다.
단, 원두는 나의 용돈으로 산다는 조건하에!
머신에 대한 정보 탐색 중 '머신 구입 첫 단계는 와이프의 허락을 얻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웃었는데, 머신 가격이 얼마나 천차만별인지 좀 괜찮은 걸 사려면 값이 만만치 않았다.
그럼 난 남편의 허락을 얻어야 하는 건가?
처음 저렴한 걸 사면 중간에 꼭 바꾸고 싶어 진다는 지인의 경험을 담은 조언에 고민이 되었다.
머신으로 몇 잔을 내려 마시면, 원두 값을 포함해서 머신 값을 뺄 수 있는지 계산을 하며 몇 가지의 머신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몇 날 며칠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던 남편이 나중에 바꾸고 싶다고 또 고민하지 많고, 추천받은(지인이 사용하고 있던 브레빌 머신) 걸로 사라며 흔쾌히 공금을 오픈해 준다.
진심 감동에 너무 고마웠다. (혹시, 나중에 저 직장 그만두면 카페 알바 보내시려고 준비하시는 건가요?)
남편의생각이 바뀌기 전에 부랴부랴 주문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난 반짝반짝 나의 에스프레소 머신과 함께 홈카페를 열었다.
2023.02.22.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으면 금방 에스프레소 추출도 라떼도 할 수 있을 줄 았았다. 게다가 난 제대로 된 에스프레소의 맛이 뭔 줄도 모른다. 바리스타 2급과 라떼아트를 배울 때 에스프레소 맛까지 배우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검색하고 카페도 가입하고 유튜브를 보며 연습하는 동안 많은 원두를 버리고, 우유를 낭비하고, 관절도 희생했다. 그럭저럭 괜찮은 맛을 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만, 퇴근 후 저녁과 주말에 머신과 함께하는 힐링의 시간은 너무 좋았다.
10개월의 시간 동안 로스팅카페에서 다양한 원두도 사고, 인터넷으로 원두를 주문하고, 주중에도 라떼를 먹고 싶어서 디카페인 원두도 꽤 샀다. 맛있는 라떼맛을 찾기 위해 카페에 가면 꼭 라떼를 시켜서 셀프 품평회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만든 라떼가 어떤 카페의 라떼보다는 맛이 더 괜찮을 때도 있었다.또 맛있는 까페에서는 조심스럽게 어떤 원두를 쓰시는지, 판매는 하시는지, 에스프레소와 우유의 비율은 어떤지 물어보기도 했다. (맛이 있다는 거니까 기분이 좋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민폐...)
2023.08.03.
홈카페로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아이용 초코라떼를 만들고, 드립커피의 세계로도 빠져들었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넣은 아메리카노보다 드립커피가 더 맛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먹기편하게 만든 드립백의 커피 맛이 꽤 떨어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프랜차이즈의 라떼 맛과 판매 원두가 그닥 괜찮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러 가지 원두를 섞어서 라떼도 해보고, 드립도 내려보며 내가 좋아하는 맛을 찾았다.
일명 고블렌딩이라고 이름 지은 '브라질, 과테말라, 예가체프'를 그날 기분에 따라 적절히 섞는다. 그때그때 맛이 조금씩 다른 것도 신기하고 내가 내린 커피가 맛있는 것도 신기하다.
2024.01.01.
내 요즘 루틴은(늦잠으로 매일은 못해도) 평일 아침에 텀블러에 드립을 진하게 내려 출근한다.
단 5분의 시간이 꼭 나만을 위한 시간 같아서 좋다.
내려온 커피를 조금씩 머그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섞어 맛있게 마시며 일한다. 또 주말 낮에는 라떼를 만들어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
원두의 맛과 향, 제대로 추출한 에스프레소, 드립커피에 대해서 점점 궁금해진다.
제대로 배우고 싶은 마음에 조금씩 모아놓은 용돈으로 바리스타 1급 과정(주 1회 8주 과정)을 등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