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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서퍼 Apr 28. 2022

30살, 꽃처럼 피어난 한 주를 기념하며

내가 뿌린 사랑의 씨앗이 꽃으로 돌아올 때도 있구나

b의 선물이 있었다.

생일은 내일인데.

일 하기 싫어, 집 가고 싶어, 더우면 더우니까 싫고 추우면 이제 여름인데 추워서 재수없어,

툴툴거리던 내게

하루 전부터 너의 생일을 기념하라는 그녀의 위로를 시작으로

생일 주간이 시작됐다.

당일 아침에 출근하니 케이크와 커피가 놓여져 있었다.


생일이 별거냐, 일년에 한 번 돌아오는 날일 뿐인데.

내 생일 내가 고생한 것도 아니고 엄마가 고생한 날인데 생각하며 머리도 말리지 못하고 출근했었다.


그래놓고 출근 길 내내 생각했다.

생일인데 지각이라도 커피 한 잔 정도는 사서 갈까? 생일인데 삼각김밥에 닭가슴살 소세지는 구질구질할까?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지각을 면하려 달린 얼굴에 송골 땀은 맺히고, 덜 말린 머리는 얼굴에 달라붙어 잔뜩 짜증이 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 후배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았는데.

책상 위에 놓여진 후배의 선물을 봤다.


점심을 먹을 때에도 그랬다.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도 않는 후배가, 느닷없이 부장님들 앞에서 오늘 내 생일이라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부장님들은 그 소식을 들으시고는 별안간 케이크를 사주겠다며 빵집에 들어가자고 하신다.

점심 먹으러 나갔다가 손에 홀케이크를 들고 돌아오는길 생각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밤에는 동기들과 저녁을 먹었다.

전 날, 그들이 사무실을 찾아와 생일날 연차를 쓸 거냐고 물었던 것이 발단이었다.

아무 계획 없지.

뭐는 언제까지 내고 이건 또 언제까지 하고 머릿속에 그런 생각들로만 가득 차 있었으니.


생각도 못했다. 다음 날이 생일인지도 모르고 있었고, 당연히 그걸 위해 연차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지도 못했다.


그들은 생일이니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다.

저녁을 먹자며.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혈혈단신 일하기 위해 온 도시에서 혼자 저녁을 보낼 나를 생각한 것일테다.

들뜬 마음에 좋아하는 선술집도 예약하고, 먹어보고 싶었던 안주를 종류별로 시켜 사케까지 곁들여 마시면서

바람부는 저녁을 보냈다.

그러니까 밖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고, 마음에도 따뜻한 바람이 부는 그런 저녁 말이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 오늘 하루가 얼마나 상쾌하던지.


그건 행복하다 혹은 기쁘다는 마음이 아니었다.

상쾌한 기분이었다.

물론 p도 빠질 수 없다.

p로부터도 당일날 무엇인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은 했었다.

당일이 되니 다음날까지 해야 하는 것이 있어 까먹고 있었는데, 도중 꽃배달 아저씨의 전화를 받았다.

p는 시킨 것이 없다고 했다.

너의 선물로 준비한 것이 없다고.

없긴 뭐가 없어, 그럴 사람이 아닌데.

웃으며 너냐고 물으니 계획이 틀어졌다고 툴툴댄다.

집에 오니 그가 좋아하는 꽃집에서 배달된 바구니가 나를 마중나와 있었다.

여러모로 행복한 귀갓길이었네.


그렇게 약속 전 꽃구경 한 번 하고, 만취해 돌아와서는 꽃꽂이를 해보겠다며 난리를 피웠다.

목요일 저녁, 또 다시 sy언니를 만났다.

할 건 많지 하기는 너무나도 싫지.

산 넘어 산이라고 생일축하 약발이 채 하루도 가지 않았던 것이리라.

일하다 말고 오늘 저녁은 야근하지 말라고, 나를 만나 놀아줘야 한다며 땡깡을 피웠다.


원래 3일의 차이를 둔 언니 생일을 함께 축하하기로 한 만남이었는데, 약속한 날짜를 당겨 나를 보러 오라는 고집에도 언니는 선뜻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 할 것을 모두 내팽개친 기분으로 언니를 만났고, 불어 수업에 재차 결석했다.

기분은 다운이지 언니는 만났지 죄책감은 정신을 지배하려 하지 만나서도 한 쪽 가슴에 돌덩이가 앉은 느낌이었는데,

오래 줄 서기 싫다며 들어간 맞은편 식당은 나무랄데 없이 맛있고

땡깡에 달려온 언니는 너무 다정하다.

