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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서퍼 Apr 12. 2022

낙하하는 저녁

예비 남편 누나의 결혼식과 두 번의 프렌치 레스토랑

눈 감았다가 뜨니 월요일이 밝았다.

정말이지 쏜살같이, 일주일이 흐른다.

어느 저녁에는 힘이 들어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에, 일하다 나와 노트북으로 카페에서 아무것도 안하는 것을 하였다.

그것도 아주 열정적으로.

돌이켜보면 지금의 일상은, 언젠가 공부하던 시절의 내가 간절히 바라고 앙망하던 꿈의 나날이다.

돈도 벌고, 공부도 끝났고, 원하던 직업도 얻었으니까.

그러나 왜인지 모르게 자꾸만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 때는 참 좋았구나, 그 때의 여행은 어땠구나 그리고 그 때의 나는 행복했구나 하면서.

그럼에도 매일의 야근을 이어나가고, 어느 날 저녁에는 y언니와 해물칼국수에 파전도 뚝딱 먹었다.

언니는 모르겠지. 맨날 열정이 없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일 너무 싫다고 하면서도 일 이야기를 할 때 얼마나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는지 말이야. 덕분에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했다.

뭐 물론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무기력해졌지만서도.


어느 날은 b와 만나 커피를 마시며 여느 때와 같은 수다도 떨었다.

지난주 내내 너무 바쁘고 시간이 없어 아예 누구도 만나지 못했는데. 회사에 있는다고 집중이 잘 되었던 것도 아니지만은, 오랜만에 b 얼굴을 보면서 수다를 떠니 너무 행복했다.

내내 손꼽아 기다리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의 저녁모임.

mj는 지난번 스시에 이어 이번에도 우리에게 밥을 샀다.

가기 전 이렇게나 융숭하게 대접하는 mj 성정을 알기 때문에 사실 더 보내기가 싫었다.

넌 왜 나랑 동기가 아닌거야?

늘 그렇듯 즐거운 식사시간은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지나가고, 즐거웠던 순간의 끝은 빨리 찾아온다.

사실 식사하는 동안, 머릿 속을 헤집어 놓는 상념 때문에 초반에는 거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불안하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도, 그걸 해결할 수 없다면 잊고 사는 것이 답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화가 났다. 정말이지 아주 많이.


만약 이 타이밍에 이렇게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서, 이런 수다를 떨지 않았다면 동굴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의 불안에 빠져버렸을 것이다.

나올 방법도 없고, 내가 만들어낸 동굴에.

이야기는 이야기로 잊는다고 함께 맞은 저녁에는 불안의 손도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불어수업을 빠졌다.

또 다시, 돌아와서 일했다.

밥 먹고 돌아와 기록을 읽으면서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집에 돌아가 잠이나 잘걸 그랬나보다 싶다.

주중의 끝자락에는 부장님들과 나가면서 길가에 핀 꽃도 구경하고 향기도 맡고 그랬다. 답답함을 이기고 돌아와 b와 수다도 떨고, 휘낭시에도 먹으면서.


부장님께서는 어떤 꽃은 언제 피고, 어디에 예쁘게 핀다고 알려주시면서 출근길 요즘 라일락이 피어 있다며 올 때 냄새 맡으면 그렇게 좋다고 하셨다.

그런 낭만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낭만을 잡고 있기에는 손바닥 위에 올려둔 것들이 너무 많아, 잡은 것들을 놓지 않으려 잔뜩 손을 오므린 지금이 서글펐다.

그렇게 도착한 서울역.

p는 어김없이 오늘도, 나를 데리러 왔다.

너무 지친 것도 있고, 역 안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이동하는 것에도 진이 빠져 있었다.

그 때 저 멀리 누군가가 든 해바라기를 봤다.

그 해바라기의 끝에는 p가 있었다.

보자마자 울컥하긴 했는데, 티내지 않고 고개만 숙인채 천천히 플랫폼을 걸었다.

힘들다고 티내기 싫기도 했지만, 힘들다는 말이 입술사이로 빠져나가버리면 정말 현실이 될 것만 같아 말하기 싫었다.

