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율 Feb 06. 2024

완전히 잘 못 살았다고 생각했다

청약당첨, 그 이후

짧은 생애 두어 번 그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아, 내가 완전히 잘못 살았구나.'


열다섯에 괴롭힘을 받았던 때 처음 그랬고, 친구 말린다고 다단계에 따라갔을 때 그랬고, 스물넷 임용고시 재수를 할 때 그랬고, 첫 6학년 담임을 했다가 학교폭력에 호되게 시달렸을 때 그랬으며, 결혼식을 할 때도 그랬다. 그리고 이번이 여섯 번째쯤 되나 보다. 그런데 이번엔 좀 세다. 그래 그 순간에는 완전히 삶의 방향을 뒤틀 만큼의 격동이 있었다. 삶에 대한 태도나 철학을 완전히 갈아엎고 싶은 순간들. 주로 '관계'에서 그랬고, '경제적인 이유'에서 그랬다.


꿈에 그리던 청약에 당첨됐다. 신랑이 문자를 보내줬을 때, 하루는 꿈꾸는 것 같았다. 그리고 2주간 엄청난 답 없는 고민의 시간들을 보냈다.


'이 아파트게임에 참가하시겠습니까?'


참가자들이 O, X를 누르는 기간, 계. 약. 기. 간.


금리 인상과 주택값 하락, 3기 신도시 공급 계획 발표, 대선 한 달여 전. 극도로 불확실한 시기에 어떤 결정을 해도 예측이 어려울 변수들이 많았고, 어떤 결정도 완전히 좋기만 하지 않았다. 3년 7개월간 빌릴 돈과 갚을 이자의 액수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0'의 개수에 무뎌질 때쯤엔 우리가 그간 벌어야 하는 돈과 줄어드는 용돈, 팍팍해지는 삶이 현실로 다가왔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델 여행 가고, 좋은 걸 사고 입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욕구가 일시적으로 사라졌다. 얼마나 갈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어린 왕자'와 '빨강머리 앤'을 읽은 게 잘못이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을 어린이날 특선 영화로 방영한 방송국이나 내가 사랑한 이야기들을 쓴 작가들을 원망할 수는 없었다. '어린 왕자'처럼 셈만 하는 어른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과 노력이 있었고,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준 '카르페디엠'의 메시지를 실천하며 살고자 했다. 나는 매 순간이 후회 없도록 즐기며 최선을 다해 삶을 모험했고, 사랑했다. 나는 내 삶의 철학들-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 친절과 성실의 가치들을 지키며 살고자 애써왔다. 꿈꾸지 않았어야 하는 삶이었을까. 돈 안되고 돈 쓰는 삶을 살고 있었다. 실속 없다고 평가되는 삶. 셈을 안 하려다 보니 못했다. 중요한 경제적 판단이 필요한 순간들에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멍해지고 압도당했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될까?


금슬 좋은 부모님이 유일하게 싸우시는 주제는 언제나 '돈'이었다. 악착같이 벌어서 아껴서 모으는 게 다인 부모님으로부터 나는 소비에 대한 죄책감과 무조건 저축하며 사는 삶의 태도를 배웠다. 그에 비해 내가 추구한 삶의 태도과 나의 꿈은 내가 그런 태도를 지속하기 어렵게 했다. 나는 아예 펑펑 쓰기 시작했다. 돈을 버는 대로 계획 없이 나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했다. 외모든 자기 계발이든 건강이든. 그렇게 엄청난 돈덩어리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지금의 나, 얼마나 가치 있는가? 그 돈으로 지금의 세상이 말하는 부동산이나 주식, 돈공부를 해서 돈이 돈을 벌어들이도록 했다면 나는 지금쯤 부로부터 자유로워진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오늘은 속이 상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