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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서퍼 May 18. 2022

이런 제기랄, 너무 힘들잖아?

빡세다 빡세. 대한민국에서 30살로 살아남기 쉽지 않다.

위이이이잉.

이것은 대한민국의 어느 도시에 살고 있는 한 30대 여성의 정신머리가 갈리는 소리이다.


위이이이이잉.

끽!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냐 하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3주 전 새로운 부서로의 발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녕하세요. 저는 XXX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한번 한 해 잘해봅시다."

"네, 열심히 잘 해보겠습니다!"


하.

잘 할 수 있을줄 알았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오늘도, 해가 어스름히 뜨는 아침에 출근을 해 칠흑같은 어둠 속, 가로등불만이 비추는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향하고 있다.


벌써 근 3주째다.

집에 오면 자고, 일어나면 회사에 온다.

일은 많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도 조심스러운데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회의감까지 겹쳐 매사에 신중해진다.

전임자들은 도대체 이 업무량을 어떻게 떡하니 감당했는지, 이 부서를 거쳐간 사람들의 손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당신들 뭐야?

하지만 막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 그녀에게 그런 것을 묻기 위해 연락하고 싶지 않고,

오랜만의 연락 속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말만 하다가 끊고 싶지는 않기에

부러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힘들다고 하면 잘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다는 내 믿음 아래 겨우 눌러둔 고통들이 마음의 둑을 부수고 해일처럼 밀려올 것 같아

입 밖으로 힘들다는 말을 내뱉고 싶지 않았다.


별 수 있겠는가.

이 사무실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도 나고, 가장 늦게 출근하는 사람도 내가 되어야 할 뿐이다.

일이 손에 익지 않아 그런 것이니

결국 다 내가 부족한 탓 아니겠는가.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다며,

sm언니에게 당장 나오라고 sos를 날렸다.

어린이날이니 나를 만나줘야 한다면서, 내 생일때에도 나를 안만났으니 오늘은 나를 보러 오라고 어깃장을 부렸다.


sm언니는 오겠다며, 대신 엄마 차를 몰고 올건데 혹시 생명보험은 들었냐고 묻는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언니가 차를 몰고 오는데 내가 왜 생명보험을 들어?"

"응, 언니가 너 오늘 집에 데려다줄거거든. 근데 그 와중에 니가 죽을수도 있으니까, 미리 p랑 부모님께 전화드리렴."


그런 언니의 전화를 받으며 이번주에 거의 처음으로 웃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웃기는 소리 하지마.

회사에서 나의 영혼까지 건져올려 일을 시킬테니 말이야.

난 죽을래도 그럴 수가 없다.


언니를 만나기로 하고 홀로 찾은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아주 오랜만에 글을 썼다.

너무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던 것만 같이 느껴지고, 상쾌한 집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 이렇게 글 쓰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글 쓰는 것이 직업이라, 활자에 질려있다고만 생각했는데.


글을 거의 마무리할 때 즈음이 되니, sm언니가 거의 다 도착했다며 밥 먹으러 나가자고 한다.

카페 근처 급하게 찾은 식당,

1인 쉐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라는데 생각보다 정말로 맛있었다.


급하게 찾은 맛집, 인스타그램에서 맛있다고 한 맛집들을 믿지는 않는 편인데

하나같이 감칠맛도 좋고 깊은 맛도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했다.


물론 이번에도, 언니에게 내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내 기분이 어떤지 말하지 않았다.


언니는 나에게 어떻냐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보라고 하지만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말하기 싫어서도 있지만, 말할 수 없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시작해야될까?

어디서부터 설명해서 무엇을 말해야 그녀의 마음에 짐을 주지 않으면서도 지금의 내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그냥 이러이러해. 난 괜찮아. 잘 지내고 있어.


아마 언니는 내가 괜찮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 준 것일테지.


하지만 두 번 묻지 않는 언니가 오히려 고마웠다.

배 터지게 저녁을 먹었다.

정말 너무 많이 먹어서, 나중에는 언니가 소화제라도 사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진지하게 물을 정도였다.


날씨가 좋은 어린이날, 우리는 밤거리를 걷는 어른이 되자는 마음으로 소화제 대신 밤거리 산책을 택했다.


번화가에는 코로나가 정말 끝이라도 난 것마냥 사람이 많다.


사람이 너무 많아 언니의 손을 놓지 않으려면 팔짱을 끼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어야 할 정도였다.

언니는 괜찮다며, 자기 손을 잡고 걸으면 된다고 한다.


우리는 아무런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이 가게 저 가게를 두리번거렸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열심히 바람을 넣어 언니가 예쁜 색깔의 셔츠도 한 장 샀다.


너무 튀는 색이라고 싫어할 것만 같았는데, 그녀는 답게 훌륭하게 소화하고는 살 거라고 한다.


나도 질 수 없어, 온갖 특이한 옷들과 모자를 입고 쓰고는 사고 싶다고 옆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곤 안사안사병 걸린 사람으로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올 수 있었는데, 마지막 언니가 선글라스를 옷가게에 두고 오는 바람에 가지러 갔다가 결국 옷을 한 벌 사서 돌아왔다.


언니는, 내가 자신 때문에 옷을 산 것만 같다며 내게 연신 미안해했다.