그래서 잘 지냈냐고, 서울은 많이 따뜻해졌다는 이야기만 나눴다.

p네 집 앞에는 오래된 김치찌개 집이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금요일 저녁에 서울을 온다는 것은 함께 그 집에 둘러앉아 김치찌개를 먹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업을 안한다질 뭔가.

서운한 마음에 뭐라도 먹자 싶어 고른 고깃집인데, 우리만 모르고 남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곳이었던 듯 싶다.

p네 집 코 앞에 이런 먹자골목이 있다는 것도, 사람이 이렇게나 발 디딜 틈 없이 오는 곳이라는 것도 2년 동안 전혀 알지 못했네.

모든 것은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지만, 오늘은 이 골목을 발견하기 위한 하루였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꺼리는 우리는 금새 카페로 도망쳤지 또.

이제는 참새와 방앗간 중에서 방앗간 정도는 되는 섬광에 들렀다.

사방은 어둠인데, 유일하게 새어나오는 빛을 따라 4층까지 올라가다 보면 카페를 찾을 수 있다.

들어가니 사람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


p는 테이크아웃해서 집으로 가자고 하더니, 어느새 바 자리에 앉아 마시고 가자고 한다.

나도 싫지 않은 듯 앉아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이 움직이는 걸 신기한 듯 쳐다보며 놀았다.

돌아가는 길, 주말이 와서 너무 좋다고 뛰어다니는 p를 카메라로 남겼다.

나는 주말이 와서 너무 좋아, 그리고 주말이 좋은 이유는 너를 만나기 때문이야라고 입 밖으로 소리 내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유교사상이 뼛속 깊이 새겨진 tk 여성에게 그런 행위는 빤하게 남사스러운 행위이거나, 김은숙 작가 드라마에나 나오는 환상의 단어 같은 것이다.

그러나 충청도 출신은 뭔가 다른걸 먹고 자랐는지 그런 말을 뻔뻔하게도 잘한다.

니가 오니 살 것 같다고,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며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p에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p네 둘째 누님 결혼식에 들렀다.

사실상 며느리인데 며느리가 아닌, 그런 애매한 입지에 있는 사람으로서 어색할 줄 알았지만 그저 신기했다.

아직 어떤 사람인지조차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과 가족사진을 찍는 상황을 맞닥뜨리니, 내가 정말로 p네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만큼이나 시댁 식구들도 나를 어색해 할 것이다. 사람 사는거 다 똑같아...어느 날 갑자기 목소리 크고 자기주장 강한 인간 하나가 자신들의 세계에 막 들어와서, 사랑하는 아들과 동생을 데리고 가겠다고 하는데 얼마나 황당하겠어?

당연함. 낯 가려서 서로 눈도 잘 못마주침. 깔깔깔깔.

그렇지. 짜증을 안부리면 내가 아니지.

나는 구두를 신고 너무 오래 걸었다며, 마치고 왜 여의도를 가자고 했냐며 실컷 행패를 부리곤 12,600원이나 주고 택시를 타 결국 p네 집으로 돌아왔다.

고무적인 것은, 짜증을 내는 내내 네 잘못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네 잘못이 아닌 것은 알지만, 여의도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지금 내 발은 너무 아파.'

너무 고무적이야. 나 성숙해지고 있나봐. 반박은 안받는다.


그리고 들린 아소르 커피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남아 있던 짜증의 기분을 찌꺼기 째 흘려보냈다.


오늘 같은 날씨에 화가 나면, 그저 나만 손해일 뿐이다.

p가 고른 삼청동 산책의 날.

너무 지쳐 집에서 쉬고만 싶었는데, 그러면 오늘이 다 가버릴 것 같고 주말은 짧다며 굳이 삼청동에 들르자고 한다.

모든 것이 귀찮던 나는 삼청동에 볼 것이 뭐 있냐며 툴툴거리면서 p를 따라 나섰다.


삼청동, 너무 좋네?

아 좋다 좋아~ 언제 짜증났죠? 다 까먹었어요.

삼청동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밥부터 먹어야 한다고 우겼다.

