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는 결혼을 하고, 나는 고향 땅을 밟았다.
한 주의 시작은 밀린 일과 함께다.
일과 시간에 열심히 하면 다 끝낼 수 있는 양일텐데, 부족한 집중력 덕택에 밤에도 여전히 사무실을 지키는 것만 같다.
그럴 땐,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불쑥불쑥 약한 정신의 어딘가를 타고 내 안을 잠식하는 기분이 든다.
괴롭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정해진 일과처럼 필라테스를 간다.
가기 전에는 스케줄을 미룰걸 그랬다며 후회하다가도, 막상 가고 나면 그렇게 상쾌한 기분일 수가 없다.
그걸 아는 p도, 예전과는 달리 얼른 운동을 다녀오라고 한다.
이제는 나도 우리 센터의 고참 정도는 되었는지, 내가 가면 강사님이 자꾸 앞에 서라고 하기에 자세를 허투루 잡을 수 없어 운동이 배로는 잘되는 기분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사무실에 들고 갈 커피를 내린다.
당근마켓으로 산 커피머신과는 벌써 6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다. 어떤 설정을 눌러야 입맛에 맞을지도 잘 안다.
얼마 전에는 제주도에서 사 온 원두를 다 먹었다.
다시 제주도에 갈 수는 없어서 슬프지만, 새롭게 사 온 원두도 지금을 버틸 정도는 된다는 사실은 위안이다.
일이 몰아치는 한 주를 보내고, 집에 온 p를 맞았다.
느닷없이 p가 케이크를 사들고 와, 이게 무슨일이냐며 물었더니 그는 말한다.
"그냥, 축하하고 싶어서."
무엇을 축하하는 거냐고 의아해하는 나에게, 그는 나에게 닥친 수많은 짜증나는 일의 긍정적인 부분을 말해주며 오히려 잘된 부분을 축하하자는 의미에서 사 온 것이라고 한다.
당황하면서도 초에 불이나 붙이자는 그의 말을 따라 불을 붙이고는,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신의 이름을 대며 소원을 빌었다.
"제발 올 한해 무탈히 지나가게 해주세요."
그리고 1+1이 적용되는 시간에 맞춰 KFC를 시켜먹으며, 넥플릭스에 업데이트된 영화 야차를 봤다.
연출이 훌륭하더라.
꿈에 나올 정도로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적당히 금 밤을 보내기에는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했다.
기절한 사람처럼 금요일 밤을 보내고, 토요일 e의 결혼식에 참석하고자 고향 땅을 밟았다.
고등학교 동창인 e의 결혼식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기분이 얼마나 이상하던지.
단발머리를 한 채로 일요일마다 나와 비엔나소시지 도시락을 먹어주던 e가 결혼을 한다니.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보니 펑하고 머리가 터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식장에 도착해서도 얼은 채로 그녀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변을 둘러보기만 했다.
p의 권유에도 나중에 인사하겠다며.
얼마나 그녀다운 결혼식이던지, 꽃다발 너머로는 바다가 보이고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그녀 또는 그녀 남편과 아주 친밀한 사이의 사람들 같았다.
공장식 결혼이 싫어 '결혼식' 자체에 회의감을 가진 내가 보아도, 아 이런 결혼식이라면 할만 하겠구나 싶은 그런 결혼식이었다.
그녀는 신부대기실도 만들지 않고 밖에 나와 직접 손님을 맞았고, 그녀에게 찾아가 인사를 하면서도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나에게 그녀는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다고만 했다. 우리는 서로 울지 않으려고 부러 웃었다.
오랜만에 뵌 그녀의 부모님과 인사를 하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서 그녀의 결혼을 축하했다.
날씨는 얼마나 좋던지, 날씨마저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나보다 싶었다.
양가 아버지들의 축사가 이어지고, 신랑의 절친은 노래를 부르며 신부의 절친들은 축사를 했다.
축가가 이어질 때는 갑자기 신랑신부가 그에 맞춰 춤을 추는데 어찌나 분위기가 몽글몽글한지 언제 내 친구가 어른이 되어 결혼을 했나 싶다가도, 아 여전히 그녀는 그녀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뻣뻣한 표정 그 자체로 서서 부케를 받았더랬다.
분명히 전 직장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정말로 이런 미래가 올 줄은 몰랐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는 있는지, 그에 따른 보상을 받고는 있는지 모르겠다며 고민하던 그녀에게 대학원을 권유했던 것은 나였다.
대학원을 다니던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이 그것말고 무엇이 있었겠는가.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니, 내가 아는 전부를 말해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녀는 꿈을 이뤄보겠다며 당차게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멋지게 대학원에 입학하더니 어느 날인가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했다.
얼마나 황당하던지. 내 친구를 생판 남에게 뺏기는 기분이 들었던 것도 같다. 물론 내 것인 적도 없었지만.
그 때의 그 사람과 함께 대학원도 졸업하고, 결혼도 한다니.
새삼 지금 힘들어 죽을 것 같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나에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우리가 결혼하는 이 시간이 순식간에 왔듯이, 너의 때도 올 거라고.
