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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율 Feb 06. 2024

오늘은 속이 상했어요.

상한 속은 내 것이지 아이의 것은 아니에요.

수업에서 우리 아이만 다른 행동을 보일 때, 그게 상황에 적절하거나 예쁜 행동이면 자랑스럽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반면, 내 우리 아이만 다른 행동을 보면 상합니다, 속이. 이상하게 그래요. 아직 어린데도요. 그럴 수도 있지 하는데 똑같이 어린 다른 아이들과 함께 듣는 수업에서 다른 아이들은 안 그러는데 우리 아이만 그럴 땐 '아직 어리니까'라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제 육아를 반성하게 되죠. 집안 환경이나 양육 방법 중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 하고요.


오늘은 정말 당장 모든 걸 치워야 할까요? 너무 아이 주도로 아이의 속도대로 탐색하도록 맡겼을까요? 너무 종횡무진 움직이게만 했을까요? 좀 더 진득하니 하나에만 집중해서 놀아주는 경험을 더 많이 가져야 할까요? "안돼"라고 좀 더 분명히 말해야 할까요? 나눔 받아온 것들을 분류해 당장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 나눔 해버려야겠어요.


아이의 문제를 내 문제로 가져오지 않아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요. 하나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고, 새로운 환경과 사람을 좋아하지만 조심성도 많은 아이의 모습에서 저를 보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에 오래 집중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그런 환경을 먼저 만들어줘야겠죠. 그렇게 놀아줘야 하고요. 아이는 어제 못 떼던 스티커를 오늘은 뗄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배웁니다. 한 번 배운 건 바꾸기 쉽지 않고요.


아낀다고, 또 유난 떨지 않겠다며 마구잡이로 나눔 받는 대신 이제는 꼭 필요한 책들을 때에 맞게 들여야겠습니다.


아이와 좋은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아이와 종일 단둘이 보내는 날이 훨씬 좋은 시간이 된다는 걸, 우리 모두가 더 행복하다는 걸 압니다. 재우는 게 조금 수월해지고 끼니를 사 먹을 수 있으며 기분 전환이 된다는 것이 내게는 좋은 점이고, 아가에게도 많은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을 만나 대화를 듣는 게 좋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속이 상하네요. 아이가 떨어뜨린 그릇을 재빨리 주워 가져가버리는 종업원의 행동이 서운해 괜히 자리를 다 치우고 쓰레기마저 내 손으로 다 버리고 식당을 나셨습니다.


내 아이만을 향한 욕심과 교육열을 느낄 때면  불편해집니다. 오늘 식당에서, 수업에서 곳곳에서 그런 대화를 듣게 되었네요. 음식도 아닌데 속이 상합니다. 그래서 글로 버려야겠어요.


우리나라 같은 환경에서 바이링구얼 육아란 불가능하니 모국어에 집중하자는 입장과 가능하고 노출은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 그리고 영어를 좋아해서 말하고 노래하는 시간이 힐링이자 재미인 나 자신이라는 조건을 봅니다. 아이는 어떤 노래든 영어든 한국어든 불러만 주면 다 좋아합니다.


'무엇이 아이를 위해 바람직한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바람직한 것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답을 찾을 듯 말 듯 찾았다 놓쳤다 합니다.


날이 따뜻해지면 문화센터 수업은 좀 쉬고 아이와 자연에서 계곡에서 바다에서 산에서 동물원, 미술관, 도서관도 가고 다양한 골목길을 걸으며 여행하며 한 곳에 아주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4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허락된 만큼만 호기심을 줬다 뺐었다 하지 말고요. 짜인 수업이라는 틀은 참 부자연스럽고 피곤하네요. 수업 속  관계도요. 아이는 어린이집부터 유치원, 학교까지 이 피곤한 배움의 형식 속에서 호기심도 질문도 욕구도 누르며 살아가야 하겠지요? 저는 너무나 피곤하고 힘든 배움의 시간들이었는데 아이가 벌써 짠합니다.


모든 아이들에 대한 연민으로 의미를 좇아 10여 년 해 온 일에 의미를 잃고 쉬면서 다시 돌아가야 할 이유를 경제적인 부분 말고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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