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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갓 된 엄마

하마와 혁명

논픽션 단편 소설이길 꿈꾸다 픽션 에세이가 될 뻔한 이야기

by 빛율

하마씨는 늘 통잠을 못 잤다. TV를 내내 틀어놓고는 보다 자다 하며 노루잠만 잤다. 하마씨는 형님 동생 한다던 친척이 하는 작은 의원에다 자기 건강을 맡겨놓곤 했다. 그러다 거기서 무릎에 찬 물을 빼고 나서 며칠 후 화농성 관절염으로 무릎이 풍선처럼 부풀어 급히 입원을 했다.


“하마씨, 별일 없어요?”

“큰일 났다. 다리를 못 움직이겠다.”


하마씨는 평생 관절염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냥 그렇게 아프신 거겠거니 했다. 3년 전이었던가. 짐을 싣다 미끄러져 다리를 다쳐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무릎 연골이 아예 없다고 했다. 그래도 하마씨는 인공 관절 수술을 미루고 버텼다. 가까운 친지 두 분이 수술 후 못 움직이시다 세상을 뜨셨기 때문이다. 66세의 나이에도 밤낮없이 일하며 아득바득 가장노릇을 하는 겨자씨의 잔소리에 수술의 ‘수’ 자를 꺼내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무릎에 맞는 필러와 같다는 스테로이드성 주사를 맞으며 견디던 하마씨. 그런 하마씨의 고통을 걱정하고 듣지도 않는 잔소리를 하다 지친 가족들은 사실상 하마씨의 고통을 방치했다. 그리고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


하마씨가 못 걷는다.


사무실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놀러 갈 때 붙인 키미테 후유증으로 이삼일 급성 치매가 다녀간 하마씨. 이후로 먹고 있던 고지혈증 약, 전립선약, 혈전예방약, 혈압약에 치매예방약 알셉트도 더해졌다. 하마씨가 연명하기 위해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의 개수로 보아 간이 얼마나 고될지 알만하다.


서울 사는 딸은 마음으로 이미 큰 병원을 오갔으나 실제로 하마씨는 비번이던 형부의 도움으로 평소 가던 작은 병원 한 군데를 들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엄마와 버스를 두어 번 갈아타고 내가 GPT에 물어 보내준 데서 한 군데를 골라 다시 병원에 갔고 긴급 입원 후 다음 날 수술을 했다.


“처음부터 큰 병원에를 갔어야지! 진통제만 처방해 주는 그런 델 왜 가요? 하여튼!! 왜 평생 갔던 데만 가느냐고요. 좋은 병원 정보가 널렸는데! 그놈의 정!!!!!!! 정 씨가 문제야.”


나는 진짜로 하마씨에게 늘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인터넷 세대부터 영합하지 못하고 스마트폰, AI세대에도 여전히 TV로만 모든 정보를 얻고 있는 하마씨와 겨자씨. 우리는 서울, 부산만큼의 물리적 거리보다 더한 체감 50여 년 정도의 세대 갈등을 겪고 있었다.


화농성 관절염은 관절 주위의 조직에 염증이 생기고, 그 염증이 화농으로 진행되는 질환입니다. 이 질환은 관절을 감싸고 있는 관절낭에 세균이 침입하여 감염이 생기면 발생합니다. 화농성 관절염은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으며,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영구적인 관절 손상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화농성 관절염의 주요 증상은 관절 부위의 통증, 붓기, 열감, 그리고 움직임 제한입니다. 환자는 통증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의 활동이 제한되며, 관절 부위의 붓기와 열감은 감염의 진행을 나타냅니다. 또한, 화농성 관절염은 발열과 피로감과 같은 일반적인 감염 증상도 동반할 수 있습니다.

화농성 관절염의 주요 원인은 세균 감염입니다. 세균은 다양한 경로로 관절에 침입할 수 있으며, 상처, 외상, 혈류 감염, 혹은 다른 감염 부위로부터 전이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인공 관절이나 관절 주위의 인공 재료를 사용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감염의 위험이 더 높아집니다. 또한,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이나 만성 질환을 가진 사람들도 감염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화농성 관절염의 진단은 의사의 신체검사와 검사 결과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의사는 환자의 증상과 진료 소견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며, 관절 주위의 염증 부위를 확인하기 위해 초음파나 MRI 등의 영상 검사를 시행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관절 주위의 액체를 추출하여 세균을 분리하고 감염의 정도를 확인하는 관절액 검사도 중요한 진단 도구입니다.