나는 마음으로도 그리고 소리내어서도 그들의 진정한 행복을 빌었다.
e의 결혼식이 끝나고, 야무지게 뷔페까지 먹은 우리는 커피를 마셔야 한다며 바닷가 근처 카페를 찾으러 나섰다.
바닷가 근처에는 큰 규모의 카페들이 유행인가 보다.
기본이 2, 3층은 되어 보이는 카페들만 가득했다.
p가 찾아온 카페에서 오랜 고민 끝 케이크를 고르고 커피를 마시며, 2층 계단 난간에 반사된 바닷가 풍경을 봤다.
바다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물결은 바람에 따라 일렁이고 그런 움직임을 비춘 난간 유리가 그 어느때보다도 아름다워 보였다.
고향 땅의 관광객이 될 시간이 왔다.
집에서 나설 때부터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나가자 했던 p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어디를 어떻게 찍어도 아름다울 것이라고 한다.
행복한 풍경 아니어도 괜찮다며.
우리의 말이 무색하게, 바닷가에는 이미 자기만의 행복을 찾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 모래성을 다듬는 어른들 그리고 수상스포츠 강의를 받는 청년들까지.
이런 장면들을 찍기 위해 돌아다닐 때에는, 엄마가 봤으면 우리들 모습이 퍽 웃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기 왠 젊은이들이 어촌 마을의 낚싯배를 찍고 있더라며, 젊은 애들의 사고는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할 것이라면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삶이 힘들 때마다 고향을 찾았다.
대학원 3학년 때에는 아예 대학원 자격시험 답안지를 집 근처 독서실에 구비해놓고 공부하곤 했다.
서울에서 집까지 몇 시간은 걸리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공부가 너무 안될 것 같다며 다 던져버리고 싶을 때에는 결국 집으로 돌아와 집 앞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던 나다.
집에서 부모님과 식사를 한 것도 아니었고, 잠을 실컷 잔 것도 아니었지만 굳이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필기를 정리하거나 근처 독서실 일일권을 끊어 공부했었다.
그렇게 공부하면, 거기가 서울인지 고향인지 풍경의 차이는 전혀 없었겠지만서도 굳이 고향에 내려온 것만 여러번이다.
그리고 하루 이틀 그런 시간을 보내고 서울로 갈 때면, 왜인지 모르게 몸 안의 피곤세포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고향에서 소중한 친구가 결혼식을 올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식물에 영양제를 주듯이 나 자신에게도 영양제를 주고 싶었다.
나에게 영양제란 고향의 냄새, 풍경 그리고 소리였나보다.
바다 구경은 실컷 했다며, 기차에 올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보름달을 봤다.
피곤했는지 곯아떨어진 p를 옆에 두고, 달이 뜬 창 밖을 보며 서로의 행복을 빌었다.
결국 역 앞의 고깃집에서 폭식을 했다.
그야말로 폭식했다고 할 만큼의 양을 주문했는데, 고향에서 먹을 것이라 기대했던 아구찜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6시를 조금 지난 시간에 갔음에도 그 날의 아구가 다 동이 났다질 않은가.
보상심리로 더 맛있는 것을 먹어야겠다며 다짐한 우리는 엄청난 양의 고기와 사이드메뉴들을 먹어치우고는 배가 터질 것만 같다며 집에 걸어갔다.
건강 앱을 보니 어제 우리가 13,000보를 걸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이 되니, 일어날 수가 없어 힘든 채로 누워 있기만 했다.
물론 이미 9시에 일어난 p는 내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린 채다.
11시가 되어서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이제는 일어날 시간이라며 나를 보챈다.
이 도시를 떠나도 생각날 것만 같은 만두샤브를 먹고, 2,500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맛있는 커피를 마신 채로 일요일 오후를 보냈다.
여름이 오고 있다.
그 증거로는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꼽을 수 있다. 반팔차람을 한 사람들이 곳곳에 띈다.
그리고 여름의 더움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p는 냉면을 먹자는 나의 제안에 두 말도 하지 않고 동의를 한다.
본격적인 여름이 되면 이 식당에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싶은 마음에 일찍부터 냉면을 먹기 시작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p를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 역시 오늘도 올려다 본 하늘은 슬프다.
여전한 직급별 식사의 시간.
월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b와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다.
오늘은 프렌치토스트를 먹고 싶다며 고민 끝에 메시지를 보냈더니, 그녀도 오늘은 프렌치토스트였다고 한다.
통했네? 싶은 마음으로 보내는 점심시간.
오늘 이 순간을 위해 출근한 것만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월요일 밤, 우리 집에서 자고 가겠다는 sun과 함께 감자탕을 시켜먹고는 카페에서 각자 할 일을 했다.
sun은 생일을 미리 축하한다며, 신기한 모래시계를 들고 와 집 한켠에 두고 가겠다고 한다.
그러고는 정리하려 빨아둔 내 여름이불을 피고, 입으려고 빨아둔 내 잠옷을 입고 소파에 누워서는 옆에서 쉴새 없이 재잘거리고 있다.
툴툴거리며 오랜만에 빔프로젝트를 틀곤 음악을 듣는다.
이렇게 수다떠니 대학교 1학년 때의 과거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 내용이나,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졌지만.
식물처럼, 사람에게도 영양제는 필요한 법.
이번 주는 나를 가꾸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