너무 다정하고 좋은 말만 해줘서, 볼멘소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버렸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알았다.

계속 달리기만 하고 계속 불안해만 하고,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눈 감고 오늘 할 일 하면서 단순하게 살면 되는 것일텐데,

매일을 오지 않은 내일의 과업에 정신을 빼앗겨 오늘까지 망치고 만다.

행복의 열쇠는 결국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위로는 먼 곳에서 찾을 것이 아니었나 보다.

집 대문을 두드리는 친구들의 선물더미에서 구할 수 있었다.


생일 당일, 수많은 친구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 중에는 예상한 축하도 있고, 오랫동안 소원했던 사람으로부터 온 깜짝 축하도 있었다.

기다리던 사람으로부터의 외면도 있었음은 물론이다.


생일이 누군가에게 이토록 특별한 이유는, 대문을 두드리는 선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사랑하고 사랑받고 미워하고 울어가면서 사는 이번 삶에서, 나의 탄생을 축하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위안과

내가 축하받고 싶은 사람으로부터 축하받았을 때의 행복 그리고 자주 연락하지는 않는 그 사람이 아직도 내 삶의 경계선 안쪽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 때문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올해 내가 뿌렸던 사랑의 씨앗들이 얼마나 그 꽃을 피웠는지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테다. 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다정했는가.


비록 정신이 없어 모든 택배를 다 뜯어보지는 못했지만, 쌓여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인 배부름을 느꼈다.

마침내 맞이한 금요일 저녁, p에게 생일 기념으로 쏘겠다며 한 사람당 7,000원이나 하는 커피를 시켰다.

하나는 5,500원 또 하나는 7,000원 짜리 커피였는데 사소하지만 어떤 것이 더 비싼 커피인지 모르는 채로 마시기 시작하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아 더 좋은 건 p가 마시고 있으면 좋겠다고.

더 좋고, 맛있는 건 니가 먹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생각하는 나를 보며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다.

엄마 나도 이제 양보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혹시 이런게 30살이라는 걸까?

좀비같은 몰골을 한 채 눈곱도 떼지 않고 광장시장을 갔다.

p네 집 근처에는 광장시장도 있고, 방산시장도 있고, 중부시장도 있다.

다양한 시장을 구경하며 코를 찌르는 액젓 냄새를 맞이하다 보면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도 실감하게 되고, p가 받아온 온누리상품권으로 육회비빔밥을 먹고 나면 토요일 하루를 알차게 시작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광장시장에는 365일장이라는 가게가 있다.

생긴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은 곳 같은데, 와인을 비롯한 버터, 잡지 등 예쁘고 맛있는 것들이 잔뜩 있는 곳이라 갈 때마다 눈을 치켜뜨고 구경하게 된다.

온누리상품권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하셔서 기쁜 마음에 와인을 두 병이나 샀다.

그러곤 버터도 받고, 새로 나온 테린느도 받아 커피까지 두 잔 주문해 집으로 돌아왔다.

육회비빔밥에 김치전까지 먹고는 배부르고 귀찮다며, 도대체 식당 예약은 왜 해둔것이냐고 행패를 부리다 겨우 씻고 도착한 곳은 도산이다.

도심의 색깔이 잿빛일수록 이런 공원의 존재는 행인들에게 큰 기쁨이기에, 식당 예약시간 전 마음껏 식물 구경을 했다.


그리고 나는 꽃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한여름이 찾아오면 꽃도 더위를 탈 것만 같아서인지 카메라로 남기고 싶었나보다.


여전히, 사울레이터가 되어보겠다는 열망은 식지 않았다.

p와의 사이에는 한 가지 암묵적인 룰이 있다.

생일자가 밥을 사는 대신 함께 갈 식당을 고르고 예약하는 것은 얻어먹는 쪽이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p는 미리 예약을 해뒀으니 잊지 말고 서울로 올라오라고 했다.

p의 성화에 따라 가본 것이지만 맛도 있고 분위기도 좋았다. 이번엔 밥도 p가 샀다.

어차필 결혼하는데 누가 사든 상관 없는 것 아닌가요? 깔깔깔깔.

그동안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었던 가구 쇼룸에 방문했다.

지난번 가구투어 때 비아인키노에서 소파를 사겠노라 마음을 먹은 상태였던 것은 맞다.

그래도 카우치형으로 된 큰 가죽소파가 사고 싶은 것도 사람 마음이 아닌가?

가격은 원래 소파와 비슷한데 훨씬 크고 또 가죽이기까지 하지 뭐람?