화농성 관절염의 치료는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항생제 치료와 관절 주위의 액체를 배수하는 시술이 필요합니다. 항생제는 감염의 원인 세균에 따라 선택되며, 치료 기간은 일반적으로 4주 이상 지속됩니다. 또한, 환자의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진통제나 소염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만약 감염이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킬 경우,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화농성 관절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감염의 위험이 있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처를 예방하고, 수술 전후에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하는 것은 감염의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면역력을 강화하기 위해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고, 예방접종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화농성 관절염은 심각한 질환으로,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증상이 나타날 경우, 즉시 의사를 찾아야 하며,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또한, 예방에도 신경을 써야 하며, 위험 요소를 피하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영구적인 손상’, ‘심각한 질환’.

GPT와 유튜브, 네이버의 친절함에 내 일상이 멈췄다.


“옆으로 돌아가시고. 돌아가신 채로 호흡 하나, 둘, 셋...”


돌아가시긴 어딜!!! 필라테스 수업을 받는 내내 강사님의 말이 거슬려 집중이 안되며 두통이 지속되던 어느 날, 나 홀로 부산행을 감행했다. 아이를 낳고 홀로 기차를 탄 것은 처음이었다.


“괜찮을 거다. 다들 수술 잘하고 걸어 다니신다. 네가 와봐야 별 도움 안된다. 하마씨는 겨자씨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네 식구들이나 챙기거라.”


나는 시엄마의 말을 흘렸다. 아들과 손주 걱정이 되시겠지만 제겐 하마씨가 가장 중요하거든요... 딸이 아빠 보러 간다는데 누구 허락이 필요한가요? 누가 날 막아?


수술 후 무릎에 피주머니를 차고 수액과 함께 항생제 3개를 매일 맞고 있는 하마씨. 마을버스 2개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왕복 2시간, 2시간의 면회 시간까지 하루 4시간을 간병에 쏟고 나면 기진맥진한 66세의 일용직 근로자인 겨자씨. 집 안 스위치 하나 혼자 고칠 방법을 모르고, 스마트폰 사용법도 모르면서 쓰고 있는 겨자씨가 하마씨를 돌보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았다.


서로 만나면 걱정만, 내놓는 말들은 서운하기만 한 우리 가족. 우리는 어쩌다 이리되었나. 우리 가족의 사랑의 방식은 서로를 염려하느라 서로를 믿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주었고, 서로 간의 대화를 단절시켰다.

딸내미가 멀리 떠나 살기로, 부산이 아닌 곳으로 임용을 보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하마씨는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20여 년간 지극하던 사랑을 거두었다. 말하자면 단단히 삐져있다. 우리 딸도 언니의 첫 손주처럼 사랑을 받고 크길 바라지만 너는 멀리 있잖아- 하며 가끔 찾아가도 손녀딸 그리 예뻐하지 않고 데면데면하신다. 그게 서운해도 별 수 없다. 이미 내놓은 자식이다.


휴직이 딱 반년 남았다. 이때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 살아보지 또 언제 살아보누? 늘 일하시는 친정 부모님 댁은 아이를 키울 환경이 전혀 못되었고, 남편의 부모님 댁은 눈칫밥에 남편 없이 여러 날 묵기 어렵다. 어디 레지던스라도 알아볼까? 하루 5만 원의 숙박비는 청약 이자를 갚느라 적금은커녕 마이너스 통장을 쓸 판인 자금 사정에 어불성설. 마음만 앞섰다. 마음은 이미 부산 한 달 살기를 시작했다. 곧 7월이다. 끔찍했던 수족구가 어린이집에 돌 시기이고, 아이는 감기를 다시 시작했으며. 동전 습진이 심해지고 있다. 단유 전이라 하루 이상 아이와 떨어져 있으면 숨이 안 쉬어질 만큼 젖이 차올라 유선염이 쉬이 와서 안된다. 주 1회씩 부산을 오가는 것과 매일 통근표를 50퍼센트 할인된 가격으로 사서 오가는 것을 생각해도 마뜩잖다.