메뉴도 내 맘대로 고를거라며 들어간 식당에서,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 3위 안에는 들어갈 것 같은 고등어김치찜에 계란말이 조합을 즐기며, 테라를 마셨다.

내가 생각해도 내 메뉴선정은 정말 탁월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역시 10년간 공부만 한 나(아님), 정말 똑똑하기는 해.

깔깔깔깔.

삼청동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다는 전설의 그 곳, 블루보틀에 들렀다.

사실 오설록에서 녹차 아이스크림을 거나하게 먹어보려고 했는데, 오설록 카페의 그 삐걱거리는 테이블을 견딜 수가 없어서 간 곳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압사당할 각오를 하고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있었습니다.

무엇이요? 1층에 자리가요.

바람은 솔솔 가게 안으로 불어와 내 머리를 흩뿌리고 가지, p는 옆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밖을 쳐다보고 있지 이보다 더 좋은 순간이 또 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말 없이 거의 1시간을 앉아 있었다.

자리를 잡고 있던 한낮도 순순히 저녁이 되었고 말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주변은 언제나 예쁘다.

왜 예쁜지, 왜 이 곳에만 오면 이렇게나 기분이 좋은지에 대해 고찰해보면, 왼쪽으론 미술관이 오른쪽으로는 돌담길이 보여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돌담길을 따라 걸어도 좋고, 미술관 쪽을 따라 걸어도 좋으니까.

곧 부처님이 오시나 보다. 화려한 등의 색깔마저 밤을 수놓는다.

p와 삼청동에 과장 없이 한 50번은 온 것 같은데, 처음 가보는 골목을 찾았다.

p로 말할 것 같으면, 안 가본 길은 무조건 들어가야 하고 신기한 골목길이 있으면 돌아서라도 지나쳐야 하는 이 시대의 골목길 찬양론자다.

물론 그 덕분에 나도 가로등만 밝힌 길을, 오래 걸어보는 호사를 누린다.

삼청동의 저녁. 멀리서부터 버스킹 소리가 들려오면 안국역 1번 출구를 제대로 찾은 것이다.

루프 스테이션을 이용한 캐논 연주에 사람들은 구름같이 모여들고, 바람도 너무 상쾌하게 불어 p와 행복하게 순간을 즐겼다.

물론 p는 작품세계 형성에 여념이 없으시긴 했지만.

남들 눈엔 어떨지 몰라도, 내 눈에는 정말로 마음에 드는 찍사다.

그리고 몇 달을 기다린 프렌치 레스토랑, chez simon에 왔다.

쉐시몽을 올 생각은 전혀 못하고 있었는데, hs언니로부터 우연히 기회를 얻게 됐다.

어느 날 일에 찌들었을 때 즈음, 혹시 쉐시몽에 갈 생각이 있냐며, 주말 점심 예약을 양도해주겠다고 하던 언니의 연락에 답장을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도 하기 싫다.

왜냐? 너무 맛있었기 때문에.

다 맛있었다. 특히 앙트레로 나온 민어가...

큰 덩어리로 구워 집에 냉동해놓고 먹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망원동 탐방.

아니 시장이 있었나요?

왜 몰랐죠?

또 시작됐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마음에 드는 장소를 보면, 여기서 살자며 호들갑을 떤다.

무려 망원동에는 시장도 있다며 흥분한 채로.

반찬가게에 튀김집, 야채가게까지 아! 정말로 망원동 근처에 취직하고 싶다.

현실은 그 근처에 내가 갈 회사 코빼기도 없겠지.

그럼 뭐 어때? 꿈은 꾸는 자의 것이다.

p와 망원동 어드메에서 빠르게 커피를 마신 후, 평소보다 서둘러 서울을 떠났다.


일이 너무 많고, 하기도 싫고, 해도 해도 줄어들지를 않는다며 징징댈 바에야 얼른 돌아가서 출근하겠다는 마음을 내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정되어 있던 기차표를 우여곡절 끝에 당기기를 여러 번, 겨우 앉은 역방향 좌석이 무너져 있었다는 것을 열차에 타고서야 알았다.