때문에 p도 나도 이제는 뭘 사야 할지 모르겠다며 혼란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이 날 본 소파가 굉장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또 다시 시작된 나 이 동네 살고 싶어 병.

서울 사람이 아니니 당연히 서울의 곳곳을 알 수는 없어도, 서울 내에 그것도 강남에 이렇게나 조용하고 고즈넉한 동네가 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어쩐지 이 브랜드 쇼룸은 꼭 와보고 싶더라니.

소파 보러 왔다가 인근 부동산 구경에 오히려 더 열을 올리고, 옆의 p에게 우리 이 동네 살자는 말만 한 백 번쯤 하고는 생명수를 들이키고 지하철을 탔다.

하도 걸어 다리가 터질 것 같음에도 포기할 수 없다며 이어간 강행군의 종착지는 가로수길이다.

이제부터는 영화관에서 팝콘 취식도 가능해지는 것 아니냐며, 신비한동물사전이 그렇게 재미가 없다는데 의리로라도 보겠다며 팝콘이 맛있는 롯데시네마에 가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팝콘은 아직 먹을 수 없었고,

영화는 재미가 놀랍게도, 있었다.

조니 뎁의 하차로 새로운 그린델왈드가 된 매즈 미켈슨이 그러니까 너무 섹시하고 연기도 잘하고 하...

덤블도어가 왜 사랑했는지 너무나 이해가 됐다.

저 정도면 뭐 머글 불태운다고 해도 약간 서사를 부여할 수도 있지 않을까...? ㅎ


영화를 보고 나니 밤은 더욱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가 좋은 이유는, 아마 이렇게 완전히 다른 세상을 다녀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곤 불 꺼진 가로수길 번화가를 걷는데, 문득 외롭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도 없고, 불도 꺼져 있는데 물건만 가득 차 있는 거리라니, 이유 없이 더 이상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가로수길에서 한 잔 하고 가자는 제안을 무시하고서 향한 곳은 역시 집이다.

아침에 미리 사 둔 와인을 힘겹게 따고, 오는 길 장봐온 것들을 간단히 요리해 먹는데 빠져나간 기운이 몸에 다시 돌아옴을 느꼈다.

역시 삐까번쩍할 필요도 없고, 엄청나게 고급스러우면 오히려 부담스럽다.

집에 널린 먼지와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들이 있는 지금, 사람의 온기와 이야기가 있는 이 곳에서의 시간이 훨씬 행복하다.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어제 술을 많이 마셨는지 아침부터 왼쪽 머리가 너무 아팠다.

몸을 일으키면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고, 왜인지 치아교정기도 빠져버려 몸이 만신창이가 된 기분.


그러니 나는 해장을 하기 위해 보리밥을 먹어야 한다고 우겼다.

원래부터 비빔밥을 싫어하는 p는 보리밥 먹기 싫다며 옆에서 입을 대빨 내밀고서 본인은 다른 메뉴를 먹겠다 하더니,

혼자 한 그릇 뚝딱 잘만 먹더라.

그러고선 앞으로 이 곳이 우리의 새로운 일요일 루틴이 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했다.

아니야 안그럴거야.

청계천을 코 앞에 두고 사는 p는 나 없는 청계천 산책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애달픈 표정을 지었는데,

되려 홀로 물고기와 새 구경에 빠져버렸다.

모기가 기승을 부리기 전의 청계천은 아름다웠다.

물론 비둘기 똥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왔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p와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꿍얼대며 캐리어에 제대로 개지도 않고 옷을 꾸겨넣는 중, 가져온 옷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p한테 칙칙한 옷만 입냐고, 밝은 색 옷도 사보라고 난리를 냈던 나지만, 나도 심하다.

뭐 낮은 채도의 옷이 하나도 없네.

아무리 집으로 돌아가야한다고는 해도, 날씨 좋은 봄의 한강을 즐기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음...부작위에 의한 인생안즐기기죄 정도?

아예 초등학교때부터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지 않나 싶다.

날씨가 좋은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에는 한강에서 자전거를 꼭 타야 한다고. 국민의 기본권에 포함되어 있다고.


이번에도, 무수한 꼬치와 음식냄새를 열심히 이기며 내기하듯 자전거를 탔다.

허기진 채로 중국음식을 먹고 p가 바래다 준 서울역, 또 내려가는 거냐며 묻는 p다.

응, 내려가야지.

돈 벌어야돼.

그러면서 연신 커피잔만 바라보다, 기차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돌아온 일요일, 날 반기는 것은 회사도 아니요 관리비명세서도 아닌 c다.

c와는 대학 교양수업에서 만난 사이로, 대학교 1학년이던 어린 아이가 벌써 대학원 졸업까지 했으니 그 역사가 정말로 무구하다.