이틀 내려가있는 사이, 엄마집 화장실과 화장대를 청소했다. 몇 년만의 청소였을까 화장대는..


지겹다. 가난한 일용 노동자인 하마씨와 겨자씨의 팍팍한 삶에 TV를 함께 보는 것 말고 여가를 함께 즐기기가 어려웠다. 여행과 같은 자식들의 효도 방식은 늘 그들을 불편하게 했다.


나는 하마씨와 단둘이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엄마가 되고는 더욱 사무치게 그리웠다. 젊고 건강한 하마씨와 겨자씨가 사진 속에서 걸어 나올 것처럼 선명한데.


지금 하마씨의 흐린 눈동자를 보면 참을 수 없이 슬퍼진다. 큰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그 흐렸던 눈을 기억한다. 하마씨가 그 눈을 닮아가는 것이 싫다. 혈전을 예방한답시고 먹는 아스피린 때문에 닿는 족족 온몸에 피멍이 드는 것도 속이 상한다.


건강과 관절염에 대해 공부하고 함께 면역력을 키우고 자주 웃고 스킨십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 딱 한 달 만이라도. 평생 약속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외면했던 하마씨의 나 홀로 저녁 식사를 한동안 함께 하는 것은 병을 주고 약 주는 시늉하는 것만큼 약 올리는 일이 될까?


죽음에 대해, 장례에 대해, 돈에 대해, 노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겨자씨 식당 사장 딸 얘기 말고, 횟집 사장 얘기 말고, 제발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혼자 내려가서 아이를 시간제 보육 맡겨놓고 우아하게 탐탁잖아하는 하마씨 옆에서 책을 읽어드리고 싶다. 노래도 불러드리고, 마사지도 해드리고, 손잡고 춤도 추고 싶다. 그렇게 빠른 회복을 돕고 싶다. 그런데 꿈에서 남편을 돌보는 의무를 망각하지 말라고 나를 나무란다. 젠장!


정신없는 언니와 하마씨의 집이 오히려 우리 집보다 정갈하다. 언제 떠나도 누가 와도 버리고 정리하기 쉬운 상태로 내 집을 만들고 나면, 떠나겠다. 얼마가 걸릴까? 7월까지 5일. 시간이 없다.


하마씨를 1인실 병동으로 옮겼다. 화장실 가는 것 말고는 도움도 제대로 못 받고 정해진 시간에만 면회하며 보호자 앉을 데도 없는 통합 간호 병동에서 하마씨를 빼냈다. 글 쓰고 노래 짓는 취미이자 숙원 사업을 병실 간병을 핑계 삼아 몰입한다. 우리 딸을 위한 노래 주제도 몇 개 메모해 뒀다. ‘딸기 맛이야’, ‘거울치료(골고루 먹어야 쑥쑥 크지)’, ‘엄마 착해’, ‘엄마 그만해’, ‘엄마 맘마’.. 어릴 적처럼 하마씨와 보내는 시간이 끝도 없는 외로움을 삭였다.


‘7세 미만 아동 병동 출입 금지’


왜인지 따져 묻고 싶지만 1인실이니 그냥 들인다.

의료 과실에 분노하려 했던 나의 에너지를 하마씨와의 평화로운 시간에 온전히 쏟는다. 가까이 살지만 맞벌이하며 아이 셋을 키우는 언니 형부네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내려놓는다. 그들의 마음껏 하도록 둔다.


“우리가 듣는 모든 것은 의견이지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관점이지 진실이 아니다.”

-<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 중에서


하마씨의 관절에 갑작스레 침입한 세균에게. 너를 잡아 단죄한들 너를 이겨내지 못한 하마씨의 면역력과 그를 돌보지 못한 우리를 탓하기로 해. 너로 인해 우리 가족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어. 차마 고맙다고 말할 순 없지만. 다신 얼씬도 못할 만큼 우리 가족 강해질 거야. 두고 봐.

*최연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그 개와 결함’, 예소연 작가님의 소설 인트로를 대놓고 차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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