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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율 Feb 01. 2024

먹으면 싸야 하듯 읽으면 써야 한다.

수면 부족 엄마의 실전 독서와 글쓰기

먹으면 싸야 하듯 읽으면 써야 한다. 읽는다는 건 때로 부대끼는 일. 나와 다른 이의 다른 생각과 삶을 이해하고 나아가 실천하려 애쓴다는 건 알게 모르게 내적 에너지를 소진하는 일이다. 나의 삶과 세계에서 달아나 타인의 시선에서 내 삶을 조망해 보고 다시 나로 돌아와 내 삶을 가다듬는다. 피곤한 일이지만 필요한 일이다.

육아서는 지침이고 이론이며, 내 삶은 실전이고 현실이다. 그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 좋은 부모가 되려는 노력은 훌륭하다. 그러나 책대로 하는 완벽한 부모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럴 수도 없다. 나는 나와 내 아이에게 최선의 선택을 한다. 최고의 선택과 완벽한 실천이 아니어도 괜찮다. 내 삶이 그러하듯 부모로서도 완벽한 삶을 살 수는 없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듣고도 비교하지 않는 일, 발달 단계를 알고도 내 아이를 채근하지 않는 일? 안 쉽다. 눈과 귀를 닫는 편이 차라리 쉽다.

그리하여 또래 엄마를 만나지 않고 육아서를 안 읽으면 마음 편히 키울 수 있겠다. 비교도 채근도 없다. 가능한 일인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책으로 내 마음을 자꾸만 괴롭히는 거다. 단련시키는 거다. 연습하는 일이다. 아이는 사람밭에 구르며 살 것이고, 나 또한 육아로 잠깐 주어진 고독 속에 은닉해 있지만 찰나다. 사람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책을 읽을 수밖에. 여러 사람의 깊은 마음밭, 생각밭을 구르는 일이다. 내 세계에 다른 이의 삶이 묻어난다. 같기도 다르기도 한 그 간극, 그건 메워서 없애야 할 게 아니다. 때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다. 책, 작가, 글 쓴 어느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고 살아갈 필요는 없다. 그럴 수 없다. 그는 안내하고 나를 돌아보게 도울 뿐이다.

'젖 물려 재우지 마라, 한자리에 앉혀서 스스로 먹게 해라, 안 먹으면 과감히 밥상을 치워라.' 그래 사실 그 지침대로 못해서 불편하고 속상한 마음을 이리 포장하여 기나 긴 합리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 마음밭의 크기와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 아이의 요구를 나는 가장 잘 알고 있다. 나는 아이의 울음을 오래 견디기 어려우며, 내 아이는 울려봤지만 혼자 그치고 잠드는 아이가 아니다. (수면 교육 영상에서 그런 아이들을 둔 부모의 이야기들을 읽은 적이 있다. 울리는 수면 교육이 모두에게 통하는 건 아니다.) 권장대로 6개월부터 끊지는 못했지만 이제 돌이 다 되어가니 아이는 슬슬 많게는 11시간, 평균적으로는 8시간 정도로 통잠을 자고 있다. 물론 어제처럼 새벽에 깨어 젖을 물고 자고 파하는 날도 있지만, 그런 날은 그냥 잠습관이 아닌 듯 엄청 많이 먹는다. 정말 배가 고팠다는 듯이. 적게 먹었거나 많이 싼 날이다. 오트밀을 안 주니 확실히 덜 깬다.

오늘은 처음으로 키친 헬퍼에서 아침을 먹였다. 선 채로 발을 콩콩거리기도 하며 아이는 먹는 지루함을 잊는 듯 집중해서 먹었다. 자기 주도로만 하다가 엄마주도 죽이유식도 병행해야 식습관문제가 안 생긴다는 조언을 듣고 병행하고 있다. 초반에는 꼭 먹어야 될 고기로 만든 철분쨈 등은 내가 떠먹여 주고, 내가 주는 숟가락에 고갤 돌리고 집중력이 떨어질 때쯤 스스로 쥐고 먹을 수 있는 셀러리 등의 야채 스틱이나 요거트빵, 고구마, 먹어도 안 먹어도 그만이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 등을 준다.

자기 주도 이유식을 하며 내 인내심의 한계는 3개월 차에 왔다. 문화센터로 이겨냈고, 시판 이유식 병행으로 죽태기를 근근이 지나왔다. 그리고 아이의 식욕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듯하다. 죽이나 밥은 싫어하고 많이 먹지 않으니 거의 주지 않는다. 대신 고구마, 감자, 바나나, 아보카도, 쇠고기는 매일 거의 매 끼니 주고, 밀가루와 우유 알레르기 테스트를 위해 통호밀빵과 요거트도 주고 있는데 진짜 좋아한다.

모든 글이 아이의 이유식 얘기로 끝나는 걸 보면 내 머릿속의 8할은 요리와 아이 밥이 그득한 모양이다. 사실 다른 책은 끊고 요리와 유아식 책만 읽고 실천하는 단순한 삶을 한 달 정도만 살고 싶다. 그게 안정화되고 즐기고 쉽게 적용할 수 있게 된 후, 버리고 나누는 수납 정리가 좀 되고 나서야 다른 책을 읽고 실천할 에너지가 돌 것 같다. 아이 방을 만드느라 집안 그득한 짐을 거의 한 달째 정리 중이고 당근 중이다. 짐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인 집, 물건이 걸리적거려 짜증이 나지 않는 집, 쉬러 오고 싶은 집, 물건을 찾기 쉬운 집, 아이가 한 번에 하나의 놀잇감에 집중할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다.

요리나 정리, 살림이 먼저 손에 익어 빠르고 쉬워지는 게 먼저다. 가을즈음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 육아에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 경제 독서부터 집중해 읽고 부족한 과학서를 읽어나가야지. 육아 고민이 생길 때마다 지금처럼 해답을 찾듯 읽는 빠른 발췌독을 지속하되, 양서를 반복해 읽고 필사하며 내 것으로 만들 것. 그걸 책 읽는 엄마들과 모이다방에서 함께해 나갈 것. 함께 멀리 갈 것.


아이가 차에서 잠들고 문화센터 수업을 기다리는 동안 운전석에서 쓰는 돌 무렵 엄마의 독후 실전 배설 글쓰기. 잠잘 시간도 부족한 엄마들에게, 그럼에도 책을 읽고자 하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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