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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서퍼 Apr 03. 2022

당신은 왜 나를 정의하려 하나요?

네, 제 mbti entj인데 왜요?

'너 mbti가 뭐야? 아 entj? 그럼 계획 잘 세우겠네~ 사람 별로 안좋아하고, 완전 목적추구형이라던데? 그리고 entj 보통 노잼이래.'


바야흐로 정의의 시대다.

'너는 어떤 사람이구나, 어떤 타입이구나'하는 타인정의가 당연시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알고, 그러면서 이해하게 되고 그 심연을 들여다보는 방식이 과거의 관계맺기였다면,

이제는 다양한 기준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판단한 후에 나에게 맞는 사람일지 아닐지를 가려보는 것이 '보통'이 되어가고 있다.

오죽하면 어떤 회사는 공채시 무슨무슨 mbti는 꺼린다고 써놓기도 한다며 온 세상이 그것이 맞는지 틀린지로 떠들썩하다.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서 이런 인간성 분류를 맹종하게 되었을까?


나의 경우는 그랬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어색한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고 고민하다 들여다본 것이 mbti였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사람을 알게 되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삶은 바쁘고 사람들은 냉혹한 시대가 아닌가?

그리고 그러한 시간의 간격을 노력 없이 따라잡고 싶은 내 욕망에 mbti는 편리한 도구가 되어주었다.


나는 어색한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나이, 성별, 지위를 막론하고 mbti를 사용했다. 의외로 그에 대한 반응도 대체로 좋았다.

어떤 유형은 선의를 옹호한다고 하고 어떤 유형은 몽상가라고 하니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느냐며 신기해했고, 그 다음 이야깃거리도 던져주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도출된 mbti 설명과 누가 봐도 성격이 다른 사람은 어떤가?

그들은 나에게 자신이 위에 나열된 성격과는 어떻게 다른지, 실제로는 어떤 사람인지를 열정적으로 설명해주곤 했다. 그것이 내가 그 사람과 더 많은 말을 나누는 계기가 되어 주었던 것은 물론이다. 또 그 사람이 실제로 설명하는 모습이 참인지 거짓인지와는 상관없이 그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모습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기도 했다.


물론 긍정적인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타인을 쉽게 판단하고 평가하는 행위로 인해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가는데 방해가 되었다. 이 사람은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나 마음을 닫으면 다음 기회가 없는 사람이니 늘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거나, 이 사람은 인간에 대해서 그다지 애착이 없으니 나도 정을 주지 말아야겠다고 금새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위와 같은 평가나 분류 자체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내게 반감을 가지기도 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의 측면에는 어떤가? 이러한 인간성 분류지표는 내가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뿐만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파악하는 데에도 방해가 됐다.

나는 mbti 검사를 세 번 하는 동안에 모두 entj-a라는 결과를 얻었다. 위 유형은 삶에서 성취를 가장 중요시여기는 성향의 사람들이 분류되는데, 그 설명에 의하면 나는 성취와 목표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진정성 있는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거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런가?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나는 내 곁에 찾아온 인간들을 너무나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면서도 어떤 사람을 너무 좋아하면서 귀하게 여기기도 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내 삶의 중요한 길목마다 놓인 성취에 큰 영향을 받기도 했다.


각각의 유형도 마찬가지다. e는 외형적인 사람을, n은 생각이 폭이 넓고 자유로우나 꼼꼼하지는 못한 사람을, t는 결과를 중시하는 사람을, j는 계획적인 사람을 의미한다.


하지만 나는 주말에는 집에만 있고 싶어하는 슈퍼집순이에(p 인생의 최대 난제 중 하나일 정도다. 내가 너무 많이 자고, 너무 집에만 있다는 것이), 생각의 폭이 너무 좁다고 스스로를 탓하기도 하며, 오히려 꼼꼼하고 세부적인 것에는 자신이 있지만 풍부한 상상력이 없어 꿈을 바꾸기도 했으며, 그다지 계획적이지도 않고 여행시 숙소와 비행기표만 예약하고 가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솔직히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t는 맞는 것 같다. 할 말이 없다).


또 만나는 사람마다 다르게 변하는 내 성격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내가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니어야 하는데, 그럼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게 되기도 했다.

이런 모습만이 내 진짜고, 이런 모습은 가짜인가 의문을 가지면서.


나는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와 있을 땐 거의 말을 하지 않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정도 많고 말도 많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지만, 다른 이는 나의 무정함에 서운해하기도 한다. 내가 힘든 점을 너무 징징거려 나를 떠난 사람도 있지만, 가까운 누군가는 내가 고민을 너무 말하지 않아 못내 서운하다고 자주 말한다.


그렇다면 내 mbti 유형은 iesntfpj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누구와, 언제 어떤 식의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누구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날이 흐리니 infp로 살아가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중 하나라도 내 모습이 아니라고 서운해할 필요도 없고,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그것이 모두 나고, 진짜 내 모습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이다.

나는 이제 어떤 인간이든 될 수 있고, 어떤 미래든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어떤 미래의 모습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게 찾아오는 어떤 의외의 반전도 그다지 놀랍거나 나 자신을 제약하는 무언가가 되지 못한다.


mbti? 오히려 좋아.

난 이제 어떤 유형의 사람이든 되고야 말 것이니까.


그러니 이 다음에 누군가가 나에게 mbti가 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해야지.

음...오늘은 abcdefg인 것 같아요. 왜냐면 내일이 되어야, 오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거든요.


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이렇게 말할 사람도 있겠지. 'entj는 mbti를 안 믿는 유형의 사람이구나.'

그럼 어쩔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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