가뜩이나 돌아가기도 싫은데, 좌석까지 고장나니 그냥 서울에 더 있으라는 신의 계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짜증이 치밀었다.

그 와중에 사방에서 아이들은 울지, 부모들은 애들을 달래지도 않지 날은 덥지.


맞다. 모든 것은 기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애들이 원래 울지, 부모들은 원래 애들 달래도 달래도 다 못 달래는 거지. 애들이 시끄러우니까 애들이지. 평소같았으면 애들에게는 그 어떤 누구에게 주는 것 보다 관대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며 헤드폰 볼륨부터 높였을텐데, 내 기분이 그러니 괜히 심술이 났다.


그래서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생각 음소거를 했다.

20분 쯤 지났나. 마음을 가라앉히니 헤드폰을 벗어도 아이들의 소리가 크게 노엽지가 않았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된다. 오늘도 다짐한다.

귀(회사)길, 하늘은 속절없이 예뻤다.

나는 결국 회사를 갔다.

그리고 역 근처 백화점에서 산 여름용 매트리스 커버를 보며 금새 행복해진 채로 기절했다.

아! 월요일이구나.

직급별 식사의 월요일이 왔다.

오늘은 기필코 맛있는 것을 먹겠다며 일찍부터 택시를 잡아놓고 점심시간에 맞춰 돌아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더랬다.

b와 y언니와 먹는 몬도카츠, 두 배로 행복했다.

refreshment에 앉아 갓 내린 아메리카노도 마시고 말이지.

그래, 월요일도 점심만 지나면 버틸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s양이 이 도시를 찾았다.

결혼을 한다며, 늦기 전에 말해주겠다며 너스레를 떨던 그녀는 굳이 내가 사는 곳에 기차를 타고 와 청첩장을 주고 밥을 샀다.

역지사지로 내가 그녀였다면, 이 먼 곳까지 와서 청첩장을 줬을까? 심지어 소중한 연차중에?

그걸 생각하니 해준 것도 없는데 큰 마음을 보답받는 기분이었다.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하나도 위화감이 없는 그녀를 보면서, 나도 용기내 머릿 속에 있던 복잡한 생각을 많이 털어낼 수 있었다.

대학원 시절부터 늘 강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녀의 강함은 단순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고.

무엇이든 더 가지고, 더 높이 올라가고 싶어하는 나와는 달리, 크게 툴툴대지도 않고 웃으며 천천히 자신만의 것을 이루는 그녀를 보면서 참 강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결혼을 축하한다고,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아 참 기쁘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분이 이상했다.

언제 취직하냐며, 열람실에서 학교 건물에서 졸업이 오기는 하는건지 묻던 그녀가 결혼을 하다니.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 서울에 가지도 않았는데, 너는 이렇게 빠르게 어른이 되는구나.

그러곤 돌아와 뭐 했겠나.

쌓인 기록 보며 한숨 한 번 쉬고, 일 한번 하고, 휴대폰 한번 하다가 집에 가서 잤다.

아 이번 기록...정말 보면 볼수록 알쏭달쏭하다. 별나라 이야기같아. 어떡하면 좋지?

어김 없이 지나가는 화요일 점심.


사무실에 돌아오니 b가 선물이라며 두고간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오늘도 목 끝까지 차오른 무기력함을 가라앉힌다.

그래, 기록은 더욱 꼼꼼하게 보고 글을 두 배로 열심히 쓰자.

아니? 1인분만이라도 제대로 된 인생을 살자.


퇴근길, 악동뮤지션의 음악을 듣는다.

눈 딱감고 낙하, 하, 믿어 날 눈 딱 감고 낙하, 하, 하.


힘들고 무기력한 채로, 짜증나고 지친 채로 살고 싶지 않다.

이렇게 살면 큰일날 것 같다고 겁 먹고 싶지도 않고.


낙하하는 마음으로 저녁을 보낸다.

오늘도 그저 내게 주어진 오늘의 일을 할 뿐이다.

그렇게 눈 딱 감고 낙하해보면, 낭떠러지 같은 것은 없다는 걸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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