비록 우리는 그렇게나 시간이 빨리 흘렀음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c는 인생의 질풍노도를 겪고 있다며, 잠시 우리 집에서 쉬다가 가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을 집에서 이틀이나 재우는 행위로 말할 것 같으면, 준 결벽증이나 다름 없는 내게는 모든 호의와 인내를 끌어다 쓰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어떡하겠어?

니가 그러겠다는데.


거의 3년만에 만난 c는 오랜만에 봤음에도 여전히 변한 것이 하나 없다.

조잘거리고 작은 것에 행복해하고 또 고민하며 이내 행복해진다.

너의 그런 생각과 마음들이 결국 너를 더 행복한 곳으로 이끌면 좋겠어, 다른 것들은 아무래도 좋아라고 생각하면서 서울에서 가져온 와인도 따고 오랜만에 빔프로젝터로 분위기도 냈다.

직급별 식사의 시간이 있는 월요일이 돌아왔다.

그동안 온갖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불만을 한큐에 해소시켜주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사실 이번 직급별식사는 우리만 함께하는 식사로서는 마지막이 될 것 같아 너무 슬펐다.


나는 구태여 그것은 말하지 않고, 김치찌개가 맛있다며 부러 소리높여 이야기했다.

다음주가 되면 나는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리워하겠지. 정말로.

월요일 밤에는 집에 있던 c와 sy언니를 한데 모아 술을 마셨다.


6시 10분까지 만나기로 했는데, 택시도 불렀는데 왜 안오냐고 하면서 내심 짜증냈던 내게 택시타자 마자 언니가 내민 것은 꽃다발이었다.

우리의 생일이 가까우니 서로 선물은 하지 말자며 그저 편지나 써주자고 했었던 것은 나였는데.


언니는 그래도 그럴 순 없다며 꽃다발 포장이 오래걸렸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앞자리에 앉아 좌석에 꽉 차는 꽃다발을 들고 가는길, 얼굴이 화끈거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뿌린 사랑의 씨앗이 꽃으로 돌아오는구나.


나를 제외하곤 처음 가보는 식당에서 셋이 옹기종기 모여 안주를 시키고, 배불러 거나히 취한 상태로 꾸역꾸역 커피까지 마셨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내가 아는 가장 좋은 곳들을 소개하고 싶다며 억지로 이곳 저곳을 끌고다녔다.


c는 궁금한게 많은지 sy언니에게 질문이 한창이다.

커피숍의 테이블에는 촛불이 타오르고, 나는 알딸딸한 기분으로 별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돌아온 집, 그녀가 준 꽃다발을 화병에 꽂으며 생각하게 됐다.


온 집안이 꽃밭이구나. b와 sy 그리고 p가 준 꽃다발로 꽃보다 화병이 적어 꽃을 꽂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집 안에 놓인 디퓨저보다 꽃 향기가 더 강하게 나다니.

보고 있자니 기분이 절로 이상해졌다.


30살은 꿈의 단어다.

30살이 되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고,

서울 어드메 멋진 곳에서 화려한 정장을 입고 사고 싶은거 다 사고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이가 바로 서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겐 늘, 무엇보다 사람이 어려운 존재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지, 주는 만큼의 애정을 왜 똑같이 돌려받지 못하는지 알지 못해 힘겨워했다.

나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닌데 왜 그렇게 받아들이는지도.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 지점에서 왜 화를 내는지 알기가 너무 어려우니, 공부가 더 쉽고, 일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30살이 이번주 어느 날 저녁 내 방문을 두드렸다.

너 이제 30살이라고, 너 이제 완전 어른이라고.

그 때 니가 꿈꾸던 멋진 어른이 되었느냐고 내게 묻는 것만 같았다.

아 큰일이 났네. 꿈꾸던 화려한 커리어우먼과는 인생이 딴판 그 자체인데.

커리어우먼은 아니고 하루에 커피만 연거푸 세 잔쯤 마시는 커피어우먼만 되었다.


그런데 왠걸?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10대 때부터도 곁에 있고, 어떤 사람은 20대에 나타나 내 세계가 되고 또 어떤 이는 만난지 2년도 채 안되어 마음에 깊은 감동을 준다.


사람이 어렵고, 그들의 사랑을 구하기는 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된 꼴이다.


슬기로운 30대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사랑이든, 성취든 인생은 성실한 씨뿌리기의 연속이라는 것을.

뿌리고  뿌리면 어느날, 이렇게 꽃으로 돌아올 때도 있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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