원래 사려고 했는데, 언니 왜 저러지?

그렇다.

결국 죽지 않았다.

언니는 생각보다 운전에 능숙했고, 나는 언니의 차를 타고 밤거리를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왠지 사무실로 돌아가 일을 더 해야만 할 것 같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어린이날에 출근한다고 어른들이 알아줄까?

아니다.


우리 엄마 아빠만 슬퍼할 뿐이다.

나도 사람답게 달을 바라보며 집에 가서 자야겠다고 돌아가버렸다.

금요일, p가 내려왔다.

p를 데리러 KTX역에 갈 수 있을줄 알았던 생각이 무색하게,

p와 저녁을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을만큼 금요일 밤도 버거웠다.


당장 오늘까지 이걸 해두지 않으면, 폭풍처럼 밀린 일들을 처리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떡하지?

결국 p에게 데리러 가지 못할 것 같다며, 저녁에 식당에서 보자는 말을 남겼다.


고요한 사무실,

ygu언니에게 메신저가 왔다.


"너 정말 우리 층의 유령이 된거니?"

"응, 언니는 뭐해?"

"언니도 망했다. 언니도 집에 못 가."


같은 층 유령이 된 언니 방을 찾아가 하소연을 듣다가 생각한다.

언니는 힘들다 하면서도 이렇게나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징징거리는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해내야 하는 것을.

언니에게 힘내라며, 지금 포기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 사실은 그 말이 나를 향한 말임을 느낀다.


포기해도 소용 없지.

일단 술이나 마시러 가자.

p가 알아낸 선술집.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소인지 자리가 나질 않는다.

그 앞에 서서 한 참을 기다려도 자리가 나오질 않는데, p는 오래 기다린 내게 미안해서인지 자꾸만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한다.


나는 멀리서 내려온 그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눈치를 보게 하나 싶어 미안해지고,

기다려도 된다며 괜찮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행복하게 해후를 나눴으면 좋았건만.


또 다시 예민해진 내가 토로한 힘듦에 제대로 된 공감을 해주지 않는 것 같다며 p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지난주에도 화를 냈던 것 같은데, 지난주에도 후회를 했던 것 같은데, 이번주에도 마찬가지다.


p는 이번에도 역시나, 너무나 굳건하게 나를 달랜다."내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럴 의도 아니야. 너가 힘들다고 하니까 들어주고 있었어. 나는 니가 들어주기만 해도 덜어지더라."


그는 만취한 상태의 내가 먹고 싶다는 음식메뉴를 다 시켜주고, 결국 나를 달래고서는 다 괜찮아질거라고 한다.


응, 나 열심히 할게.

우리 이 밥도 사먹고, 술도 사먹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오랜만에 만취한 상태로 노래방을 가서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어찌나 시간이 빠르게 가는지, 다 부르고 나니 새벽이 될 만큼.

아침으로 비빔국수를 시켜먹고, 향한 곳은 또 다시 그제의 그 번화가다.

sm언니와 번화가를 걷던 밤이, 그 번화가에서 먹었던 밥이 너무 좋았고 또 맛있었어서,

그 기분을 그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똑같은 장소로 가 옷 구경을 하고,

똑같은 식당으로 향해 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알겠다고 하면서 온갖 곳을 나와 함께 돌아다니고,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사람이 곱절은 많아진 거리를 요리조리 걸어다녔다.


물론 같은 식당에서 밥도 먹고 말이다.

아 두 번 연속으로 먹고 나니 딱 지겨워진다.

그래, 충분했다.

밥은 익숙한 곳에서 먹었으니, 카페는 새로운 곳으로 가겠다며 찾은 곳.

카스테라는 맛있고,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이 곳에 앉아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낄낄댔다.

이 밤이 끝나지 않기를, 그리고 이 한가한 카페가 망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제 가는거야?

아, 니가 안갔으면 좋겠다 오늘은 정말로."


평소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힘든지 잘 말하지 않는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 그의 발걸음이 무거운 것 같다.

결국 그가 돌아가야 함을, 나 역시 출근해야 함을 알면서도 가지 말라고 조금 더 지금을 보내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푸념에는 끝이 없고, 해결책이 없는 푸념은 사람을 지치게만 만들 뿐임을 이제는 안다.


나는 부러 그런 이야기를 더 하지 않고서, 어제 밤처럼 카페에 앉아 드라마를 봤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p의 취향에 맞게, 안나라수마나라라는 드라마를 보는데,

삶이 힘들때마다 판타지소설을 읽는다는 사람들의 말에 공감하게 됐다.


지금의 내가 힘드니, 마법과 마술의 이야기가 너무 가깝게 다가오더라.


마법처럼, 내년으로 시간을 뛰어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가야 하고,

저녁은 먹이고 보내야 하고,

무언가 대단한 식당을 가기는 싫었던 우리는 한 햄버거집에서 정신없이 저녁을 먹고 그렇게 주말을 끝냈다.


그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일요일, 회사로 돌아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이번주는 뒷맛이 쓰다.

다음 주는 잠 좀 자고 싶네 정말로.


3주가 지난 지금에서야 이 일기를 마무리한다.

나는 그 이후에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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